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일 하면서 우아하게 숨 쉬는 법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영화를 개봉하기 2주 전부터 기대하게 되었어요. 물론 어떤 영화인지 찾아보지는 않았어요. 예고편을 찾아보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영화를 좋아해요. 하지만, 이 영화 전에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오펜하이머>였어요. 두 영화 사이의 기간은 한 계절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몇 년 전만 해도 매주 새로 나오는 영화를 보러 영화관을 찾았어요. 요즘은 OTT와 비싼 영화 티켓 덕에 어느 정도 많이 타협을 한 것 같아요. 그래도 이번 영화는 얼핏 본 포스터의 왜가리,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이라는 것에 두근거릴 이유는 충분했어요. 영화가 개봉하는 날 연차를 사용하고 볼까 고민을 할 정도였거든요. 그래서 퇴근하고 보려던 티켓을 취소하고 점심시간에 보기로 계획을 수정했어요.
아침이었어요. 약속한 출근 시간은 9시 30분이지만, 8시에 눈을 뜨자마자 업무를 시작했어요. 왜냐하면 오늘 남들 모르게 점심시간을 2시간을 비울 예정이기 때문이죠. 약 10개월의 재택근무를 하면서 이런 설렘이 있었나 싶어요. 일탈, 말 그대로 일탈이었어요. 그렇게 예정된 출근 시간보다 무려 1시간 30분을 일찍 업무를 시작했어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는데, 내가 벌레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렇게 부지런한 벌레가 영화에서 나오는 왜가리에게 먹힌다면 그 또한 의미가 있을 것 같았어요. 왜냐하면 오늘 날 잡아먹을지도 모르는, 왜가리를 볼 생각에 잠을 제대로 못 잤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일찍 일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 자기 합리화를 했지만, 마음 한편에 불안함은 벌써 자리를 잡고 싹을 피운 지 오래였어요. 오늘처럼 업무를 일찍 시작하는 일이 드문 일은 아니에요. 가끔, 아니 자주 일찍 출근을 해요. 그렇게 일찍 출근한 날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 앉아서 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마도 일이 신경 쓰여 잠을 제대로 자지 못 해서, 일찍 일어나는 것 같아요. 그 긴 시간 모두를 온 힘을 다해 백 퍼센트가 넘는 엄청난 업무 효율을 낸다고 물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오늘은 온 힘을 다해서 열심히 일을 했어요.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11시 영화 상영 시간 아슬하게 맞춰 10분 거리의 영화관에 도착했어요.
영화관에는 사람이 없었어요. 아마 내가 없었다면, 이 시간의 영화는 상영을 안 했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두근거렸어요. 나의 일탈을 위한 영화라니. 그렇게 점심시간 온전히 왜가리를 마주했어요. 영화를 보고 나오니 홀가분했어요. 영화를 보며 좀먹었던 불안함 덕에 점심을 먹지 않은 배는 고프지 않았어요. 이 시간에 일을 하다가 영화를 보고, 다시 일을 하러 가야 하는데 날은 너무 좋았어요. 떨리는 마음으로 휴대전화를 열어 보았는데, 다행히 비워있던 나를 찾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어요. 안도의 한숨을 쉬는 느낌은 썩 개운하지 못하다는 것을 비로소 오늘 깨달았죠. 그렇게 현실로 돌아온 나는 아침에 보던 컴퓨터 앞에 자리했어요. 아주 오랫동안. 영화를 보고 온 기억은 어제 일처럼 변해있었어요.
오늘 본 영화 제목은 '그대 어떻게 살 것인가?'였나,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영화를 보고 온 것이 아닌 불안함을 보고 온 것 같아요. 오늘 밤에는 꿈을 꿀 것 같아요. 왜가리에게 먹히는 벌레가 되는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