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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Nov 03. 2023

낭만 값은 구천 원 정도

일 하면서 우아하게 숨 쉬는 법

  오피스에 출근을 했어요. 저녁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죠. 저녁에 나고야를 만나기로 했어요. 나고야는 중학교 친구예요. 나고야에서 7년 정도 지낸 친구예요. 일본어를 잘해요. 나고야와의 거리는 전철로 한 정거장 거리예요. 그래서 퇴근하고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어요. 그래서 출근을 했어요.


  출근을 하려면 6시에 일어나야 해요. 회사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한 참을 가야 해요. 자고 일어나고 또 자야지 도착해요. 그렇게 도착하면 전철을 갈아타러 가요. 그렇게 버스와 전철을 타고 도착하면 8시 30분이에요. 그럼 커피 한잔을 사서 자리를 잡고 근무를 시작해요. 역시 오늘도 일을 일찍 시작했어요.


  그렇게 출근을 하는 날이면, 점심은 비싸고 맛있는 걸 먹어요. 출근을 할 때면, 팀원분들과 같이 출근을 해요. 약속이 있어서 출근을 하는 건지, 팀원분들과 일정을 맞춰 출근을 하는 건지. 비밀이에요. 그렇게 오늘은 12시에 점심을 먹었어요. 오랜만에 오프라인에서 만난 팀원 분들과 업무 고민과 약간의 수다를 나눠요. 재택근무를 할 때와는 다르게 정말 회사를 다니는 듯 한 느낌이 들어요. 누가 MBTI를 묻는다면, 저는 E가 I보다 조금 더 높게 나오는 편이에요. 재미있는 건, 오늘 출근한 팀원 모두 저랑 MBTI가 모두 같아요. 참 신기해요. 웃으게 소리로 우리 매니저님은 같은 MBTI 수집가라고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요. 


  저녁을 먹기 위해 6시 퇴근보다 십분 일찍 출발했어요. 여기 주변에는 맛집이 많아 무조건 줄을 서야 해요. 아마도 줄을 서서 먹을 정도의 식당만 선택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점심에도 30분 정도 줄을 서서 먹었어요. 나고야와 저녁 먹을 식당에 제가 먼저 도착했어요. 26팀이 앞에 있었고, 나고야는 아직 퇴근하고 오는 중이에요. 기다린 지 3분이 지났을 때, 앞에 있던 4팀이 줄었어요. 그럼에도 나고야에게 천천히 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나고야는 담배도 피우며 천천히 걸어왔다고 해요. 나고야가 도착했을 때 딱 맞춰서 입장할 순서가 됐어요. 나고야는 기다림 없이 식당을 들어갈 수 있었죠. 제가 일찍 와서 기다린 덕분이에요.


  저녁은 뼈찜을 먹었어요. 오피스를 출근하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뼈찜의 존재를 알았어요. 감자탕과는 다르게 매콤하고 맛있었어요. 술이 생각나는 맛이었죠. 그때는 점심이라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오늘은 나고야와 중짜를 시켜 얼큰하게 취했어요. 취해서 그런지 뼈의 살을 젓가락으로 바르는데, 어려웠어요. 순간 울음이 날 뻔했어요. 이 뼈찜에 술을 마시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취하는 느낌도 너무 좋았어요. 뼈찜은 맛있었고. 힘들었어요. 힘든 이야기는 퇴사를 할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로 짧게 말을 줄였어요. 배부른 소리라 뼈찜을 먹을 배가 없어질까 봐 두려웠어요. 


  그렇게 뼈찜을 먹고 나와서 스타벅스로 향했어요. 녹차 프라푸치노를 마시면 너무 좋을 것 같았어요. 그러다 버킷 리스트를 이야기했어요. 살면서 하고 싶은 건 해야지, 버킷 리스트가 뭐람. 유치하다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 유치한 게 생기니 너무 신났어요. 최근에 생긴 버킷 리스트라 입은 더욱 근질거렸어요. 마침 점심을 먹을 때에도 팀원에게도 이야기를 했어요. 버킷 리스트를 들은 팀원의 표정은 그렇게 좋은 표정은 아니었어요. 아마 표정 관리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스스럼없이 나고야에게도 알려줬어요. 죽기 전에 담배를 꼭 필 거야.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신기하게도, 정말 최근에 권유를 받았어요. '나쁘지 않아요'라고. 이 나이에 담배를 권유받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담배를 권하는 매니저님 역시 너무 재미있었어요. 군대라면 손 서리 쳤을 텐데. 담배를 끊은(참고 있는) 매니저님의 피고 싶은 마음이 말에 너무 녹아있었어요. 나쁘지 않다는 말이 정말 나쁘지 않을 것 같았어요. 다른 나라는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연령을 제한한다고 하는데. 그럼 더욱이 기회가 없어지기 전에 사재기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있었거든요. 담배를 권한 이유는 별 이유는 없었어요. '그냥 일을 하다 힘들 때, 담배를 생각하면 집중력이 올라가더라.' 같은 시답잖은 이유와 이야기였어요. 아마 매니저님과 접점이 많지 않아 대화를 풀어가기 위한 노력의 하나였다고 생각해요. 권한 것도 정말 숟가락을 떠먹여 주듯, 입 앞까지 가져다준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단지 그 상황이, 그 기억이 재미있어서 버킷 리스트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나고야가 말했어요. '시가바 갈래?'라고요. 너무 달콤했어요. 처음 바를 간 것도 나고야랑 갔어요. 그런데 시가바라니.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환영이에요. 그래서 녹차 프라푸치노를 포기하고 시가바를 갔어요. 시가바에 앉아서 9천 원짜리 쿠바 시가를 골랐어요.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 있다가 뱉었어요. 기침이 났어요. 맛있다는 느낌은 못 받았어요. 쿠바 시가는 영화에서 보던 그저 그런 시가였고. 시가는 담배였어요. 나고야는 옆에서 맛있다고 하는데, 위스키 안주로 나온 초콜릿이 더 맛있었어요. 무려 리필을 계속해주었어요. 그렇게 초콜릿을 녹여먹으며 쿠바 시가를 피웠어요. 피웠을 때는 몰랐어요. 일어났을 때, 술이 확 달려들 것이라는 걸요. 그렇게 몽롱한 상태로 밖을 나왔어요. 10시가 되어 돌아가야 했어요. 신데렐라도 아마 집에 가기 싫었을 거예요. 마침, 그때 알았어요. 쿠바 시가는 9천 원이 아니라 9만 원이었어요. 물론 나고야가 사줬어요. 아주 중요한 포인트죠. 그 와중에 머리는 어지럽고, 하늘은 노랬으면 했어요. 하지만 하늘은 노랗지 않아 실망했어요. 9만 원의 쿠바 시가는 하늘을 노랗게 만들지 못했어요. 하지만 내 얼굴은 노랗게 질렸죠. 


  버스를 타러 가기 전, 지하철 화장실에서 속을 비웠어요. 웃겼어요. 이렇게 무식하게 마시고 토를 하는 게 오랜만이었어요. 아까 젓가락으로 살을 바르던 뼈찜이 생각났어요. 그때 울걸 그랬나 싶었어요. 아직 입 속에는 낙엽이 타고 있었어요. 쿠바 시가는 낙엽 맛인걸 이제야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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