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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Nov 10. 2023

베란다에서 방으로 월동준비

일 하면서 우아하게 숨 쉬는 법

  가을비와 바람이 매섭게 불었어요.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봤는데, 껌껌했어요.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는 무서웠어요. 베란다에 있던 내 나무도 무서울 것 같았어요. 왜냐하면, 내 나무는 이제 우리 집에 온 지 두 달이 조금 안 됐거든요. 아직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중일 거예요. 더군다나 처음 반려 식물로 데려온 친구라 서로 서툴러요. 우리는 아직 어색한 사이예요.


  비 내리는 것을 보고 있으니, 내 나무도 목이 마를 것 같았어요. 들고나가서 가을비를 나누어 줄까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바람이 무서워 그러지 못했어요. 작고 귀여운 내 나무는 저 바람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가을비를 창문 사이에 두고 물을 흠뻑 주었어요. 애처로워 보였는데, 그 모습이 나 같았어요. 방 안에서 일을 하는 나처럼 갇혀 있는, 안타까웠어요. 하지만 오늘 날이 좋지 않았는걸요.


  나뭇잎 사이로 물이 맺혔어요. 뚝뚝 떨어지고 있어요. 베란다 바닥이 축축해졌어요. 이 참에 나무를 내 방으로 옮겨요. 가까이서 보고 싶어요. 일을 하면서 고개를 살짝 돌리면 나무가 있어요. 얼마 전에는 내가 나무를 애정하게 바라보았는데, 이제는 나무도 나를 바라봐요. 애정한 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베란다보다는 덜 추울 것 같아 다행이에요. 내가 차게 지내지만, 그 정도 차가움은 내 나무는 견딜 수 있을 거예요. 방 안의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찬 바람에 나뭇가 손을 흔들어요.


  내 나무는 '아라우카리아'라는 나무예요. 아직도 이름을 기억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그냥 "트리"라고 불러요. 트리는 당근마켓에서 구매했어요. 식물을 키워야지 마음먹은 순간에 나를 위해 당근마켓에 올라왔어요. 우리는 운명이었죠.


  운명을 믿나요? 저는 운명을 믿지 않아요. 신도 안 믿는 것 같아요. '같아요'인 것은 정말 기댈 곳 없으면 그때만 믿으려 하는 것 같아요. 아주 간사한 인간이죠. 신이 있다면 신도 이해해 줄 거예요. 그렇게 간사한 믿음에 정답을 여쭤보면, 대답을 안 해주셨거든요. 그래도 미워는 안 해요. 기대가 크지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아라우카리아'와의 만남은 운명이었어요.


  수많은 식물 중 '아라우카리아'를 생각한 것은 김금희 작가님 때문이에요. 아니, 브야보 때문이에요. 브야보는 같이 글을 쓰던 친구예요. 왜 브야보 때문이냐면, 브야보가 김금희 작가님의 팬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지난밤 브야보와 밥을 먹을 때 김금희 작가님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김금희 작가님의 신간을 구매했어요. <식물적 낙관>이라는 책이었어요. 당연히 처음 시작부터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나는 식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칭찬 양파를 빼고, 식물을 처음 길러본 기억을 더듬어 보면 초등학교 5학년 때예요. 방울토마토를 길렀어요. 학교에서 조마다 파란 화분에 방울토마토를 길렀어요. 방울토마토는 속 없이 잘 자랐어요. 정말 토마토가 방울방울 열릴 것 같았어요. 하지만 우리 조에는 나를 괴롭히던 친구가 있었고, '우리'라는 묶임 속에 잘 자라는 방울토마토가 미웠어요. 그래서 방울토마토를 죽였어요. 내 것이기도 하지만 나를 괴롭히는 친구의 토마토였거든요. 아무도 우리 조 토마토가 죽어가는 이유를 몰랐어요. 다른 조 방울토마토는 잘 자라는데 말이에요. 그 이후로 식물을 기르지 않아요. 물 대신 왁스에 잠겨 비명 하는 방울토마토가 꿈에 나왔거든요.


  <식물적 낙관>은 제법 재미있었어요. 다 읽고 나서는 식물을 하나 기르고 싶다는 생각 들었어요. 책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식물이 나와요. 그중에도 '아라우카리아'가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겨울에 크리스마스트리로도 사용한다고 하거든요. 이번 기회에 식물을 하나 둔다고 하면, 존재 자체만으로 기분을 좋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트리"였어요. 그래서 그날 바로 당근마켓을 찾아봤고, 첫눈에 반했어요. 반한 그날 우리 집으로 데려왔어요. 그게 우리 "트리"에요.


  우리 트리는 추운 환경을 안 좋아한데요. 그래서 베란다보다는 방으로 데려왔어요. 호주의 겨울은 여름이지만, 우리나의 겨울은 겨울이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가까이 두고 바라보니 삐죽한 가지들이 안 이뻐 보였어요. 아마 트리도 그런 잔 가지들이 미웠을 것 같아요. 영양분을 나누어 먹지만, 분명 내 손톱이 너무 긴 것처럼 느끼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잔 가지들을 잘라 주었어요. 조금 더 추위와 싸우는데, 건강해지는데 영양분을 썼으면 해요. 그렇게 우리는 난생처음 월동준비를 해요. 베란다에서 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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