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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May 13. 2019

도쿄 여행기 3

쉬는 날의 일기

우에노 공원에서 마신 커피

2019.05.04


도쿄 여행기


 3일 차는 우에노 공원을 둘러보다가 네즈, 도쿄타워를 거쳐 시부야로 돌아오는 계획이었다. 가기 전 숙소 앞에 있는 텐동 전문점인 ‘텐야’에서 밥을 먹기 위해 설레는 마음을 안고 걸어갔는데 11시 오픈이었다. 우리가 온 시간은 10시.. 분명 작년에 도쿄를 갔을 때에도 똑같은 실수를 했는데 왜 또 같은 실수를! 그래서 이번 여행엔 꼭 먹기로 했던 건데.. 역시 인간은 실수를 반복하는 생명체인가 보다. 어쨌든 계획을 바꿔 우에노에 있는 텐야를 가기로 했다. 우에노에 도착하자 신주쿠에 도착했을 때처럼 생각보다 큰 규모에 놀랐고, 감탄하며 텐야로 걸어갔다. 아직 오픈하려면 20분 정도 남았기에 시장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점심을 먹기로 정해 놓은 스시집 (밥집은 어떤 계획보다 철저하게 계획하는 편)이 보여 예약이나 할까? 하고 들어갔다가 생각해보니 여긴 점심에 먹으면 줄을 엄청 서는데 이미 오픈되어있는 집에 줄 없이 들어가서 왜 예약을 하고 나오지? 하는 생각이 스쳤고 결국 언니와 난 텐야를 가지 않고 스시집에 앉아버렸다. 텐동은 또 이렇게 다음으로 미루어졌다. 


 스시를 맛있게 먹고 나와 우에노 공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커피와 먹을 요량으로 와플을 구매하고 소중하게 가져가는데 주말이라 그런지 길에 사람이 엄청 많았다. 전에 본 책자에서 우에노 지역을 문화적 퓨전 거리라는 명칭으로 불렀는데 그걸 읽고 엥? 무슨 거리야 이게? 했었는데 막상 직접 와보니 정말 잘 지은 명칭이라는 생각을 했다. 밖을 달리는 전차 아래엔 신식 카페와 가게들이 즐비했고 언덕을 따라 걸으면 초록 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다. 공원에 도착하고 나니 무슨 행사를 하는 것인지 여러 예술가들이 공연을 하고 있었고 간이 천막들이 줄 세워 서 있었다. 풍선 공예를 하시는 분을 보며 감탄하고 있다가 언니와 나는 저러다 풍선이 터지면 웃길 텐데 하고 대화를 나누는 순간 정말 터져 버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귀여운 아이가 떨어진 풍선을 주워 공연자 분에게 주자 악수를 청했더니 아이가 쌩하니 가버렸다. 이것도 공연의 일부인가 싶은 정도의 전개였다. 그러고 나서 이제는 정말 카페인을 섭취하고 싶어 커피 마실 곳을 찾았는데 카페에 들어가기 위해선 기본 20분씩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으니 그 정도야 얘기하며 기다릴 수 있었고 곧 우리 차례가 와 카페 야외 좌석에 앉아 와플을 먹으며 커피 한 잔을 했다. 가만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그 여유는 마치 내가 일본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누릴 수만 있다면 평생 누리고 싶은 이 여유. 


 커피를 다 먹고 공원을 걷다가 호수가 보이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호숫가엔 많은 사람들이 보트와 오리배를 타고 있었다. 갑자기 더워지는 날씨에 겉옷을 벗고, 호수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구명조끼를 한 사람이 아무도 없길래 이 호수 수심이 얕은가? 되게 깊어 보이는데.. 이런 생각을 했던 오후의 시간. 천천히 걸어 그곳을 빠져나와 네즈 신사까지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체력도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전 날 디즈니랜드에서 다리를 혹사시킨 게 오늘까지 이어져 내 다리가 제발 어디 앉아서 쉬라고 난리였다. 하지만 다리의 외침을 무시하고 걷고 있는데 갑자기 정말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쳤다. 언니와 난 둘 다 깜짝 놀라 어깨를 떨었는데 주변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나가고 있었다. 정말 침착한 사람들이네.. 날씨가 흐려지고 빗방울이 조금씩 내리다, 안 내리다 하는 걸 겪고 있으니 어느새 네즈 신사에 도착했다. 여기도 오늘 무슨 날인지 기도를 드리기 위한 줄이 엄청 길게 이어져 있었고 우리는 조금 주위를 둘러보다 도쿄타워를 보러 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시바공원 역으로 가 도쿄타워를 멀리서 한 번 보고 조금 더 가깝게 보기 위해 어떤 골목으로 들어갔는데 한 커플이 군고구마를 먹고 있었다. 언니와 난 저거다! 싶은 마음에 군고구마를 파는 곳을 찾기 시작했고 결국 한 아저씨가 트럭에서 팔고 계시는 걸 볼 수 있었다. 5000원이라서 두 개 사기엔 좀 그렇고, 안 먹고 싶지는 않아서 하나만 달라고 했는데 아저씨가 두 개를 주시며 서비스라고 하셨고 그 순간은 일본 여행 중 정말 제일 감동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얻은 소중한 고구마를 내 품에 안고 도쿄타워를 잘 볼 수 있는 명당을 찾아 다시 공원 쪽으로 걷는데 우리 앞에 걷던 커플도 그쪽으로 가는 것 같아 그냥 그들이 걷는 길을 따라 걸었다. 그랬더니 블로그에서도 본 적이 없는 아주 예쁜 언덕이 나왔는데 도쿄타워도 잘 보이고 사람도 없어서 이게 웬 횡재야! 하고 잔디밭에 앉았다. 비록 주변엔 다 커플들이어서 조금, 아주 조금 외로웠지만. 흑흑


 날이 어두워지면서 도쿄타워에 불이 점점 들어오고 언니와 난 자리에 앉아 멍하니 타워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아무 말도 안 하고 큰 조형물을 감상만 하고 있는 게 시간이 어찌나 잘 가던지. 사실 내가 그걸 보며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며 그저 좋았다는 것만 명확하게 기억날 뿐이지. 근데 정말 말 그대로 좋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에 밖에 앉아 다른 나라에서 가장 대표되는 상징물을 보고 있는 그 자체가 행복이었고, 흔히들 말하는 힐링이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다리가 너무 아파서 시부야를 포기하고 숙소로 바로 들어갈까 했지만 마지막 날 밤인데 이대로 보내기는 아쉬워 그래도 잠깐이라도 보고 오자! 하고 시부야로 향했다. 역시 시부야의 밤거리는 화려했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더 걸을 기력이 없어서 ‘호시노 커피’로 가 스크램블 교차로를 보며 쉬었다. 원래 같으면 츠타야 서점과 함께 있는 스타벅스에 가서 보는 건데, 사람이 많기도 하거니와 열심히 검색해본 결과 호시노 커피에서도 스크램블 교차로가 잘 보인다고 해서 선택한 카페였다. 또 일본에서 오래된 카페이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며 쉬는 중에 내가 스크램블 교차로를 자꾸 스크램블 에그라고 말해서 언니가 한껏 비웃었다. 자기는 어제 숙소에서 컵에 담긴 물을 계속 쏟고, 심지어 다시 물을 받은 컵 밑바닥이 뚫려있는지도 모르고 계속 부었으면서. 그거야 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흥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스크램블 에그라고 실수할 만하지 않나...?


어쨌거나 우리는 다시 숙소 쪽으로 돌아와 다코야키와 맥주를 마시며 마지막 날을 기념했다. 아! 아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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