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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Oct 22. 2023

[06]가부장 전성시대

: is over. (feat.뒷방 아부지)

내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건 20대의 나를 지배한 신조였고, 돈을 벌기 시작하자 왜 사람들이 돈을 벌면 그렇게 큰 소리를 치게 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요즘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도 인기지만, 이전에 자영업을 하며 친정 식구 모두에게 집 한 채씩 사준 친구가 했던 말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나는, 아빠가 이상한 말 하면 막 하지 말라고 소리 질러.'


열살 때, 친구 보라네 집에 놀러 가서 받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보라는 외동딸이었는데, 거실 소파에 앉아 계시던 아빠가 '보라야 물 한 잔만 갖다줘'라고 하시자 당연히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갈 줄 알았는데, 보라는 대신 찡그린 표정을 짓더니 한 발로 아빠 발을 밀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 싫어, 아빠가 가서 떠먹어' 


아빠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느 반인지, 누구랑 친구인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그저 말없이 지켜보고 늘 입 양꼬리가 아래로 내려와 있어 우울해보였다. 뭔가 나를 위한 액션을 해주기는 하지만, 이름을 부를 때도 도대체 왜 그러는지 꼭 성을 붙여 불러서 아빠가 내 이름을 부르면 뭔가가 잘못된 것만 같았다. 나는 아빠한테 농담으로라도 '싫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는데, 저렇게 다정하게 말하는 아빠에게 발을 차며 싫다는 보라가, 조금 부러웠던 것 같다. 


보라가 아주 많이 부럽지 않고, '조금' 부러웠던 건 나만 그런 건 아니었기 때문에. 아빠와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하는 자식이 얼마나 될까. 엄마 아빠와 각자 말하는 대화는 양으로만 따져도 거의 99:1 정도라 엄마는 엄마 힘든 얘기를 내가 열살 때부터 나에게 미주알고주알 얘기해주었지만, 아빠가 뭘 하고 살았는지, 아빠의 삼십대와 사십대와 오십대는 어땠는지, 나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피차 마찬가지겠지만.


그러니 5학년 성적표에 아빠가 직접 써준 메모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아이가 선이 굵고 힘이 있으나 마무리 하는 능력이 부족한 편'


 두둥. 아빠 나 보고 있었네. 역시 말을 하지 않아도 보이는 건 어쩌면 전부일지도 모른다.


물론 가족은 늘 시차가 엇갈리는 이해관계 속에서 살고 있어서 헤어지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일방적으로라도 이해할 타이밍은 온다. 나 역시 월급을 받기 시작하고서야 평생을 가족 부양에 힘썼던 아빠에 대해서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가부장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잘해봐야 본전' 정도 될까.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고, 하지 않으면 비난을 받는다. 이 짓을 삼십년씩 한다고? 리스펙. 합격 목걸이 드리겠습니다.


물론 가족을 부양하는 것과 본인 자신도 가족의 일원으로써 노력하는 것은 완전 다른 일이다. 가끔, 아빠가 얼마나 서롭고 외로웠을까 생각할 때도 있다. 엄마는 돈 문제를 본인에게 상의하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지만, 아빠로서는 역할이 명백하게 나뉘어져 있는데 내 본분을 남에게 묻는 꼴이었을 것이고, 물어볼 상대도 아니라고 생각한 건 맞을 것이다. 세무적인 문제, 부동산 정보,  관련 법령, 엄마가 아는 정보가 아닌 건 맞으니까. 어찌되었건 혼자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겠으나, 돈 말고도 가족 앞에 놓인 의무는 많았다. 아빠가 못본 척 해온. 


엄마 아빠의 문제를 들을 때마다 애초의 시점으로 계속 되돌아가게 된다.


'왜 그 둘은 결혼했을까? 결혼을 지금이라도 할까? 한다면 상대방과 다시 할까?'


의미없는 질문일테고,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 많다. 다만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을 둘이 당시에 결혼에 대해서 얼마나 알았을까 싶고, 엄마는 당시의 현대여성답게 결혼과 동시에 모든 것을 의탁하기로 했지만, 아빠는 그 점을 인지하고 있었으되 좀더 기능적인 면에 충실했던 것 같다. 물론 미필적 고의 플러스 쌍방과실이다. 서로가 각자 다른 기대를 했다는 점에서. 


기대치만큼 만족시키는 일이 쉽냐 하지만, 이 두 분의 간극은 살벌하게 멀었던 것 같다. 내가 아빠를 아무리 이해한다 해도, 그가 엄마를 동반자로 여긴다는 생각은 든 적이 거의 없는 걸 보면. 이상한 말이지만 장기계약한 라이프 에이전시 내지는 월급주며 고용하기로 한 부하직원 같은 느낌? 아빠가 생각했을 아내 에이전트의 역할은 섹스, 육아, 살림, 효도하청. 엄마가 떠맡지 않으면 전부 누군가가 돈을 받고 해주어야 하는 서비스들. 엄마는 굳이 딴 교직원 뱃지도 반납한 채 아빠의 인생이 뛰어들었는데, 아빠는 이제와서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냐며 딴청이다. 결혼에 관한 맥시멀리스트와 미니멀리스트가 만나 이루어낸 기나긴 대서사 장송시. 아직도 ‘너네 아빠가 조금만 더  잘해줬더라면’ 이라는  엄마와, 애를 셋이나 낳아놓고서도 요즘 같았으면 본인도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빠는 여전히 평행선 위에서 만날 수가 없다. 


그래서 엄마는 '그 사건' 이후 진로를 바꿨다. 아빠가 원하는 선에서만 가족의 기능에 충실하기로. 애들은 다 키워줬고, 이제 밥만 해결해주면 될 일. 대화? 그걸 왜 해, 말할 때마다 싸움만 나는데.


슬프게도 이 방법은 아빠에게 타격감이 없다. 정말로 아빠가 원하는 건 딱 그 선이므로. 엄마는, 생활 속의 모든 일을 말하고 싶은데 아빠에겐 그저 피로감만 증폭시킬 뿐이다. 아빠 역시 애들 다 키웠고, 본인 은퇴도 했고, 이제 가족 안에서 본인의 의무는 거진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더 슬프게도, 엄마의 인생 타임라인 위에서 아빠에 대한 여러 가지 감정과 친밀감은 '사건' 이전에는 싸워도 내 편, 싫어도 내 것이었고 어쩌면 그래도 여러 가지 면에서 짠한 사람이었으며, 엄마에겐 순수하게 현생에서의 남편은 '온리원'이었다. 아빠의 인생타임라인 위에서, 엄마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자, 섹스, 육아, 살림, 효도하청 네 가지 카테고리에서 이제 밥을 직접 차려 먹는 아빠에겐 살림도 점차 그 효능감을 잃어가는 중. 밧데리가 다 된 로봇처럼 모든 것이 식어가는데, 무엇을 움켜쥐고 남은 생을 함께할 수 있을까. 


우리 집과 구조가 비슷해서 말이 통하는 사촌 중 하나가 '나는 엄마는 심적으로 지지하고, 아빠는 합리적으로 동의해' 라고 했을 때 무릎을 쳤다. 아빠에게는 배우자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엄마가 어떤 말을 하고 행동을 하건, 아빠는 나름의 방식으로 인생을 마치 수도승처럼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일, 저런 일을 스쳐지나가듯 다 그저 지나가버린 일일 뿐. 


아빠가 한창 때 활기차거나 바빠보였을 때, 가족은 아빠에게 걸리적 거리는 느낌이었다. 사회적으로 더 올라가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을 거느려야 한다 대략 그런 느낌의 일들을 밖에서 하느라 무척 바빠보였고, 대의명분과 사람과 정치 속에서 고군분투할 때, 아빠는 생활인처럼 보였다. 


요즘 아빠들처럼, 아빠도 '우리 00이 때문에 산다'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을까. 우리 와이프가 그래도 내 편이야, 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을까. 아니면 그저 모든 추억이 희미해져가고 있을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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