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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Oct 22. 2023

[05]러시안 불렛

일심도 아닌, 동체도 아닌 부+부

다른 이가 한 나쁜 짓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이것을 어떻게 그에게 '내가 알고 있음'을 알릴 것인가. 또, 내가 안다는 사실 외, 무엇을 바라야 할까. 합당한 벌? 엎드려 절받기일지라도 공식적인 사과? 관계해소에 대한 통보 혹은 합의를 위한 조건? 피해를 입은 쪽에서도 생각해야 할 게 많다. 확정되기 전까지 모든 것은 혐의에 불과하고, 내가 본 것이 아니라면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방귀 낀 놈이 성낸다'는 말이 내려오듯, 잘못한 이가 오히려 역정을 내며 기선을 거꾸로 제압하려 들 수도 있는 법. 괜히 혼내려 들다가 본전을 못찾을까 걱정하면서도, 아빠에게 본인이 안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해 생각의 변비에 시달리던 엄마는, '내가 잃을 게 뭐임' 정신으로 한밤중에 횃불을 밝히고 성문 앞에서 선전포고를 했다. 


어제와 그제와 같은 어느 날 밤, 침대에 누운 엄마는 정직하게 옆 자리에 누운 아빠에게 말했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


엄마가 다음 날, 세세하게 전해준 디테일을 요약하자면 역시 속담은 옳다는 것. 우물쭈물 하더니 결국 '그래서 내가 그랬다고 해서 당신이 뭐 어쩔 건데?' 버럭질을 한 아빠에게,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을 잃었다고 아빠 대신 나에게 버럭질을 하는 엄마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전략을 짜라고 얘기했잖아. 누가 순순히 잘못을 인정할 수 있겠어.'


물론 엄마가 맞다. 엄마는 들쳐본 일기장의 내용이 팩트인지 확인하기 위해, 수 개월을 흥신소 직원마냥 동네를 쏘다녔다. 동선을 파악하고, 어디까지 다녔는지 범위를 확인하고, 9시에 자는 아빠에게 11시에 종종 오던 문자를 보낸 이가 누군지, 그리고 출장이라던 베트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까지. 그걸 그렇게 알고 싶을까 싶었는데, 그 동안 살아온 세계의 반쪽이 무너지고 있는 사람을 말릴 수는 없었다. 그 모든 건 사실이었으니까. 


나는 어땠냐고? 사실 담담했다. 이해라는 것은 '일이 그렇게 되었구나' 라는 뜻도 있으니까. 다만 그렇게 해도 괜찮다거나 그럴 수 밖에 없었겠지, 라고 옹호할 수는 없었다. 사람은 본인이 스스로 설명할 수 없을지라도, 강력한 의지로 무언가를 한 번은 할 수 있는 존재이며, 앞뒤 전후 사정을 다 살피고 결과까지 예측하는 바람직한 행위를 늘, 한평생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일을 저지른 아빠의 진짜 마음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했다. 도대체 왜. 사회에서 보이지 않게 그어 둔 여러 선을 1cm 라도 넘을까 전전긍긍하며 안달복달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무슨 일이 그의 마음 속에 일어난 걸까. 


알랭 드 보통이 말한 것처럼 '이것이 인생에 있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었을까. 혹은 누군가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했을까. 가부장의 효능만을 기대하는 가족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을까. 아니면 그냥 진짜 인생이 다 재미없어져서 뭐든 저지르고 싶었을까. 사실 엄마의 지독한 갱년기가 유난해서 그렇지, 아빠에게도 갱년기가 찾아왔을텐데 나머지 가족 중 한 명이라도 그 마음에 대해서 아는 척 했을까, 자식이 아닌 인간적으로 짠한 마음도 있었다. 언제나 아빠는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제공해야 하는 사람'에 국한되어, 아빠가 무엇을 바라는지, 아빠는 어떤 모양의 사람인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빠가 매달 월급을 제 때 엄마에게 전달하는 한. 


나라면 마음으로 백날 이해하더라도 사실을 확인하고, 증거를 수집하고, 변호사를 확보한 다음, 이혼 사유에 해당되는 항목은 무엇이고, 상대방으로부터 받아낼 수 있는 최대치는 얼마인지 미리 계산을 끝낸 다음, 상대방의 본인 인정을 득하고 합의를 시작할 것이다. 물론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 관계에서 쌍방이 원하는 범위와 정도다. 상대가 잘못을 했으니 인정한다면, '나'는 이 관계가 끝나기를 원하는가.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지되기를 원하는가. 


엄마의 고통은 이 두 질문이 모두 엄마가 원하는 종류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엄마는 현실적으로 '마지못해'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관계가 열렬히, 최선을 다해 만들어지기를 열망하는 사람이었다. 차라리 엄마가 속물이거나 사회적 지위가 중요한 사람이면 부모 자식 간이라도 거래가 확실할 것 같은데, 엄마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 '진심.' 나에게 다정하지 않은 것은 참을 수 있었는데 그에게도 '누군가에게 다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확인한 엄마에게 이 관계는 외형이 어떻든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가짜가 되고 말았다. 


그들은 한 번이라도 진짜 '일심동체'였을까.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게 된 걸까? 아니면 오지은의 노래가사처럼 '너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 너를 사랑하고 있'던 걸까. 과연 우리는, 타인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가. 


버럭 화는 냈지만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사는 아빠에게, 사실을 확인하고 이제 이것을 어떻게 수습해나갈지 판을 벌린 엄마는 엄마만의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기한없이. '탈안방'과 '묵언수행.' 아빠와 한 방에서 잘 수 없다고 판단한 엄마는, 이불을 싸들고 탈출했다. 2층 손님방으로. 한 번도 친정으로 도망친 적 없는 엄마답게, 집은 사수한다. 


아침 밥을 차려준 뒤 쌩 하게 나가고, 아빠가 다 먹고 일어나야 엄마가 들어와서 밥을 먹었다. 온 가족이 다같이 모인 날에도 늘 엄마는 나머지 식구들이 다 먹을 때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꼭 필요한 일이 있으면 문자로 전했고, 식구들 생일, 제사, 명절 모두 다같이 있으면 각자가 각자에게 방사형으로 대화를 하니 겉으로는 티가 안났다, 고는 하지만 둘이 말 섞을 대화를 만들지 않기 위해 우리 세남매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서 대화를 이어갔다. 식구가 많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외동딸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금방 지칠 줄 알았는데, 나는 우리 엄마를 존경한다.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사람. 이 묵언수행은 해외여행을 가서도 지속됐고, 3년 뒤 부엌 인테리어를 새로 할 때까지 이어졌다. 나는 엄마 발끝에도 못따라간다. 체력도 의지도. 역시 '질투는 나의 힘'이다.


 (6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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