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에 지뢰를 밟았다면
주변에 우리 엄마만큼 체력과 지성과 사교력을 겸비한 사람을 많이 보진 못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활기차고 에고는 늘 충만했다. 장애물 같은 건 훌쩍 넘어버리는 사람. 뭐든 열심히 하면 안되는 게 없다는 걸 가르치려 들기보다 보여줘버리는 사람. 어렸을 때부터 엄마보다 잘 살기는 힘들 것 같다 생각했고, 엄마만큼만 살아도 인생 성공이다 싶었다. 커가면서 나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아빠란 인간을, 바람에 일렁이는 들풀처럼 끝도 없이 스러지면서도 이해해보겠다고 노력하는 엄마를 존경했다. 엄마는 ‘포기하다’라는 단어가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살았다.
문제는 엄마가 말로는 아빠를 이해하고 싶다면서 그 말로 끝없이 아빠를 긁었고, 아빠는 본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끝없이 끼어들어 선제적으로 야단치는 엄마를 못견뎌했다. 집밖에서 세파에 시달려본 적도 없는 엄마가, 세상 다 아는 척 하며 아빠에게 눈치없이 처세술 같은 걸 얘기할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인생 노브레끼. 적당히가 없는 이 분, 어떡하지.
물론 아빠도 이런 엄마의 성격을 모르지 않으므로 다섯번쯤 참다가 한 번은 폭발하는 식으로 우리 집은 늘 에너지가 넘쳐났다. 그러니 인생이 게임이라면 엄마와 아빠는 복식팀인 셈인데 아직 스코어가 별로다. 둘 다 (나름) 노력하고 있는데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시키기는 커녕, 둘이 싸우기 바쁘니까. 그러면 이제 각자 단식 플레이를 하도록 권해야 하는 걸까. 아직 모르겠다. 무엇보다 내가 감독도 아니고.
앞으로도 알 수 없을 확률이 높지만, 어쨌거나 아직 내가 모르는 ‘부부의 세계’에 뭔가가 있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오랫동안 동침해왔기에 그 사이에 신뢰라는 닳아빠진 비누 조각은 있었다. 하도 뒤적거리고 문질러 대는 바람에 너무 작아져서 손에 잘 잡히진 않지만 아직 있긴 있는 그것. 어느 날, 얼마 남지도 않은 믿음이 부스러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빠의 잘못은, 짓기만 했으면 엄마가 평생 몰랐을 죄들을, 꼼꼼히 일기장에 기록해 뒀다는 것이고, 엄마의 잘못은 삼십 년간 늘 그 자리에 있던 아빠의 일기장을, 하필 그 때 들추어 보았다는 것이다. 그 때부터 현실지옥이 시작되었다. 서로의 진심이라는 지옥. 엄마의 모든 세계가 무너지는 꼴을, 아빠 대신 내가 지켜보아야 했다.
알고 있는 건 모두 다 주변 사람에게 말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수다쟁이 엄마는 말을 잃었다. 남의 일기장을 본 죄는 가혹했다. 분명 잘못한 사람은 아빠인데 정작 벌을 받는 사람은 엄마였다. 시름시름 앓더니 체중이 6키로가 넘게 빠졌다고 했다. 답도 없는 문제를, 먼저 말해주지 않는 아빠에게 왜 그랬냐고 따져 묻지도 못한 채 계속 혼자 생각하고 눈물 흘리며 식음을 전폐하니 어쩔 수 없었다.
나 말고 누가 있나 싶어서 엄마에게 오는 전화는 빠짐없이 받았다. 하필 환갑을 앞두고 사춘기보다 무섭다는 갱년기를 맞이한 엄마였다. 인생이 통째로 잘못됐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냐고, 본인은 한 평생 고아처럼 부모도 자식도 배우자도 없는 버림받은 인생이라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엄마. 근처 초등학교에 방과 후 도서지도 다녀오던 날은 아이들이 얼마나 맹랑하고 귀여운지 나에게 일일이 얘기하던 엄마가, 수화기에 대고 울면서 “아이들이 더 이상 귀엽게 보이지가 않아” 라고 말하던 날, 나는 절망을 배웠다. 그 날의 내려앉는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오래된 우물의 보이지 않는, 소름끼치도록 시꺼먼 심연을 들여다본 날. 나는 남은 평생 결코 엄마의 외로움을 이해해줄 수 없다고, 고로 그녀의 인생을 한 치도 구원할 수 없다는 그 무력감은, 아직도 엄마에게 털어놓지 못한 나의 고통이었다.
엄마의 고민을 내 것처럼 여겼던 것은, 이 경험이 나까지 무너뜨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비슷한 경우가 생겼을 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볼 계기였다. 무조건 그 일기장을 스캔해서 보관하라는 말이 첫번째로 튀어나왔다. 나와 결혼 생활을 사회적으로 약속한 배우자가 나를 배신했을 때, 나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나만 모르고 산다면 아무 것도 달라지는 건 없다. 내가 안다는 걸 알리면 나머지는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달려있는 시나리오였다. 미혼자인 나로서는 당연히 한 번 잃은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진리에 따라 엄마에게 인생의 결정을 내릴 때가 되었다고 얘기해보았다. 아니 다 제쳐두고 이대로 살다가는 엄마가 제 명에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전화할 때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런 일기를 썼을까, 이 사실을 어떻게 해야 할까 폭풍 상담을 하던 엄마는 ‘이혼’ 말만 나오면 세상 냉정하게 방향을 틀었다. 다 모르겠고 제발 엄마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얘기했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줄 아냐, 여자 나이 60에 나가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며 답을 뭉개버리곤 했다. 아니 도대체 답이 나와 있는데 왜 결정을 못하나, 싶은 내 마음은 점차 엄마에 대한 실망감으로 바뀌어갔다.
도대체 왜? 뭣 때문에 결정을 못하는 거지? 비단 이 일기장 사건뿐 아니라 그 동안 아빠 때문에 못살겠다고 나한테 천만번쯤 얘기해온 거 아니었나? 드디어 핑계가 생겼는데 왜 이제 와서는 꽁무니를 빼는 걸까. 설마, 아빠 사랑해?
이 실망감은, 나에게 엄마의 슈퍼맘 아우라를 지우는 데 상당한 임팩트가 있었다. 엄마가 문제를 어떻게 헤쳐나가는 사람인지, 특히 본인의 인생이 걸린 문제를 어떻게 직면하고 받아들이고 해결하는지 확인해본 것 같았다. 아, 이런 사람이었구나. 직업이든 결혼이든 가족이든, 선택하고 결정할 때 스스로가 원해서 결정한 적이 없는 사람이구나. 독립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자존감이 높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혼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는 많았다. 그렇지만 엄마, 그게 뭐든 간에 지금
본인 생활이 망가져가는데, 내가 보기에는 엄마의 영혼과 정신과 추억과 건강한 주변 관계들이 닳아 없어져 가고 있는데, 그건 엄마한테 소중하지 않아? 무엇보다 왜 지금의 자기 인생을 불행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하지 않는 걸까. 안타까웠다. 가진 것을 내려놓지 못하기에, 불행하다면서 현실에 안주하는 삶. 정확히는 어쩌지 못하는 삶.
실망이 깊어지니 냉소적이어야만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는 경주마처럼 달리면서 그걸 열심히 산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고, 시간을 그저 열심히 때웠을 뿐 엄마는 엄마 자신의 인생을 진지하게 여긴 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살아야 하나, 그런 철학적인 질문들은 좀 한가해야 떠올릴 수 있는 법. 엄마는 늘 너무 바빴으니까. 대학 졸업하자마자 결혼하고 결혼하자마자 아이들이 생기고 또 수도없이 이사를 다니며 가족들을 챙겨야했다. 바쁘면 열심히 사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왜, 라는 질문없이, 단계별로 클리어해야 할 미션이 준비된 결혼생활 패키지를 도장 깨듯 열심히 살아온 엄마 인생.
난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내가 엄마를 어떻게 이해하든 결국 엄마를 설득할 수 없었다. 현실은 견고하니까. 당시 유행처럼 떠들어대던 졸혼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것도 나머지 자기 인생 감당할 자신이 있는, 더 꼬집어 말하자면 스스로를 부양할 능력이 되는 사람에게 가능한 옵션이다. 왜 이러고 사느냐고 내가 먼저 화를 낼 때도 있었지만, 결국 내가 엄마를 설득하지 못한 이유는, 자존심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평생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 엄마를, 따박따박 주는 월급 아껴쓰는 법만 알았던 엄마를, 아빠가 아니라면 자식들 중 누군가가 부양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서로 알고 있기 때문에.
엄마는 돈이 없다. 원래도 없는 집에서 시집을 왔고 아빠는 할아버지의 ‘내 죽으면 다 니 꺼 아이가’ 유지를 받들어, 내가 아는 한 엄마와 공동재산을 형성한 적이 없으니까. 다행히 살림을 꾸려갈 생활비는 매달 들어왔지만 그 외 연금, 저축, 부동산, 상속 문제까지 아빠가 엄마에게 재정에 대해 의견을 물어본 적은 없었다. 가난한 친정과 은퇴한 남편을 둔 65살의 전업주부는 늘 불안하다. 과거를 청산하지도 못하고, 중간 정산을 하지도 못했는데, 미래조차 계획할 수 없는 삶. 내 옆의 누군가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지 않으면 길바닥에 나앉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자꾸만 그녀를 머뭇거리게 만들 것이다.
어쩌지 못하는 사람은 엄마만이 아니다. 평생 살림 살며 애들 낳아 기르기만 했던 우리 할머니는, 팔십이 되어 60년을 같이 살았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비로소 수중에 생활비가 아닌 돈이 생겼다. 할머니는 아빠를 볼 때마다 할아버지가 돈을 내놓도록 설득하라는 부탁을 끝도 없이 했는데, 할머니로부터 받은 아빠의 스트레스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주던 엄마는 할아버지가 나쁜 사람이라고 욕한 만큼 할머니의 무능에 대해서도 한탄을 했다. 자기 남편한테 직접 말 못하고 자식들 조종하는 바보 같은 여자라고. 그러니 선행학습을 이미 끝낸 엄마는, 싫든 좋든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금액이 얼마든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현금인출기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행히 두 세대에 걸쳐 결혼한 여자들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기에 나는 누구나 지 밥벌이는 지가 해야 치사한 꼴을 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뭔가를 결심한 듯 시간만 조용히 지나가는 사이, 소리 안나는 총이 있으면 쏴버리고 싶다던 엄마는, 어느 날 밤 느닷없이 아빠에게 고백해버린다. 뒷일은 운명에 맡긴 채. 역시, 엄마는 엄마였다.
(5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