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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Oct 22. 2023

[09] 여행은 끝나고

70대의 부부: 50년을 함께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은?

- 엄마와 둘이 하는 자동차 여행


드디어 한국에 도착했다. 2주 내내 눌러놨던 마음이 터질 것 같다. 슬픈 일은 없었고, 맛난 거 많이 먹고, 새로운 세상도 보고 다 좋았는데, 왜 내 마음은 이렇게 눈물로 얼룩져 있을까. 엄마가 과연 이 여행을 아름답게 기억할까, 자신이 없다. 애초에 이 기획이 잘못된 건지, 아니면 내가 잘못된 건지, 혹은 엄마와 하는 여행은 늘 이렇게 끝날 수 밖에 없는 건지. 엄마가 다음에 여행갈래? 하면 응,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데.


엄마와 몇 번의 여행을 하면서 깨친 것은, 엄마와 여행을 갈 때는 맘 단디 먹고 '시중 들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 저것 권해봐도 결국 본인이 먹고 싶은 것은 정해져 있고, 심지어 양도 정해져 있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지만 결국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해야 그것이 참여행이다. 자식과 함께한. 그런데 항상 싸우게 되는 것은 고기가 먹고 싶다고 말하면 생선이 먹고 싶다고 하니, 다음 식당에서 생선메뉴를 고르고 있으면 너 아까 고기 먹고 싶다고 하지 않았냐, 이렇게 시작된다. 


도대체 엄마가 원하는 건 뭐냐, 정확하게 말씀하셔라, 빽빽 거리게 되고, 몇 번 이 악물고 인상쓰고 있으면 자식 눈치 보느라 여행이 힘들었다 하시니 몸도 마음도 그저 피로감에 녹아 내린다. 아, 이게 아닌데, 잘할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엇갈렸을까. 엄마의 육아도 이런 식이었을까. 엄마가 해주려는 마음과, 내가 원하는 것이 일치한 적이 있을까. 


나는 엄마라는 고객님께 끊임없이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엄마가 내게 원하는 게 아니었다. 이번 여행을 끝내고 엄마와 내가 각자 주변 지인들에게 2주씩이나 함께 패키지가 아닌 여행을 하다니 대단하다는 많은 칭찬(?)을 받았지만, 사실 서로에게 가닿은 여행을 하지는 못한 것 같다. 내가 딱히 바랐던 것도 아닌 따끈따끈한 김나는 저녁도시락을 고3 내내 저녁마다 먹이려고 학교 앞으로 시간 맞춰 찾아온 엄마처럼, 나도 같은 마음으로, 나같은 딸이 어디 있냐는 자신감으로 '고객 만족도 조사' 전항목에 만점을 받으려고 노력했지만, 우리는 의좋은 형제처럼 밤중 몰래 서로의 논마당에 볏단 갖다 놓느라 힘만 쓰고 정작 만나지는 못했다. 


아마도 나는 엄마가 나에게 쌓아둔 볏단이 얼마나 큰 줄은 모르고, 다시 엄마에게 계속 되돌려줌으로써 ‘당신은 이제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사람입니다’를 끊임없이 알려주려고 노력한 건 아니었을까. 엄마가 나에게 쌓아둔 돌봄과 사랑 포인트를 다시 갖다 바치면 마치 우리가 쌤쌤이라 서로에게 갚을 게 없을 줄로 착각한 게 아니었을까. 이번 기회에 잔뜩 효도해서 그 동안 못채운 미안했던 마음을 털어버리려고 했던 건 아닌가. 내 마음 편하고 싶어서. 


왜 이렇게 가족이 힘든가 생각하면, 너무 끈끈한 부채의식 때문이다. 나의 존재부터, 어차피 갚을 길이 없는 부모가 내게 해준 모든 것을, 돈으로, 같이 보내는 시간으로, 몸빵으로 떼워서 갚으려고 애썼다는 생각. 그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바라서 해준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 공짜가 없는 법이라고, 뭐라도 주면 준 사람은 본전 생각이 나게 되어 있다는 생각에, 끝없이 퍼서 갚으려고 하니 나만 죽어났다. 이봐, 부모의 은혜는 머리카락으로 신을 삼아도 안된다는 거 몰라? 알지, 근데 어떡해, 나는 이 사랑을 전해줄 자식이 없다고. 


이래서 내리사랑인 것이다. 진심이든 효용이든 우리는 서로에게 빚지고 기대서 살 수 밖에 없다. 어떤 것은 너무 거대해서 도저히 그것을 역행해서 준 자에게 다시 돌려줄 수 없는, 그런 사랑도 있는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을 무슨 수로 갚겠다고. 나는, 감사함을 표해야 할 일을, 나를 이렇게 만들어주고 살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생각하면 될 일을, 중력을 거스르는 에너지를 모아 내리사랑의 물길을 거꾸로 돌리려고 했던 것 같다. 방향이 틀렸다. 이 엔트로피는 그저 퍼져가며 아래로만 향할 뿐, 받은 만큼 주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70살 생일을 맞은 아빠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그랬다. 

'이제야 마음이 편하다'고. 


고맙고 미안한 부모님도 다 돌아가시고, 형제자매들도 다 이제 남남이 되고,

자식들은 다 커서 각자 자기 일을 하거나 가정을 꾸리고,

이제야 자연인 이00씨로 남았구나, 우리 아빠는.


죽어야 끝난다. 내 미안함도, 고마움도 모두 내가 그저 안고 살아가야 할 덩어리. 아무리 무거워도 누군가에게 줄 수도, 어딘가에 몰래 버릴 수도 없다. 지구 위에 이런 감정을 오롯이 느끼게 해줄 아무도 없다면, 나는 살아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각자 이런 정도의 짐은 가슴에 얹어놓고 살아가는 거 아닐까, 하는 것이 요즘 나의 작은 위로. 


가족, 나를 너무 오랫동안 괴롭혔던 질문. 아빠의 저 말이 조금은 나를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엄마 아부지의 50여년이 다 되어 가는 결혼 생활을 가끔 생각해보면, 지난했지만 그래도 헤어지지 않았기에 지금의 감정을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용서한 것도, 화해한 것도 아닌, 그렇지만 멀리가지 않아줘서 고마운 이상한 마음. 이제야 비로소 서로에게 적정한 거리를 찾은 것 같다. 그리고 이 여행은, 점차 끝나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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