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에 모태솔로를 탈출하기까지
지금에서야 타인의 연애얘기인 [나는 솔로]를 재미로 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지하게 봤었다. 남의 연애 내용을 뭐 그리 열심히 보냐는 친구의 핀잔에도, 계속해서 볼 수밖에 없었다. 서른 넘어서까지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연애가 하고 싶었다. [나는 솔로]는 죽어있던 나의 연애세포에 생기를 불어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솔로]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여자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주고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연애 교과서였다. 그렇다. 나는 연애를 [나는 솔로]로 배웠다.
유명 모 가수의 노래 가사 일부이다. 대중가요에 별 관심이 없던 나는 이 노래를 알지 못했으나, [나는 솔로]에서 종종 이 노래를 자꾸 듣게 되어 알게 됐다. 가사가 머릿속을 맴돈다. 타인에 의해 좌우되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연애가 아닌, 자신을 사랑하며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솔로의 모습을 의미하는 것 같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가사다. 빛이 나는 솔로란 어떤 솔로인가? 나는 빛이 나고 있나? 모태솔로였던 나는 이 가사가 도통 공감이 가지 않았다.
빛이고 뭐고 그런 거 없어도 좋으니 연애는 좀 해보자
(빛이 나는 솔로 vs. 빛을 잃은 연애)를 선택하라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빛을 잃는다 해도 살면서 연애 한 번은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서른 넘어서까지 모태솔로였던 나는 그만큼 연애에 대해 간절했다.
나를 포함하여 대다수의 모태솔로들은 보통 연애를 어려워한다. 연애의 결핍이 있는 모태솔로가 스스로의 삶에 만족을 느끼며 당당하게 '빛이 나는 모태솔로'의 경지에 오르기란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하다. 지쳐만 가는 연애를 잠시 쉬면서 보다 나은 자신만의 삶을 사는 게 '빛이 나는 솔로'의 포인트라면, 이것은 연애 경험이 어느 정도 있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 애초에 '빛이 나는 솔로' 라는 말은 모태솔로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보통 서른 살까지의 모태솔로들은 찾아보면 핑곗거리들이 있다. 공부해야 해서, 대학원 학위 때문에, 취업준비 때문에, 회사생활이 바빠서 등의 이유는 그것이 사실이든 핑계든 그가 그 나이대까지 모태솔로인 이유를 변호해 준다. 그런데 서른을 넘어서 중반이 넘어가고 후반이 되면 점점 위와 같은 핑계들도 통하지 않게 된다. 서른 중반이 넘어가도록 여전히 모태솔로상태라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디 문제 있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한다. 그 생각이 얼마나 지배적인지, 나조차도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
나 진짜 어디 문제 있는 걸까?
연애경험 있는 솔로보다 나이 많은 모태솔로가 훨씬 불리한 이유는, 아무도 그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모태솔로라는 말에 초반에는 지인들이 여기저기서 소개팅을 주선해 주더라도, 점점 그들의 인력풀에 소개해줄 사람이 없어지게 된다. 보통 비슷한 사람을 소개해주기 마련이므로, 모태솔로는 주선자 선에서 필터링되기 십상이다. 즉, 30대 이상의 모태솔로 타이틀을 가진 희귀한 사람이라면, 그에게 맞는 사람도 역시 희귀하다.
눈이 낮으면 다행이기라도 하다. 모태솔로인데 눈까지 높으면 더더욱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내 얘기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성에 대한 요구조건과 이것저것 따지는 것들이 많아졌다. 외모, 성격, 집안, 종교, 학벌, 직업, 사는 곳, 재산, 경제력, 부모의 노후 준비까지. 아무것도 모를 10~20대 때 연애를 해봤다면 오히려 따지는 것들이 적었을 텐데.
내가 서른 넘어서까지 연애를 못한 이유, 30대 모태솔로에 이르게 된 원인은 무엇인지 돌아봤다. 내가 키가 작아서? 여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재미가 없어서? 여기가 문제라서? 저기가 문제라서? 원인과 이유는 다양하다. 내가 내린 연속된 결정과 선택의 결과가 지금 30대 모태솔로의 나다. 내가 30대 모태솔로가 된 가장 큰 원인은, 10,20대 때 연애를 하지 않은 것이다. 너무 당연한 소리다. 10-20대에 연애를 하지 않은 이유는, 공부하는데 바빠서, 졸업 준비하는데 바빠서, 대학원 연구하느라 바빠서, 취업 준비하느라 바빠서라고 적당히 둘러댈 수 있겠다. 하지만 이유들이 어찌 됐건, 결정적으로 그때 연애를 시도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선택이 정말 내 삶에서 그게 최선이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당시의 삶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게 되어 연고도 없는 지역으로 이사했다. 30대가 되어 취업도 했겠다 이제는 정말 이성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이 지역에 연고가 없었을 뿐 아니라, 취업한 곳이 남초 회사였기에 이성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까마득하다. 언제 연애하고 언제 결혼하나. 30이 넘어서도 결혼은커녕 연애도 못해본 아들의 머릿속에, 환갑이 넘으신 부모님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한답시고 연애는 생각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다들 핑크빛 연애를 꿈꾼다. 정작 대학생 때 기독교 동아리에 열심이었던 나는 연애를 나중에 하리라고 다짐했었다. 대학원 때는 연구하고 논문 쓴다고 연애를 미루었다. 취업에 성공하고 타지로 와서야 연애를 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이 지역에 연고가 없었기에 자연스러운 만남이 불가했고, 지인의 소개를 받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크리스천을 만나고 싶어서 집 앞 교회를 출석하였으나, 결혼 적령기 자매들이 없었다. 크리스천 전용 만남 어플을 포함하여 데이팅 어플들에 가입하고 크리스천 전용 결혼정보회사 두 군데를 가입했다. 약 3년 간 지인 찬스를 통한 만남 20 회, 어플을 통한 만남 15 회, 결혼정보회사를 통한 만남 33 회, 도합 68 회의 소개팅을 통해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결혼정보회사 가입비와 소개팅마다 들어가는 비용을 합하니, 1,000만 원은 족히 나왔다.
- 솔로로 지낸 기간 : 12687 일 (34.76 년)
- 소개팅을 시도한 기간 : 1009 일 (2.76 년)
- 소개팅 총 횟수 : 68 회
- 소개팅 총비용 : 약 1,000만 원
다른 이들은 주변에서 잘만 연애하고 결혼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어려웠는지. 덕분에(?) 남들과는 다른 특이한 '연애 시도 경력'이 있다. 남들은 자연스럽게 이성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에 골인할 때, 나는 다른 것들을 하고 있었다. 뒤늦게 짝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이성을 만나는데 집중했다. 이성을 만나기 위해 집중했던 이 시간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짝을 만나기 위한 이 기간 동안 마음고생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돌아보는 시간이자,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소개팅을 하며 여러 이성을 만나는 가운데, 내가 가졌던 원하는 이성상도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옆에 있는 나의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매일매일 되새기게 된다. 68번의 소개팅을 통해 지금의 아내를 만나, 3 일 만에 고백하고, 131 일 만에 프러포즈하고, 160 일 만에 결혼했다. 가끔 아내를 만나기 전후의 타임라인을 회상한다. 뭐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감격과 감사의 시간들이다. 힘든 시기가 있었던 만큼,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참 귀하게 느껴진다.
이성을 만나려는 30대 이상의 모태솔로들에게는 세세한 현실적인 조언도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따뜻하고 지속적인 응원과 격려가 필요하다. 주변에는 연애에 관해 조언해 주는 많은 콘텐츠들이 있다. 30대 이상의 모태솔로에게 필요한 것들은 30대까지 모태솔로였던 사람이 잘 안다. 어쩌면 이들에게 현실적인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연애고수가 아니라, 이성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발버둥 쳐본 30대 (전)모태솔로일 수도 있다.
모태솔로라고 '빛'이 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저 연애 경험이 없어서 그 '빛'이 드러나지 않은 것뿐이다. 앞으로 자신이 가진 것들로 이성에게 충분한 어필을 하면 된다. 이를 위해, 평소에 장착하고 있어야 할 기본 소양들이 있다.
연애에 대한 꺾이지 않는 마음
스스로에 대한 건강한 자존감
꾸준한 자기 계발
갖추어야 할 것들이 많다. 30대 모태솔로들이여. 지금 좌절하고 앉아있을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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