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기록인가
나는 2018년 8월 28일을 잊지 못한다. 내 인생의 자전축이던 어머니를 보내던 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우리의 기억을 기록하자. 그런데 막상 펜을 들자 남은 건 조각뿐이었다. "그날 어머니와 무엇을 먹었고, 어떤 기분이었는지"같은 단편적 조각들. 그것만 가지고는 기억을 남길 수 없었다.
어머니에게 정작 묻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학창 시절 어머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떤 꽃을 좋아했을까? 아이들을 키우며 어떤 것을 생각했을까? 수많은 빈칸들이 남아있는 추억과 감정 속에 공백으로 남고야 말았다. 우리를 사랑했던 추억이 많이 남아있을수록 그 시간은 잔인했다. 잔인할 만큼 효율적인게 시간이라 아련히 지나면 지날수록 추억과 기억은 풍화되고야 말았다. 그렇게 나의 다짐은 파도에 밀려나가는 모래알처럼 지워져 갔다.
그 사이 아버지는 더 많은 세월을 견뎠다. 홀로 남은 차디찬 시간 앞에, 그 시간을 붙잡을 수 없으니 기력이 서서히 빠지는 게 눈에 보였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결심했다. 있을 때, 듣자. 기록하자. 우리의 추억과 기억을 온전히 보존하자.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그 시발점은 얼마나 따뜻한 별이었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앞으로 어디로 가는지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이 기록이 필요했다.
그래서 올해 2월부터 아버지와 단둘이 있을 때마다 녹음기를 켰다. 버튼을 눌러 두면, 그 공간은 곧 타임머신이 됐다. 아버지 서보영이 아닌 할머니의 막내아들 서보영의 투정, 공무원 서보영의 고집, 남편 서보영의 애정, 아버지 서보영의 다정함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내 앞에 펼쳐졌다.
어떨 때는 무용담과 같은 공직자생활의 에피소드에 깊이 빠져들기도 했고 아련한 추억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담담히 사건을 말했고, 나는 그 사건의 바다에 올라탔다.
아버지와의 시간은 시간을 거꾸로 되감았다. 아버지 첫 부임지였던 복현동 동사무소의 좁은 책상들, 어머니와의 첫 데이트, 압력밥솥과 텐트가 실린 자동차와 여름, 주말 다리미판 위에서 김이 오르던 셔츠, 어머니가 떠난 뒤 빈자리를 버티게 해 준 묵주알까지. 그 모든 장면 사이로 한 문장이 꾸준히 떠올랐다. “아버지 어머니는 내 삶의 방향타였다.”
이 기록의 첫 독자는 우리 가족이다. 그러나 언젠가 비슷한 후회를 품은 누군가가 이 책을 펼친다면, 그 사람에게도 작은 방향타가 되길 바란다. 왜 지금 기록인가? 아직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서로의 속도를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 지나면 이 문장들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시작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 이 기록은 빚 갚기다. “먼저 가 있어라. 다 키워 놓고 갈게.” 어머니의 마지막 날, 아버지가 귀에 대고 속삭였던 말. 그 약속의 나머지 절반이 내 몫임을 안다. 좋은 아들이 되기 전에 좋은 증인이 되는 일. 듣고, 받아 적고, 정리하고,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일.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사랑과 인연과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