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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했던 우리

by 토모

“셋 키우면서 제일 기억나는 거, 하나씩 없어요?”
내가 묻자 아버지는 잠깐 허공을 보다가 고개를 젓는다.
“그런 게 없다. 나는… 그런 감성이 별로 없다.”


운동회, 재롱잔치, 상장, 편지 같이 기억날만한 에피소드의 꼭지를 고구마줄기처럼 줄줄 얘기해도 아버지의 대답은 비슷했다. “너거 외할아버지는 운동회 가봤을낀데, 나는 아마 못 갔다.” 생각보다 더 단답이라 당황스럽기도 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가득 채울 생각이었는데 꽉 막혀버렸다.

“그땐 회사 일이 그렇지 뭐.”

담담한 한 줄로 이어지는 대답들 속에 아버지의 무뚝뚝함이 무던히 흘러나왔다.


대화는 엉뚱하게 MBTI로 흘렀다.

“아버지는 ESTJ같아요 하하. 저는 ENFJ인데.”
“그게 뭔 말이고.”
감성이 많고 적고의 차이를 이야기하자 아버지는 씩 웃으며 “나는 감성과는 좀 거리가 멀다”고 답했다. 아버지에게 감정은 말로 치장하는 게 아니라 삶에서 묻어나온다는 것을 느꼈다. 말은 무뚝뚝해도 언제나 가족을 생각하던 그 마음.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풍족하게 살 수 있도록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던 평생의 생활이 아버지의 감성이자 삶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주공 1단지에 들어가던 날의 냄새가 아직 남아 있다. 엘레베이터도 없던 5층아파트의 403호, 현관문이 닫히며 “퍽” 하고 울리던 소리. 그 집엔 큰 사건이 별로 없었다. 대신 작은 일들이 질서 있게 반복됐다. 아버지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현관문이 아주 살짝, 조심스럽게 닫혔다. 어머니는 쌍둥이 고등학생 아들의 도시락 4개를 준비하기 위해 새벽부터 바지런히 움직였다. 그렇게 우리 셋은 다음 날의 수업을 준비했다. 그 평온이 우리에겐 ‘행복’의 다른 말이었다.


우리에겐 드라마틱한 장면보다는 익숙하고 꾸준한 장면이 많이 남았다. 퇴근 후 주말마다 설거지를 도맡던 아버지의 등, 일요일 정오만 되면 '전국노래자랑' 오프닝 음악에 맞춰 어머니의 흥을 돋워주던 아버지의 실룩이는 엉덩이, 일요일 저녁 와이셔츠를 다리며 한 주를 정리하던 손. 평범함 속에서 아버지의 그 움직임들이 '우리 집'이라는 단단한 단어를 만들어냈다.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했던 시간들이었다.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면 아버지는 더 조용해졌다.
“엄마하고 가장 기억나는 건 뭐예요?”
“항시… 무난하게 살았다. 특별할 일도 없고.”
무난을 말하는 목소리는 자랑보다 더 깊었다. 무난은 그냥 오지 않는다. 유혹을 물리치고, 나를 덜어 우리를 더해야 도착하는 지점이다. 아버지는 커다란 명예보다 그 지점을 지켰다.


한 번쯤은 화려한 드라마를 바랐던 적도 있다. 운동회 때 결승선을 끊으며 아버지와 포옹하는 장면 같은 것이랄까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누군들 없을까. 하지만 너무 조용하지도 너무 눈에 띄지도 않게 나도 그렇게 무던하게 살았다. 흘러가는 돗단배처럼 그렇게 아버지가 얘기하는 평범한 삶을 아들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늘 자신을 과장하지 않았다.

“특별한 건 없다. 그래도 잘 살았다.” 그 결론을 우리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특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갔고, 오래갔기 때문에 우리 가족의 애정이 넓고 깊어졌다. 무난하게 버틴 세월 사이로, 아이 셋이 태어났고, 아이 셋도 무난하지만 특별한 각자의 장을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결국 기억나는 이야기를 고르지 못했지만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모든 순간들이 아버지에게는 특별했을 것이리라. 그 순간순간이 행복이고 삶의 이유였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말 대신 적어 내려간, 아버지의 긴 편지였을 것이라고 지금은 믿는다.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했던 우리.
그 무난의 기록이, 우리 가족의 가장 화려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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