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바르지만 자유롭게

사람의 온기를 잃지 않았다

by 토모

“난 바르게 살려고 했다.”


아버지의 삶을 키워드로 꼽아보라는 질문에 아버지가 고른 첫 문장이었다. 이내 곧바로 단서가 붙었다. “그렇다고 너무 경직됐다는 말은 아니다. 바른 길을 택하려고 애쓴 거지.”


아버지의 ‘바름’은 규칙의 경직성이 아니라 태도의 방향이었다. 할머니는 소리치지 않는 훈육으로 아버지를 길렀고, 아버지는 그 방식을 평생의 걸음으로 삼았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분명하되, 사람을 대하는 손길은 부드럽게—아버지의 바름은 언제나 ‘사람’을 먼저 두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결과보다 과정을 보았다. 불러세워 다그치기보다 식탁에 앉혀 한 번 더 설명했다. “왜 안 되는지”를 납득시키면 금지는 명령이 아니라 합의가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 집에선 문을 쾅 닫는 일이 드물었다. 문이 열려 있으면 시선도 열린다. 우리는 그 열린 시선 속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우리 또래 부모들과 달랐어요. 아버지와 술자리를 같이한 친구도 드물다더라고요.”
“다 두들겨 패고 윽박지르는 건 내하고 거리가 멀다. 사람이 대화가 돼야지.”
“맞아요. 아버지하고는 술잔이랑 이야기를 더 주고받았죠.”
“어른 대접을 하면 어른이 되더라.”


우리 부자는 오래전부터 잔을 함께 기울였다. 아버지가 “니들 스무 살 되면 같이 한잔하는 게 소원이었다”고 말하던 사람이니. 그 대우에 어울리려 우리는 어른을 흉내 냈고, 마흔을 가까스로 넘기며 비로소 어른이 되어 가는 자신을 목격한다.


“아버지는 삶의 목표를 어떻게 세우셨어요?”
“특별한 건 없다. 니들 키우려고 집 사고, 학교 보내고… 그게 잘 사는 길이었다.”
“크게 야망이나 성공을 말한 적은 없었죠.”
“사는 게 목표다. 잘 살아내는 게 제일 큰 목표다.”


아버지는 늘 목표보다 삶을 앞세웠다. 표창보다 월급, 명예보다 가족, 그 순리를 지키니 큰 산을 오르지 않아도 넓은 들이 열렸다. 남들이 ‘대단한 이력’이라 부르는 장면들보다 우리가 오래 가슴에 품어두는 것은 매일 저녁 무사히 열리던 현관문 소리다. 아버지는 그 소리의 주인이었다.


“거기에 하나만 더. 즐거움.”
“즐거움이요?”
“사람은 웃어야 길게 간다. 바르게만 살면 숨이 막힌다. 같이 웃고, 같이 한 잔 하고 그래야 삶이 재미있지. 하하.”


살다 보니 나도 아버지의 문장을 내 삶의 첫머리에 두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바르게 살되 뻣뻣하게 살지는 말자. 사람을 중심에 두고 즐겁게 살자. 아버지의 하루가 내 하루의 리듬이 되어 간다.


바른 길을 택하되, 사람의 온기를 잃지 않았다. 아버지의 삶이었다.
그 온기가 있었기에 우리의 자유는 방황이 되지 않았고, 아버지의 바름은 각지지 않게 오래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따뜻했던 세월이 지금의 우리를 지탱한다.




keyword
화, 목, 토 연재
이전 14화약속과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