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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대도

하고 싶은 것과 미안한 것

by 토모


아버지에게 다시 태어나면 무엇을 하며 살고 싶냐고 물었을 때, 아버지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옛날에는 장래희망, 꿈 그런 거는 뭐 중요한 게 아니고... 산책도 가고, 여행을 좀 다니고 싶었는데, 외국도 좀 가고... 젊을 땐 국내를 꽤 돌아다녔는데... 제대로는 못 했다.” 아쉬움이 담긴 회상 끝에도 소박한 바람을 덧붙였다.


"또 다시 태어난다면은 주어진 여건 내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거를 좀 많이 하고 싶어"


아버지의 삶은 오랜 기간 목적지도, 기착지도 없었다. 그저 오늘의 속도로 걸어가다 “김미숙"이라는 파랑새를 만났고 "우리"라는 기항지를 만난 느린 여행이었다. 묵묵히 오늘을 살아가며 그 기착지에 씨앗을 뿌리고 풍성한 결실을 남겼다.


못내 예전 엄마가 했던 이야기가 연결되길 기대해 한마디 더 거들었다.

“엄마는 다시 태어나도 아버지랑 결혼한다고 우리한테 항상 강조했잖아요. 제가 그것만 생각하면 두분은 참 훌륭한 평생인연이었다 싶었습니다”


"너거 엄마가 참 현명한 사람이었다"
다시 태어나도 엄마와 결혼하겠다 이런 꼬들꼬들한 말은 안나왔지만 아버지의 뜻이 무슨 말인지는 안다. 주말이면 아버지는 엄마를 대신해 설거지를 했고, 다리미를 꺼내 와이셔츠를 매만졌다. ‘전국노래자랑’이 나오면 소파 앞에서 엉덩이 춤을 추었다. 밖에선 무게를 지키고 집에서는 엄마에게 애교를 부리던 아버지.


잠깐의 침묵 끝에 아버지가 속에 담긴 얘기를 털어놓았다.
“조금… 미안하다. 맨날 늦게 들어오고... 내가 좀 더 일찍 와서 도움도 주고, 그랬으면 좋았을 걸.”
그리고 곧장 덧붙였다. “그래도 같이 있을때 뭐, 잘 지냈지 뭐.”


말은 그렇게 하셨지만 우리는 안다. 우리 아버지는 세상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각자의 역할에 항상 최선을 다했다. 부당한 청탁을 거부했고 동료들과 정겹게 어울렸던 공직자로서,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장난감을 사러 나가던 아버지, 한달에 한번은 꼭 장모님과 외식을 하자고 먼저 제안한 사위. 수많은 아버지의 직함 가운데 소홀했던 것은 없었다.


아버지가 다시 태어나면 ‘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동안, 나는 ‘미안한 것’을 떠올린다.
아버지는 오래 아팠다. 어머니를 돌보느라 스스로의 아픔을 뒤로 미뤘던 시간들. “내가 아픈 것도 아니지”라며 웃어 넘기던 말에 기대 우리도 아버지의 아픔을 돌아보지 못했다. 그때의 미안함이 지금의 다짐이 되었다. 전화 한통, 함께 하는 식사 한번을 더 늘려가며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보려 노력한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는 반가운 소리를 또 한번 하셨다.

34년 공직에 있으면서 세아이를 키우고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아버지는 성주에 지은 계곡이 있는 집과 빚만 남았다. 이후 10년이 지난 오늘 드디어 아버지는 그 채무를 다 갚았던 것이다.
“지난달로 빚 이자, 한 푼도 없다. 이제 10원도. 하하”

큰 도움한번 못드리고 40살이 된 아들로서 부끄러움도 있었지만 그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 가슴이 시원했다. 아버지가 온전히 감내한 가장의 무게를 아버지 스스로 벗어낸 그 오늘이 아들에게도 너무나 크고 자랑스러운 모습이었던 것이다. 어른이 되는 일은 이렇게 거창한 승진이 아니라, 매달 제때 나가는 이자를 멈추는 일일지도 모른다.


몸은 예전보다 무거워지셨지만 그래서 아버지는 요즘 어깨를 더 펴고 웃는다.

“자식 자랑도 많이 한다.”

40살이 되어 스스로의 길을 개척한 아들들의 모습을 대견해하는 아버지. 나는 그 웃음을 오래 보고 싶다.


다시 태어난대도, 우리는 결국 같은 사람으로 돌아올 것이다. 어머니가 남긴 말처럼 "다시 태어나도 두사람이 함께 하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가 "두사람의 가족"이면 좋겠다.

다시 태어난대도, 우리는 서로의 속도에 맞춰 걸을 것이다. 작은 차에 옹기종기 올라타 텐트하나 덜렁 싣고 여행을 가고 길이 막히든 안막히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의 시간으로 즐겁게 살아갈 것이다.


나는 또 묻는다. “아버지, 꿈 같은 게 있었나요?”
아버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웃는다.
“사는 게 목표다. 잘 살아내는 게 제일 큰 목표다.”

마음으로 다시 물었다. "아버지, 우리 가족과의 삶은 어떠셨어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자부심이 우리 가족이었고 아버지의 힘의 원천이 우리 가족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다시 태어난대도, 우리의 집은 또 이렇게 지어질 것이다. 함께 웃고 울고, 아버지의 엉덩이 춤이 있고, "성적표도 잘했으면 갖고 오겠지”라는 믿음이 식탁 위에 놓여 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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