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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두 사람이 나를 세웠다

by 토모

“아버지에게 김미숙은?”
“최고의 사람이지.”

사랑이냐고 되묻자,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사랑은 당연한 기고, 최고. 내가 바르게 이래 살아온 것도 여자 두 분 덕분이다. 한 분은 내 어머니, 한 분은 너희 엄마. 그 둘이 나를 세웠다.”


1952년생 서보영의 인생은 두 사람이라는 기둥으로 서 있었다.
첫사람은 동인동 셋방에서 품위로 아들을 가르치던 홀어머니였다. 부르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 소리치지 않고 예의를 가르친 사람. 그 품에서 아버지는 단정함과 공손함을 배웠고, 가장으로서의 품위와 따뜻한 인격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두번째 사람은 복현동 동사무소에서 만난 현명한 아내였다. 첫 월급 통장을 한 달 만에 다시 건네며 “당신이 우리 집 기둥”이라고 아이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주려던 사람, 아이 셋을 자유로 키우면서도 그 선은 분명히 그어 주던 사람, 병과 함께한 15년 동안에도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놓지 않던 사람. 그 두사람의 애정과 신뢰, 존경이 우리 아버지의 척추가 되었다.


아버지의 여정은 화려하진 않았으나 단단했다. 연천 한탄강의 눈바람을 지나 라디오를 듣던 팔공산 아래 골방, 북구 복현동의 민원 창구로, 생활의 장소가 휙휙 바뀌면서도 아버지는 쇼핑백에 가득 든 현금을 거부하고 소신과 원칙을 지키며 공직자의 근본을 지켰다.


아버지의 이야기로 따라온 길에는 최고란 것은 화려한 칭호가 아니라, 삶을 지탱한 태도의 이름으로 종착지로 남았다. 아버지를 이끈 두사람이 우리에게까지 이어가 사람의 온기가 남았다.


2004년 겨울, 어머니의 병명이 처음 불린 날. 수도꼭지처럼 터지던 눈물과 14년 반의 투병. “여기 오면 낫겠다”는 소망 하나로 지은 계곡이 보이는 집은 기적을 꿈꾸는 장소가 아니라 아픔을 견디게 한 일상의 장소였다. 여름엔 물에 발을 담그고, 가을엔 낙엽을 모으며, 겨울엔 장작 타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두사람이 일상의 행복을 누렸다.


2018년 8월, 어머니의 마지막 생일 전날.
“먼저 가 있어라. 애들 다 키워 보내고, 약속 지키고, 그때 갈게.”
임종 곁에서 아버지가 남긴 약속은 그 무엇보다 단단했다. 남은 사람의 시간은 오래 비바람이 일었지만, 그 시간은 슬픔과 함께 사는 법을 가르쳤다.


아버지의 몸도 오래 버텼다. 2007년 겨울, 투표일 밤에 쓰러진 뒤 18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내가 아픈 건 괜찮지” 라며 엄마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두 사람이 한 사람을 세웠고, 그 한 사람이 한 집안을 세웠다. 이제 그 항해의 키를 물려받은 우리는 새로운 승조원들과 함께 새항해를 시작한다. 조금 더 일찍 돌아오고, 조금 더 자주 고마움을 말하고, 조금 더 자주 손을 잡으며. 우리의 삶의 항해는 그래도 아버지라는 나침반이 있어 조금은 덜 어색하다. 그리고 항해하는 배의 돛을 팽팽히 당겨 주는 바람처럼, 항상 옆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힘들이 여전히 우리를 떠받친다. 그 바람의 이름을 우리는 안다.


사랑합니다. 엄마,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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