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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08. 단테의 지옥도 멀리서 보면 아름다울까

이탈리아 36일 여행기

by 하도

22.09.13

아침 - Il Fiore del Latte

저녁 - Osteria al Casale

숙소 - airbnb https://www.airbnb.co.kr/rooms/14423090



어제 저녁으로 먹었던 카프레제 샐러드의 부라타 치즈가 너무 맛있었는지 일어나자마자 또 생각이 났다. 아침에 가게에 가보니 근처에 작은 마켓이 있어 부라타 치즈와 복숭아, 바질 패스토를 사고, 어제 지나가면서 보았던 사람들이 줄 서 있던 빵집에서 가장 인기 있어 보이는 빵을 하나 샀다. 모두 간단한 식재료로 다 해서 10유로가 안 되었던 거 같은데 신선한 재료의 맛을 좋아해서인지 지금까지 먹었던 모든 식사 중 가장 좋았다.


마테라 * (빵 + 바질 패스토 + 프로슈토 + 부라타 치즈) = 행복


사씨 지구는 크게 세 곳으로 나뉘는데 내가 있는 숙소는 그중에 가장 관광객이 많은 곳에 있다. 오늘은 아직 개발이 덜 되어선지 저녁에도 주황색 불이 켜지지 않아 어둠으로 뒤덮이는 곳에 가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대부분 관광객들이 마테라를 당일치기로 와 중심만 보고 떠나기 때문에 가장자리로 갈수록 버려진 동굴들이 많았다. 빈 동굴을 지나가며 몇 십 년 전만 해도 여기서 사람들이 살았다는 게 믿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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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들어가고 싶은 곳도 해야 할 것도 없기에 그냥 사씨 안을 어슬렁 어슬렁 걸어 다녔다. 다른 관광객들도 특별히 할 일은 없어 보였다. 성당이 있으면 들어가 보고 의자가 있으면 쉬었다.


성당에서 만난 귀여운 천사들


그나마 가장 큰 볼거리는 바위를 깍아 만든 암석 성당이었다. 바위를 반만 깎아 성당 입구를 만들고 반대쪽은 그냥 울퉁불퉁한 암석으로 남겨 두어서 멀리서 보았을 때 더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만들다 만 거 같지만 오히려 그래서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는 거 같았다.


사씨는 협곡을 등지고 만들어져서 맞은편에 있는 언덕에 올라가면 사씨 지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택시를 탈 수 있긴 하지만 아직 돈을 잘 쓰지 못하기에 그리고 아직 젊기에 협곡을 걸어서 건너기로 했다. 분명히 멀리서 봤을 때는 경사가 급하지 않아 보여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크나큰 오산이었다. 길이 좁고 작은 돌이 많아 겁쟁이에게는 힘든 길이었다. 거기다 야경을 보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 해가 생각보다 빨리 저버렸고 협곡 아래는 아무런 빛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어두웠다.


협곡 위에서 바라본 사씨


하지만 그럼에도 마테라에 또 갈 기회가 있다면 나는 또 협곡을 넘을 것이다. 언덕 위에서 바라본 사씨는 그 무서움이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 만큼 멋있었다. 멋있다는 말로는 부족한,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게 비현실적이라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거 같은 비뚤비뚤한 네모난 창문을 가진 네모난 작은 건물들이 빼곡히 있고 해가 지면서 주황색 불빛이 켜지기 시작하는데 인간이 만든 것이 자연만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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