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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도 Aug 16. 2023

Day 18. 검은 에트나

이탈리아 36일 여행기

22.09.23

Catania, Etna

점심 - Ristorante di Rifugio Sapienza

저녁 1차 - TANTìKKIA - cucina e vino 

저녁 2차 - docalquadrato


에트나까지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기차역까지 가야 했다. 분명히 어젯밤에 구글 지도에서 검색했을 데는 기차역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는데, 아침에 다시 찾아보니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기차역까지는 걸어서 25분. 다행히 일찍 일어나 여유가 있어 걸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젖은 신발로 트래킹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가다가 버스를 탔다. 예정 시간보다 버스가 늦게 와 헐레벌떡 탔더니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버렸더. 거기다 급행 버스였는지 바로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지도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내린 정류장은 하필 자동차 전용 도로 같은 곳이라 비를 피할 곳이 없었다. 비는 소나기가 되었고 신발은 다 젖었버렸다. 그런데 그 순간 중요한 건 아침에 딱 하나 있는 에트나 가는 버스를 타는 것이었기에 상관없었다. 내렸던 곳 반대편에서 기차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출근 시간이 되어버려 차가 막히기 시작했고, 이 속도로 가다가는 에트나 가는 버스를 놓칠게 뻔했다.


고민하다 버스 말고 다른 방법으로 에트나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전에 옷이라도 갈아입기 위해 숙소에 잠시 들리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급행을 탔는지 버스는 중간에 멈추지 않고 기차역까지 한 번에 갔다. 하지만 이미 버스 시간은 지났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에트나 버스를 타는 곳으로 갔는데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물어보니 오늘 에트나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 한 편 더 운행한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버스를 타고 에트나에 갈 운명이었나 보다.



구불구불 산을 올라 도착한 에트나는 예상보다 추웠다. 가지고 간 옷 중에 가장 따뜻하게 입어도 추운 날씨였는데, 거기다 양말과 신발까지 다 젖어버려 더 힘들었다. 도저히 이 상태로는 올라갈 수 없어 근처에서 양말과 옷을 사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샌드위치까지 먹고 구경을 나섰다.


흔들흔들 케이블카


에트나를 경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그중에 나는 케이블카를 타는 방법을 선택했다. 걸어서도 올라가던데 도저히 오늘은 못 할 거 같았다. 케이블카는 바람이 많이 불어 계속 흔들렸다. 에리체를 가기 위해 탔던 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무서웠다. 


미끄러지기 쉬운 길이다 보니 조심해야 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는 그냥 원하는 곳까지 올라가 구경을 하면 된다. 작은 돌멩이가 많아 미끄러워 나는 너무 높이까지 올라가지는 않았다. 


에트나는 활화산이다. 그래서 곳곳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옛날 사람들은 이 연기가 아프로디테의 남편 헤파이스토스가 부인이 바람을 피울 때마다 화가 나서 내뿜는 불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스로마 이야기의 한 조각을 에트나에서 찾을 수 있었다.


모두 검은색이다.


에트나에 대한 나의 감상은 "검은색"으로 표현할 수 있다. 어떻게 이렇게 산이 검을 수 있을까 할 정도로 검었다. 그런데 또 중간중간 검은 흙 사이로 풀이 있고, 무당벌레가 날아다녔다.


구름 속


구름 위에 있다 보니 가끔씩 구름이 산에 부딪혀 구름 속에 들어갔는데, 한 번은 무서울 정도로 주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에트나 위에서 바라본 시칠리아


에트나 자체도 엄청났지만 그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대단했다. 광활함이라는 단어를 몸소 느꼈던 게 처음이었던 거 같다. 저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는. 내 시선을 가로막는 게 아무것도 없는. 그래서 아무 생각 할 수 없는. 


에트나를 계속 느끼고 싶었지만 정말 너무나 추웠다. 그래서 아쉽지만 좀 일찍 내려와 카타니아까지 가는 오후에 단 한 번 있는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오늘은 시칠리아, 그리고 이탈리아 남부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어제 먹었던 닭죽이 너무 많있어서 또 먹을까 했지만 이번 여행에서 제대로 된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에 밖에서 저녁을 머기로 했다. 열심히 검색한 끝에 무려 구글 지도에서 4.8점 평점의 음식점을 갔지만 메뉴 선정 실패로 질리도록 홍합만 먹었다.


이만큼의 홍합을 두 접시 먹었다.


저녁을 먹고 기분이 좋아진 나는 산책을 하기로 했다. 가다가 맛있어 보이는 케밥집에서 케밥도 하나 사고 광장에서 틀어주는 흑백 영화도 잠시 봤다. 그러다 노래가 들리는 어떤 와인바에 홀린 듯이 들어갔다. 첫 잔으로 스파클링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했는데, 두 가지 와인 중에 고를 수 있다며 테이스팅을 해보라고 조금씩 따라주는 순가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수분의 노래가 너무 좋아 내가 받은 감동을 표현해 드리고 싶었는데 현금이 없어 대신 가수분을 위해 와인을 한 잔 사기로 했다. 그런데 가게에서 '우리가 원하는 건 네가 돈을 많이 쓰는 게 아니라 좋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오는 거야'라며 가수분께 와인 한 잔을 주며 우리가 샀다고 말해줄 테니 굳이 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저번 유럽 여행에서는 이런 와인바 같은 곳을 많이 갔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여행을 시작한 지 2주가 넘어서야 와인바를 처음 가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이런 장소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기억이 났다. 


행복했던 시칠리아에서 마지막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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