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꿍꿍이 많은 직장인 May 15. 2020

10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_에일리(사랑 / 부부)

주름진 손을 맞잡고 내 삶은 따뜻했었다고

멕시코 교환학생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당시 Tecnologico de Monterrey라는 학교에 재학 중이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인근 도시로 여행을 갈 기회가 생겼다. 


인근에서는 꽤 유명한 관광지였는데 나는 혼자 중심지에서 벗어나 외곽으로 걸어 나왔다. 

멕시코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고, 유명한 관광지는 유럽 건축물처럼 화려한 곳이 많다.


하지만 중심지에서 조금만 걸어 나오면 빨강, 주황, 노란색 옷을 입은 포근한 느낌의 멕시코풍 주택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알록달록하고 나지막한 멕시코의 마을 분위기에 반해서 계속 걸어 다녔다.

사진 출처: Traverl bike news (17.08.07 발행 기사)


그렇게 이쁜 마을길을 걸어가다 보니 작은 광장이 하나 나왔다.

그리고 나의 걸음은 그 광장 한쪽 구석에서 자리 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한 노부부 앞에서 멈춰 섰다. 

할아버지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할머니는 캐스터네츠를 치고 계셨는데,

 할아버지의 노래와 기타 연주 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계속 듣게 되었다. 


솜씨도 솜씨지만 정말 행복한 얼굴로 노래를 부르시는지라 나까지 행복하게 지켜보았다.

반면에 할머니는 아무 표정도 없이 딱딱한 얼굴로,

그리고 초점 없는 눈으로 멍~ 하니 캐스터네츠만 치셨다.


'할아버지는 저렇게 열심히 연주하시는데... 왜 저렇게 성의 없게 캐스터네츠만 치시지...'


그렇게 열정적인 할아버지와 함께 하고픈 마음과

성의 없는 할머니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함께하며 계속 지켜보았다.


연주가 끝난 후 함께 지켜보던 몇몇 사람들은 박수를 쳐 주었다.

할아버지는 미소 띤 얼굴로 정중하게 'Gracias~ Gracias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셨고

그렇게 작은 공연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할머니는 일관되게 무표정으로, 멍~ 하니 계실 뿐이었다. 

연주가 끝나고 할아버지는 주변정리를 하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아버지는 미소 띤 얼굴로 할머니 손을 꼭 잡으셨고,

서야 할머니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할머니는 소녀처럼 수줍은 얼굴로 오른손으론 할아버지 손을,

왼손으로는 팔을 꼭 잡으시곤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이내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세상의 빛을 볼 수 없으셨던 것이었다.....


그 노부부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꽤나 걸어갈 때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

속에서 솟아나고 있는 감정을 추스리기 위함이었다.


할머니를 향해 무례하게 던진 원망의 감정들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 자신에 대한 아쉬움은 계속 나를 잡아 두었고,

잠시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보았던 노부부의 모습에서 느낀 아름다움, 존경, 그리고 사랑의 감정이 내게로 왔다.

그렇게 다시 그 노부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할아버지는 노래 부르시던 모습처럼 씩씩하게 걸어가고 계셨고,

할머니는 수줍게 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함께 따라가고 계셨다.

사랑스럽게 걸어가는 노부부의 뒷모습은 내 속에 있던 불행한 감정을 털어주었고, 

다시 미소 짓게 해 주었다.


사랑엔 분명 치유의 힘이 있다. 


나는 홀린 듯 그 모습을 쫓아가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할머니의 어두운 세상에 할아버지의 손은 따뜻한 빛이었으리라.

머니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모든 것을 가지셨으리라.  


이 사진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이다.


욕심이 생겼다

너와 함께 살고 늙어가

주름진 손을 맞잡고

내 삶은 따뜻했었다고

 - 에일리.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 중
이전 05화 09 오늘도 빛나는 너에게_마크툽(사랑 / 결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