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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진주 Oct 06. 2023

분노는 나의 힘 (4)

  이아정이 유령의 그림자를 본 것은 6학년 여름 방학 중 어느 날이었다. 이아정과 서보라를 비롯한 여섯 명의 아이들은 마을의 가장 안쪽, 산자락 바로 아래에 있는 폐가에 모였다. 폐가는 80대 노부부가 살던 곳이었는데 그들이 연이어 세상을 뜬 뒤로 몇 년간 비어 있었다. 돌보는 이가 없는 집은 지붕에 얹은 기와가 군데군데 주저앉고, 대문의 문짝마저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언젠가부터 그곳에 유령이 출몰한다는 괴담이 돌며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폐가 앞마당에 아이들이 모두 모이자, 서보라는 이아정을 가리키며 말했다. ‘약점을 극복해야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어. 예를 들어 이아정은 너무 소심하고 겁이 많아. 이 테스트를 통과하면 이아정도 그런 점을 고칠 수 있을 거야.’ 이아정은 자신이 겁이 많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그 순간부터 정말 그런 아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아이들은 한 명씩 집 안으로 들어가 앞 사람이 두고 온 물건을 찾고 자신의 물건을 두고 나왔다. 이아정은 제 앞 순서인 서보라의 물건을 찾아야 했다. 이아정의 차례가 되자 서보라는 힌트를 주며 규칙을 상기시켰다. ‘난 내가 평소에 많이 사용하는 물건을 숨겼어. 너도 자주 사용하는 거야. 가족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를 중심으로 찾아봐. 알고 있겠지만 물건을 찾을 때까지 절대 나와서는 안 돼.’ 이아정은 서보라에게 얻은 힌트를 바탕으로 먼저 거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거실에도, 방과 화장실에도 서보라의 물건으로 여겨지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창문으로 들어오던 햇빛이 점점 사라지고 폐가 안에 버려진 가구들의 형태도 흐릿해졌다. 이아정은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으려 애썼다. 울음소리를 내면 집안 구석에 숨어 있던 무언가가 저를 찾아낼 것 같았다. 어둠은 점점 깊어졌고 곧 발밑조차도 잘 보이지 않아서 바닥에 뒹구는 쓰레기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이아정은 애초에 서보라가 물건을 숨기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실은 폐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자신이 정답을 찾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둑한 가운데에서도 유독 짙은 어둠 덩어리가 바닥을 기어 이아정 쪽으로 스멀스멀 다가왔다. 남아 있는 빛마저 모두 빨아들일 듯이 검은 그것은 순식간에 제 형태를 바꾸었다. 원형이 되었다 구름 모양이 되었고 새처럼 변했다 커다란 개의 모습을 띠었다. 이아정은 움직일 생각도 못 하고 제게 가까워지는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이아정의 발아래에 다다라 다시 사람 형태로 변하더니 서서히 몸을 타고 올라왔다. 그리고 두 팔을 뻗어 이아정을 천천히 감싸 안았다. 그 순간, 이아정이 느낀 것은 한없는 슬픔과 무기력함, 그리고 아늑함이었다. 그것은 잠시 그렇게 머물다가 이내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이아정은 꿈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더욱 어두워졌을 뿐,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아정은 결국 빈손으로 폐가를 나섰다. 그사이 아이들은 모두 사라지고, 서보라만이 컴컴한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서보라는 자신이 숨긴 물건이 휴지 조각이었다고 했다. 폐가 안에 널린 잡다한 쓰레기 더미 속에서 휴지를 주워 올 생각은 누구라도 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이아정이 조심스레 따져 묻자 서보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난 네가 기권할 줄 알았지. 사실 그게 내 목표였어.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큰 용기이니까.’ 그 뻔뻔한 얼굴을 보며, 이아정은 자신을 골탕 먹인 것에 화를 내야 할지, 그래도 저를 기다려 준 것에 고마워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대신 조금 전 집 안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서보라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중요한 비밀을 털어놓듯 속삭였다.

  “유령을 봤구나. 그거 알아? 유령을 떼어 내려면 살아 움직이는 것을 죽이고 그 피를 몸에 묻혀야 한대.”

  이아정은 섬뜩한 기분에 진저리를 쳤다. 자신이 본 게 유령이었다는 말 때문이 아니었다. 그 말을 하는 서보라의 표정이 너무도 서늘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아이들 사이에서 이아정이 유령을 만났으며 그것을 떼어내려고 비둘기에게 돌을 던졌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소문을 알게 된 이아정은 제 몸에 진짜 피가 묻어 있는 것만 같은 기분에 연신 몸을 쓸어내렸다. 아이들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유령은 이아정과 체온을 나누고는 스스로 물러났다. 이아정은 그것을 더 붙잡아 두고 싶었다. 헛소문은 이내 잠잠해졌지만, 이아정은 그날의 기억을 잊을 수 없었다. 문득 깜깜한 폐가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마다 제게 드리웠던 유령의 그림자를 떠올렸다. 그것은 이아정에게 야릇한 위안을 주었다.

  이아정과 서보라는 같은 중학교에 배정받았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그들의 관계는 달라지지 않았다. 서보라는 이아정이 얼마나 부족하고 약한 사람인지 끊임없이 일깨워 주었고, 이아정은 자신이 무엇을 반박해야 하는지조차 잊어 갔다. 모든 일이 은밀하게 이루어졌기에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서보라가 이아정의 든든한 친구로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그건 아무래도 억울한 일이었으나, 이아정은 이제 와 서보라가 제게 한 짓을 일일이 열거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은 그걸 말하려는 게 아니니까. 중요한 것은 서보라가 이아정을 망가뜨렸고, 망가진 부분은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서보라와의 관계는 고등학교 입학 전 이아정의 집이 타 도시로 이사하며 끝이 났다. 시간은 흘렀고 어린 날의 기억도 조금씩 옅어졌다. 그렇지만 오랜 습관은 어느새 이아정의 일부가 되어버린 듯했다. 상대에게 인정받으려 비위를 맞추고, 쉽게 자신을 탓하고, 이유 없이 위축되었다. 미움받지 않기 위해 애쓰며 상대의 기대를 충족시켰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렇게 복종하는 제 모습에 모멸감과 굴욕감을 느꼈다. 콘텐츠 제작사에서 영상 편집자로 근무하던 시절에도 이아정은 감독의 요구를 쳐내지 못해 밤샘 작업을 하거나 상사의 개인 심부름을 하기 위해 제 할 일을 미루곤 했다. 동료와 후배들은 자신들이 애써 지키려는 권리를 스스로 포기해 버리는 이아정을 배신자라며 욕했다. 이아정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의도로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이아정의 남편은 권위적인 사람이었다. 자신이 정한 범위 내에서 이아정의 선택을 허용했고 이아정은 그 범위를 알아서 넘지 않았다. 문제를 제기했을 때 일어날 일이 번거로웠기 때문이었다. 시댁, 아이 친구의 엄마들, 동네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아정이 아무리 제 부끄러운 약점을 감추려 해도 그들은 결국 알아차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이아정은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에는 절대 참지 말아야지.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을 해야지. 그러나 현재는 과거의 순간이 쌓여 만들어진 블록 작품과도 같았다. 과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판을 준비하지 않는 한 굳어버린 형태를 완전히 바꿔 놓기란 어려울 것이었다. 윤채영을 만났을 때, 이아정은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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