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아란 Feb 05. 2020

이름이 지워지는 사위들

딸과 며느리의 이름은 존재하는 곳



"S야, 이거 어떤 거 같아? 너도 살래?"


시엄마랑 함께 쇼핑을 하던 중이었다. 우리를 지켜보던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카 분이랑 쇼핑 나오셨나봐요~”

"아뇨, 우리 며느리에요~"

"어머, 이름으로 친근하게 부르시길래...딸은 아닌 거 같고 설마 며느리인가? 하다가 조카 분이냐고 여쭤봤어요."


시엄마랑 나는 처음에 직원이 왜 저런 반응을 할까, 순간 갸우뚱했다. 시엄마한테도, 나한테도 며느리를 부를 때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며느리를 이름말고 대체 뭐라고 부르지?”

“새아가, 얘, 아가야, 이러겠지.”


쇼핑이 끝날 때쯤 합류한 J가 대답했다. 그러고보니 드라마에서 “얘” 또는 “아가야” 부르던 것이 그제서야 생각났다.




이름이 지워지는 여자들


고등학교 국어시간이었다. 너무 충격이어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현대소설이었나, 근현대 작품에 대해서 공부하는 중이었는데, 작품 설명을 해주시던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자는 결혼하면 이름 대신 출신지역으로 불렸어요. 예를들어 고향이 청주면, 청주댁으로 불렸죠. 그래서 이 작품에서 청주댁은 지금 청주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라, 청주에서 시집 온 여자라는 뜻이에요."


왜요? 수백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니, 그 자리에 있던 여고생 누구도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하질 못했다. 사전에서도 '-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었다.


-댁: ((지명을 나타내는 대다수 명사 뒤에 붙어)) ‘그 지역에서 시집온 여자’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더 충격적인 것은 선생님의 그 다음 말이었다. 선생님이 결혼한 후, 선생님의 친정엄마조차도 딸을 "OO댁"이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이름이 지워지는 사위들


다행스럽게도(?) 나는 결혼 후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한다는 게 조금 슬프긴 하지만. 시댁에서 며느리를 이름으로 부르는 문화는 시엄마뿐 아니라 시외할머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정정하신 시외할머니는 며느리들을 이름으로 부르신다고 한다. 그래서 J가 어릴 적 ‘ㅁㅁ는 우리 엄마 이름도 아닌데... 대체 ㅁㅁ이가 누구지?’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시외할머니의 며느리들은 이름으로 불렸고, 그 대신, 하나뿐인 사위, 그러니까 우리 시아빠는 이름 대신 ‘O서방’이라고 불렸다. 


사위들은 이름을 잃고도 백년 손님이지만, 며느리들은 이름을 잃고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불리며 그 역할에 충실하도록 기대된다. 그래서 나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좋았다. 어떤 역할에 충실한 누군가가 아닌 나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중받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깨닫는 것이지만, 이름이란 그 정도로 한 사람의 존재를 좌지우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명한 시인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표현한 것이겠지. (김춘수 ‘꽃’)


시엄마도 시외할머니도 왜 며느리를 이름으로 부르는 지, 글을 쓰다가 궁금해서 여쭤봤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


“내 새끼니까!” 




이전 05화 혼수로 플스를 해온 아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