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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무 Jul 10. 2024

한국식 인맥과 관계도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7

Unsplash+ In collaboration with Brock Wegner


한국식 상호작용의 원칙은 명함을 주고받아야만 시작한다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확실히 그렇죠.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 만나는 모든 사람과는 명함을 주고받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했었습니다. 이제 은퇴를 하고 나니 명함을 파기는 팠지만 사용할 일이 없네요. 내놓을 명함이 없으면 정말 어쩔 줄 모르게 되는 것일까요?


아무개 회사의 아무개 부서의 무슨무슨 직책입니다.라고 소개를 하던 것이 너무 익숙해졌을까요? 회사의 직책을 빼면 도대체 나를 무어라고 소개를 해야 할까요? 이런 부분에서 모든 사람은 회사를 제외하고도 자신만의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회사의 김수석으로 불렸고, 우리 아이들의 아빠로 불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오롯이 나만의 정체성으로 불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가장 원하는가?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려면 책을 출간해야만 가능한 것인가? 그냥 글을 쓰길 좋아하는 사람쯤을 표현할 방법은 없는가?


라이터. 저자. 저술가. 문필가. 저작자. 팍 가슴에 꽂히는 명칭이 없습니다. 그런데 실은 제가 가장 불리고 싶은 명칭은 따로 있습니다. 글이라는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기는 하지만 제가 가장 원하는 것은 모험입니다. 인생의 여정에 adventure를 장착하는 것. 그리고 그 모험의 여정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


경조사의 본질에 대하여 저자가 말할 때 공감이 갔습니다. 8년쯤 되었나요? 제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는 주로 부모님의 지인들이 오셨습니다. 이미 할머니의 나이가 92세 이셨기 때문에 할머니의 친구들은 아무도 없으셨습니다.


제 회사의 동료는 딱 세 명이 왔습니다. 조부모상이기에 오실 필요가 없다고 말씀은 드렸지만 정말 고맙고 감사하게 느껴지더군요.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면 정말 꼭 갈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얼굴이 가물가물한 동창의 빙부 장례식은? 직장 상사 자녀의 결혼식은?


우리 아들이 언젠가는 성장해서 결혼을 하겠지요. 그때 초라하지 않도록 지금 씨앗을 뿌리는 건가요? 사실 결혼식에 초대할 정도면 정말 진심으로 축하해 줄 친한 사람만 초대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작더라도 진심 어린 축하를 할 하객만. 내가 축의금 받지 않고 예식 비용 전액을 지불해도 기꺼이 초대할 정도의 사람들만.


관계 과잉의 시대입니다. SNS를 통해 친구가 아닌데 친구추가 된 사람들이 수백 명입니다. 이제 퇴사를 하거나 다른 산업으로 이직을 하면 계정을 새로 파야 할 지경입니다. 이중에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존경하는 친구나 선후배는 누구인가요? 내 삶의 관계도를 정기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묶여있는 것이 없을 때 더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더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명함으로 나를 정의할 필요도 없고, 관계로 나를 정의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원하고 추구하는 삶의 방식으로 한 걸음씩 매일 전진하다 보면 궁극에 다다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제게는 자유와 모험이 그 길입니다.


오늘의 결론: 누구나 명함을 빼고 자신을 설명할 수 있기를.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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