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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원샘 Aug 15. 2024

작은 세계의 무한성

『반지의 제왕』속 영웅, 샘 와이즈 갬지의 바람

  인간은 반半 물고기가 된 것 같다. 물 밖으로 벗어난 물고기는 호흡하기 어렵다. 자기 전 하루를 돌아보니 자본의 덕을 보지 않은 것이 없다. 자동차, 책, 커피. 셀 수 없이 많은 물체가 시간과 공간을 압축한 채 눈앞에 놓여있다. 시대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압도적인 '편리'를 느낀다. 동시에 '불안'도 느낀다. 이 물속에서 유유히 헤엄칠 수 있을까. '없다'는 판단이 들어도, 뭍으로 올라가고픈 욕망이 쉬이 허락되지 않는다.

헤엄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때로는 버겁고 지치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다양한 버전의 '*팔란티르 palantir'는 사용자에게 체제에 적합한 인간 상像을 주입한다. 주입된 인간 상에 적지 않은 이들이 의욕과 시기를 불태운다. 때로는 우울과 절망에 침잠된다. 양가감정 모두 (경제적으로)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투영된 현상이다.

*팔란티르 palantir: 『반지의 제왕』속 천리안 수정구


  '실천과 동떨어진 통찰은 아무 실효가 없다'는 에리히 프롬의 말은 나를 처절하게 내려찍는다. 머리로는 알지만, 나를 고요히 관조해 보니 경제적으로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이 들끓는다. 그저 이 욕망이 현실로 화化하여 나와 주변을 뒤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터무니없이 바라는 것은 내 마음을 상처 내고, 의욕이 앞서 뭔가 해보겠다는 심사는 몸과 세계를 뒤틀기 때문이다. 이때『반지의 제왕』 속 '샘 와이즈 겜지'가 나를 허상에서 건져낸다.



  샘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반지의 마력에 정복되지 않은, 호빗의 소박한 감각이 살아있었다. 반지가 원대한 이상으로 그를 기만하지 않더라도, 샘은 자신이 이처럼 큰 짐(절대 반지를 다루는 것)을 감당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유로운 정원사로서 '작은 정원'을 가꾸는 것이 그의 바람 전부였다. 세상을 집어삼키는 정원이 아니라. 자유로운 두 손을 원했다. 다른 이에게 명령하는 손이 아니라.

- J.R.R. 톨킨,『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 p. 186 의역 -


  제일 사랑하는 대목이다. 듣고 싶은 말을 들은, 치기 어린 마음에서 비롯된 애정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말과 생각은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는 키팅 선생의 대사를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이 말은 나를 다독여 주었다. 나의 '작은 정원 The one small garden'과 '자유로운 손 His own two hands to use'이 무엇인지 일러주었다. 샘의 소박한 바람은 반지로부터 그 자신을 보호하고, 반지를 운명의 산까지 가져다 놓는다.


- 피터 잭슨, 2003,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 중 운명의 산을 목전에 둔 샘 -

  샘은 반지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제국과 같은 정원이 아닌, '작은' 정원을 왜 원했을까. 작가의 지혜가 끝나는 곳에 독자의 지혜가 열린다는, 마르셀 푸르스트의 말을 용기삼아 이유를 적어본다. 샘은 '미시微視의 무한성'을 직감적으로 인지했는지 모른다. 양자역학에서 미시세계는 양자처럼 작은 입자들의 영역이다. 이 세계에서는 우리가 오감으로 인지하는 것 이상의 일들이 일어난다. 가령 물체가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띨 수 있는데, 관측(또는 측정)될 때는 입자로서 선명한 궤적을 그리지만, 관측되지 않을 때는 파동으로서 회절과 간섭이 일어난단다. 과학이 오히려 마법 같다.


나무 위키, '이중 슬릿 실험'

 

  그런데 올라프 나이즈 Olaf Nairz의 연구에 따르면 플러렌 Fullerene이라는 아주 무거운 물질마저도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 파동의 성질을 띤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로 인해 미시 세계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거시 세계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미시 세계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일이 거시 세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신기한 일은 말 그대로 '신기 神奇'한 일이다. 관측되는 순간, 궤적이 선명한 입자로서의 움직임만 보일 뿐이다. 말로 규정하고 증명하려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 같다.)


  자본주의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작은 것으로 환원된다. 작디작을수록 우리는 인지하지 못한다.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관측되지 않는다. 관측되지 않으면 입자인 줄 알았던 것이 아름다운 파동을 만들어낸다. 가닿을 것 같지 않는 곳마저 어루만진다. 치유한다. 그렇기에 작은 것에는 제국을 웃도는 힘이 있게 된다. 샘의 작은 소망이 절대 반지의 강력한 마법을 억제했다. 숨 쉬기 어려운 것만 같을 때,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떠올려보자.



부조리한 세계는 그 무엇보다도 이런 보잘것없는 탄생에서 고귀함을 이끌어낸다.

- 알베르 카뮈,『시지프 신화』 p. 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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