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원이샘 Aug 22. 2024

치유하는 손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아라곤'의 능력


  빅토르 폰 바이츠제커는 치유의 원상原象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어린 누나가 어린 남동생이 아파하는 것을 보게 되면, 누나는 아무 지식이 없어도 하나의 방법을 찾아낸다. 그녀의 손은 동생의 몸을 어루만지면서 길을 찾고, 동생의 아픈 곳을 쓰다듬어 주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어린 사마리아 여인은 최초의 의사가 된다.


 (...) 남동생이 경험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것, 즉 손이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누나의 손이 어루만지는 느낌이 그와 그의 고통 사이에 끼어들고, 이 새로운 느낌이 고통을 밀어낸다." - 한병철, 『고통 없는 사회』 p. 48 -


  어루만지다. 쓰다듬다. 두 단어가 별 거 아닌 행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 '별 거 아닌' 행동을 한다. 성스럽게 병을 씻어내듯이, 정화하듯이 어루만진다.


  삶을 사는 것은 전사의 행위와 다름없다는 괴테의 말은 옳다. 전사는 치열한 전투에서 상처 입을 수밖에 없다. 현대인들 역시 삶을 살아내면서 상처 입는다. 그저 살아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전투를 끝내고 안식처로 돌아오면 치유가 필요하다. 내일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중 곤도르의 수도, '미나스 티리스'와 펠렌노르 평원 전투 중 한 장면-

  『반지의 제왕』 속에서도 '치유'는 남다른 행위로 여겨진다. 바로 왕의 정통성을 증명하는 필수조건인 것. '펠렌노르 전투'에서 비록 승리했지만, 많은 이들이 죽고 다쳤다. 마술사왕 앙그마르를 처치한 에오윈과 메리는 치명적인 상처로 죽어가고 있으며, 곤도르의 차기 섭정 파라미르 역시 위태롭다. 이 셋은 전투 후, '치유의 집'에서 기약 없는 회복을 기다린다. 이때 저 멀리 아라곤이 보이자, '치유의 집'을 돌보는 여인인, 이오레드가 아래와 같이 외친다.



  곤도르의 현명한 여인인 이오레드가 말했다. 왕의 손은 치유자의 손이나니, 그리하여 정통한 왕은 알려지리라.


  Thus spake ioreth, wise-woman of Gondor: The hands of the king are the hands of a healer, and so shall the rightful king be known. 

- J.R.R. 톨킨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p.140 -


  곤도르는 약 천년 가까이 왕좌가 공석인 채로 지속되었다. 아라곤은 숨겨진 곤도르의 정통 후계자로서, 사우론을 물리치고 멸망한 북왕국 아르노르와 남왕국 곤도르를 통일할 운명을 감당해야 했다. (여담이지만, 엘론드의 딸 아르웬과 사랑에 빠졌는데, 엘론드는 결혼 조건(?)으로 역사적인 업적을 수행하기를 바랐다. - 데이비드 데이,『톨킨 백과사전』 p. 244 -)


  그런 그가 진정한 왕의 능력인 '치유'를 발휘하여 사경을 헤매는 세 명을 빛의 세계로 불러낸다. 그 시작은 사마리아의 어린 소녀처럼 환자를 어루만지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제 그는 파라미르 곁에서 무릎을 꿇고 이마에 손을 얹었다. (...)

  아셀라스 두 잎을 가지고, 아라곤은 따뜻한 물이 담긴 대접에 (바스러진) 잎들을 던졌다. 그러자 순식간에 모든 이들의 마음이 가벼워졌다.


  Now Aragorn knelt beside Faramir, and held a hand upon his brow. (...)

  Then taking two leaves(Athelas), (...) he cast the leaves into the bowls of steaming water that were brought to him, and at once all hearts were lightened.


  그리하여 파라미르는 깨어나게 되고, 이오레드는 곧바로 다음과 같이 외친다.


  왕이시여, 보셨습니까? 제가 뭐라 말했습니까! 분명 치유자의 손이라고 했죠? 전쟁이 끝나고 치유를 가져오신 왕이 귀환하셨다는 소식이 곧바로 도시 곳곳에 전해질 것입니다.

- J.R.R. 톨킨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p.144~145 의역 -


- 피터 잭슨, 『반지의 제왕-반지원정대』중 한 장면 - 치명상을 입은 프로도를 위해 아델라스를 찾는 아라곤


  무사태평해 보이는 사람마저 슬픈 소리를 낸다. 삶의 전장을 누비는 우리 모두는 치유와 쉼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치유자를 고대한다. 치유는 접촉에서 출발한다. 애정 어린 손짓은 '옥시토신'을 유발한다. 이 물질은 진실로 우리에게 닥친 아픔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준다. 수 천년 전 어린 사마리아 여인은 옳았다. 왕의 정당한 역량을 알아본 이오레드는 지혜로웠고.


  옥시토신은 심리적, 행동적으로 나타나는 스트레스 반응을 조절할 수 있다. (...) 이 장에서 논의된 대로, 옥시토신은 스트레스 반응에 관한 진정 효과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Oxt can modulate the physiological and behavioral responses to stress (...) As discussed in this section, Oxt appears to have a dampening effect on stress responses.

- Lee HJ, Macbeth AH, Pagani JH, Young WS (June 2009). “Oxytocin: the great facilitator of life”-

이전 06화 작은 세계의 무한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