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모든 일이 때를 따라 '아름답게' 일어나도록 하셨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으나, 하느님이 하시는 일의 처음과 끝을 다 알지는 못하게 하셨다. - 『전도서』3:11 -
He has made everything beautiful in its time. Also He has put eternity in their hearts, except that no one can find out the work that God does from beginning to end.
우리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눈앞에 펼쳐지노라면, '하필 何必'이라는 소리가 가슴부터 치밀어 오른다. '하필'을 풀어보면 '어찌하여 꼭'이라는 말이 된다. '반드시 必' 그리될 일에 대하여 이유 何를 묻는 것이다. 외면하고 싶은 상황에 이유라도 알아야 마음이 풀린다. 참 인간다운 표현이다.
'모든 일'은 구분선이 없다. 피아를 식별하지 않고 일어난다. 반면에 우리는 사건을 구분한다. 기분 좋은 일,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시간, 슬픈 사건, 주저앉고 싶은 날. 축축함은 외면하고, 산뜻함을 선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프로도 배긴스는 샤이어에서 평화롭게 지내는 호빗이다. 놀고먹기 좋아하는 호빗 종족으로서 그들의 고향은 낙원이다. 그런 그에게 세상을 운명을 좌우할 물건이 주어진다. 빌보가 남긴 '절대 반지'. 사우론은 절대 반지를 되찾기 위해 아홉 나즈굴 Nazgul을 샤이어로 파견한다. 프로도 홀로 나즈굴에 맞설 수 없다. 프로도의 선택지는 단 하나다. 떠나야 한다. 안락한 집을 뒤로한 채. 선택이 강요됐다. 처음에는 자신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진 않았었다.
프로도는 그에게 부여된 의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묻는다. '왜 제가 선택됐죠?' 간달프는 아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만 말할 뿐이다.
When Frodo, rebelling at first against the duty imposed on him, asks the natural question, 'Why was I chosen? the wizard can only reply that nobody knows why (...)
- 『Master of Middle-earth』p. 37 -
- 피터 잭슨, 2001,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 반지를 외면하고픈 프로도 -
그러나 간달프는 결코 프로도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결정은 자네에게 달렸네.' (...) 프로도는 신음했지만, 그에게 부여된 짐을 받아들였다.
'The decision lies on you' (...) Frodo groans but takes up his appointed burden.
- 『Master of Middle-earth』p. 37 -
- 피터 잭슨, 2001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사루만의 배신을 알게 된 간달프 -
개인의 '자유 의지'마저 원대한 계획의 초석으로 다져진다. 그런데 나즈굴의 추적으로부터 마법사의 보호 아래 이동하려 했던 계획이 틀어진다. 사루만의 배신을 모른 채, 그에게 조언을 구하러 간 간달프는 구금당한다. 그리하여 프로도를 돕기로 한 샘과 피핀만이 위험한 여정에 오른다. 나즈굴은 무섭게 추적 중이다. 나즈굴의 말발굽 소리가 지척에서 들린다. 프로도가 발각되기 일보 직전, 요정 영주 길도르와 요정들의 노랫소리가 호빗을 위험에서 구한다. 그런데 이 만남을 톨킨은 의아하게 묘사한다.
숲에서 요정과 다른 존재와의 조우가 얼마나 희귀한 것인지 아는 길도르는 이 사건 배후에 숨겨진 의도가 있는지 의심했다. '이 만남에서 훨씬 더 많은 우연이 있는 것 같네. 그러나 우연의 목적이 분명치 않으니, 너무 많은 것을 말해주기 두렵네'
Gildor, knowing how rare the meetings of elves with other creatures in the woods are, suspects a hidden intention behind this one: 'In this meeting there may be more than chance; but the purpose is not clear to me, and I fear to say too much.'
- 『Master of Middle-earth』p. 38 -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도의 상황을 전해 들은 요정 영주, 길도르는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리븐델로 가는 그 계획을 그대로 추진하시오."
프로도가 극도로 위험한 상황인데도 계획을 종용한다. 그러나 이 만남을 계기로 프로도 일행은 절체절명의 여러 순간들을 모면한다. 길도르가 전한 프로도의 위험 소식이 '톰 봄바딜'과 '아라곤'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 둘은 간달프를 대신하여 프로도 일행을 극적으로 구하여 리븐델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소설은 현실을 기반으로 한다. 서사의 과정은 인생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프로도의 여정을 짧게만 따라가더라도 개인의 '단절과 상실'이 길을 여는 열쇠임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반대로 도움을 받으러 가는 길이 나를 묶는 족쇄가 되기도 하며, 의지를 가지고 택한 일이 원대한 계획의 마중물이 될 때도 있다. 이렇게 불가해不可解 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 밤이 일 년처럼 길군.' 아라곤이 말했다. '동이 틀 때까지 얼마나 남았소?'
'새벽이 머지않았소.' 아라곤 옆으로 다가 온 감링이 대답했다. '그러나 새벽이 우리를 구해줄 것 같지 않군. 난 두렵소.'
이에 아라곤이 답했다. '새벽은 언제나 인간의 희망이었소.'
'This is a night as long as years' he said. 'How long will the day tarry?'
'Dawn is not far off.' said Gamling, who had now climbed up beside him. 'But dawn will not help us, I fear.'
'Yet dawn is ever the hope of men' said Aragon.
- 『반지의 제왕 - 두 개의 탑』p. 152 -
- 피터 잭슨, 2002 『반지의 제왕 - 두 개의 탑』헬름 협곡 전투 중 -
반지의 제왕은 희망의 문학이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한다. 동이 트기 전 새벽이 어두운 법이니까. 어둠을 참고 견디면 해가 솟는 것이 보인다. 불가해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는 희망을 품는 것이다. 우리가 앞날을 모르는 '축복'이 없다면 희망은 쓸모없다. 그렇기에 희망은 당장 마주한 절망에 부서지지 않도록 걸어둔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