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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phael Jul 18. 2024

죽임으로써 죽지 않는 자

『반지의 제왕』속 '사우론'과 '절대 반지'에 관하여

  삶과 죽음에 있어서出生入死/  삶의 길을 택하는 사람이 십 분의 삼 生之徒十有三/  죽음의 길을 택하는 사람이 십 분의 삼 死之徒十有三/  그리고 태어나 죽음으로 가는 사람이 십 분의 삼 人之生, 動之死地者, 亦十有三/  왜 그러한가 夫何故/  모두 삶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以其生生之厚   

- 노자,『도덕경』제50장 -


  베일에 감춰진 채, 망령되이 읽히지 않겠다는 글들이 있다. 읽는 입장에서 곤욕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여다본다. 노자의『도덕경』에는 논리에 맞지 않는 텍스트들이 엉켜있다. 그러나 모순된 두 명제가 현실을 적확하게 묘사하곤 한다.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삶에서 죽음을 떼어놓는다. 삶과 죽음이 분별分別되는 순간, 우리는 선택이 가능하다. 죽음을 외면하는 선택을 한다. 평생 살 것처럼 움직인다. 범부의 단견이지만, 노자는 그런 분별이 우리가 삶을 향유하는데 방해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삶과 죽음이 분별되지 않는다는 말에 혹자는 죽음을 종용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을 테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분별이다. 죽음에 무게를 둔, 잘못된 생각.


  사우론은『반지의 제왕』속 암흑의 군주 Dark Lord이다. J.R.R. 톨킨은 자신이 구상한 중간계와 더불어 '요정어'까지 창조했다. 그리고 작품 속 많은 것들을 요정어로 이름 붙였다. 그중 '사우론'은 '혐오스러운 자'라는 뜻을 지녔다. 그가 한 비열한 짓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일이 책의 첫 장에 시처럼 적혀있다.

『반지의 제왕』서문

하늘 아래 요정왕들을 위한 세 개의 반지/  돌의 전당 난쟁이 군주를 위한 일곱의 반지/  죽을 운명을 지닌 인간을 위한 아홉의 반지/  어둠의 권좌 위 암흑의 군주를 위한 하나의 반지/  어둠이 내려앉은 모르도르에서/  모든 반지를 지배할 반지, 모든 반지를 찾아낼 반지/  그들을 불러 모을 반지, 그리하여 어둠에서 그들을 가두리라/  어둠이 내려앉은 모르도르에서//


  사우론은 요정 도시, 에레기온의 뛰어난 요정 장인들에게 접근하여 마법이 담긴 반지를 같이 만든다. 모든 반지는 사우론의 계략대로 그에게 종속되는 함정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시에 적힌 대로 요정왕과 난쟁이 군주, 그리고 뛰어난 두네다인 영주와 마술사들에게 반지를 전한다. 그러고 나서 몰래 모르도르의 '운명의 산'에서 모든 반지를 지배할 단 하나의 반지, 절대 반지를 만든다.

피터 잭슨, 2001,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중 절대 반지

  신(또는 악마)은 디테일 속에 있다 했던가. 톨킨은 절대 반지를 비롯한 19개의 반지의 능력에 관하여 세세하게 적어놓았다. 이런 재미가 작품에 관한 깊은 애정을 불러일으킨다. 다음은 요정 반지와 인간에게 주어진 반지의 능력, 그리고 위대한 인간들이 어떻게 사우론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피터 잭슨, 2001,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중 세 요정 반지
  모든 반지가 힘을 지녔지만, 사우론의 의도대로 종족의 고유한 특성을 담고 있다. 가령 요정 반지들은 이해력, 기예, 그리고 모든 것들을 그대로 보존하는 치유를 선사한다. (중략) 인간에게 주어진 반지는 그들의 권력에 대한 야망을 불러일으키고 구현한다. 사우론은 이 아홉 반지를 위대한 두네다인 영주(누메노르* 땅에 가본 적 없는)들에게 주었는데, 이 아홉 반지로 그들을 사로잡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절대 반지에 예속되어 사우론의 끔찍한 하수인이자, 그의 심연 아래 어둠의 존재, 반지악령이 되었다.
- Paul Kocher, 1972, 『Master of Middle - earth』 p. 55 의역 -
피터 잭슨, 2001,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중 아홉 반지를 선사받은 영주와 마술사
피터 잭슨, 2001,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중 나즈굴의 모습

  위대한 인간 영주와 마술사는 반지악령 Nazgul으로 전락하여 절대 반지를 위해 헌신한다. 절대 반지가 존속하는 한, 그들은 불멸이다. 그렇다면 절대 반지는 무엇인가? 사우론이 절대 반지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자신의 고유한 생명력을 쏟아 부음으로써 반지에 종속된 이들을 충분히 다룰, 절대 반지를 주조할 수 있었다. 간달프가 설명한 대로 '(...) 그는 자신 스스로 반지를 만들었고, 반지가 그 자신이며, 그는 자신의 어마한 힘을 반지에 흘려보냄으로써 다른 존재를 지배할 수 있었다.'
- Paul Kocher, 1972, 『Master of Middle - earth』 p. 55 의역 -


  열역학 제1법칙. 또는 질량 보존의 법칙. 닫힌 세계의 에너지는 일정하다. 뒤집어 얘기하면 사우론이 얻은 권능은 상당한 대가를 요구했다.

그가 치른 값은 예상을 웃돌았다.  그의 정수가 살아 있는 한, 사우론의 영혼은 육체적 죽음 이후에도 살 수 있었다. (...) 그러나 그의 힘이 주입된 반지일지라도 잃어버릴 수 있으며, 잃어버린 반지가 온전하더라도 그는 약해진다.  

The price is greater than he realizes. As long as his vigour is undivided, Sauron's sprit can survive death after death. (...) But once he infuses part of his strength into a Ring that can be lost, he is weakened even while the lost Ring is intact.
- Paul Kocher, 1972, 『Master of Middle - earth』 p. 55 의역 -


  치명적인 약점으로 보이나, 소설이나 영화에서 그려진, 반지 없는 사우론의 횡보는 어마무시하다. 반지가 자유민 Free People의 수중에 있을지라도, 통상적인 방법으로 파괴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약점이 사우론의 불멸성을 더 부각했다. 해리포터의 볼드모트가 떠오른다. 영생을 위해 만든 호크룩스. 절대 반지도, 호크룩스도 자신을 소진시켜 만든다. 자신의 영혼을 찢는 대가로 얻은 반쪽자리 영원. 영혼을 찢는 방법은 살인이었다. 뒤틀린 욕망은 현실을 뒤튼다. 자신을 지워버리고 무고한 이를 죽이면서. 그리하여 죽지 않게 된다. 언데드 Undead를 살았다고 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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