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지대용 無用之大用.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 장자가 전한 말이다. 굽고 옹이가 진 나무는 잘리지 않는다.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타인은 물론 자신마저 쓸모없으면 외면한다. 내가 쓸모가 있어야 효능감을 느낀다. '자유'의 뜻이 결코 산뜻하지 않다. 대용의 자유는 무한하나, 무용의 자유는 쉬이 허락되지 않는다. 심지어 자유주의는 '신新'이라는 이름과 함께 세련되게 느껴진다.
이야기는 마땅히 무용해야 대용을 이룬다. 우리에게 돈 한 푼 쥐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책은 두 지면으로 틈을 만든다. 그 틈이 우리를 숨긴다. 아늑함을 느낀다. 때로는 마음을 울린다. 마음이 울리면, 피부로 드러난다. 전율한다. 이 기억은 소진될 위험에서 우리를 보호한다.
'두억시니' 이야기는 나에게 전율을 선사했다. 신을 잃은 줄 알았던 자신들이 사실 그러하지 않음을 깨달을 때.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존재 양식의 변화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대목. 그들의 기원에 관한 안개 같은 수수께끼. 네 선민의 동정을 받은 두억시니가 종국에는 인간을 동정하는 대목은 미묘하다.
작중에 민담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수수깨비는 신을 잃은 자들이 누구냐는 수수께끼를 내면서 칼리도 사람들을 괴롭혔단다. 두억시니라고 말한 사람들은 그의 짓궂은 장난에 시달렸다. 네 종족 중 하나를 말한 사람은 이유가 타당하지 않다면 같은 처지가 됐다.
왕의 명령으로 수수깨비를 쫓아낸 레누카는 그 수수께끼를 생각하며, 혼자 속삭였다. "그래, 두억시니는 아니지." 작가 역시 수수깨비처럼 독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단지 그처럼 괴롭히지만 않았을 뿐, 정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자신의 기원에 궁금했던 두억시니는 종국에 화신에게서 답을 듣는다. 그리고 답을 들려준 화신의 요청대로 불타사라 진다. 그러나 그들은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쁨에 벅차했다. 존재 양식의 변화. 장자도 아내가 죽은 장례식에서 북을 두드리며 기뻐했다 한다.
멍청한 이성. 사모 페이는 두억시니가 사라지기 전 남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두억시니는 륜과 사모를 비롯한 네 선민에게 깊은 연민을 느낀다. 그리고 노도와 같은 , 그러나 애정이 담긴 말로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살아가, 제발 살아가. (...) 제발 자기완성을 위해 살아간다는 자를 조심해.
- '눈물을 마시는 새' 제3권 14장 -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이성은 중요하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이득이 되면 취하고 손실이 되면 버린다. 두억시니가 속한 세계도 그렇다. 나가들이 전쟁을 일으켰다. 그 기저에는 젠더 갈등에 대한 분노가 서려있다. 전쟁을 통해 힘의 우위를 확보하고 부를 축적한다. 차별받던 남자들은(나가는 모계사회다.)'자기완성'을 위해 살아갔다. 힘에의 의지로 수십만이 죽었다. 신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 삶은 쓸모가 없어도 추락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