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원샘 Oct 24. 2024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신 없는 두억시니에게 친절했던 여인

*'눈물을 마시는 새'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위한 염려가 아니라 사랑으로 사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끝 대목 -

  눈물을 마시는 새에는 눈여겨볼 단체가 있다. 바로 시구리아트 유료도료당이다. 그들의 일이 무엇인지 적확하게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그리고 이 대목은 삶을 여행하는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 같기도 하다.

"시구리아트 유료 도로 성채"/ 아티스트: sla jeong/ 출처: https://www.artstation.com/artwork/d0E2yJ



"칠푼디 여행자가 무엇인지 말해주겠소?"(...)

"여행자란 자신의 목적을 위해 길을 걷는 자들입니다."

"그럼 우리 유료도로당은 무엇인지 말해 주겠소?"

"우리는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를 위해?"

"자신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 이영도, '눈물을 마시는 새 제2권' p. 100 -


  시구리아트 유료 도로는 시구리아트 산맥을 쉽게 넘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칠푼디의 말 그대로 도로당은 그곳에 성채를 세워 길을 준비한다. 그들은 분별하지 않는다. 요금을 내는 손님 누구나 도로를 이용한다. 고결한 성자에서 죄지은 도둑 마저.


  선민 종족을 대표하는 주인공들이 목적지를 향해 이 도로를 이용한다. 나가 종족의 륜 페이는 고향에서 억울한 누명을  나머지, 쇼자인테쉬크톨, 즉 지정된 암살자에게 추격을 받고 있다. 기구하게도 그 암살자는 륜의 누이인 '사모 페이'다. 륜을 보호해야 하는 인간 케이건 드라카와 레콘 티나한, 도깨비 비형은 그 암살자에게 도망 중이다. 그런데 하필 이 시구리아트 유료 도로에서 조우하게 된 것.


  륜에게 누명이 참 많이 씐다. 신을 잃은 두억시니들의 오해로 살신 누명마저 씌어 삼천 두억시니들이 추격 중이다. 두억시니들은 규칙이 부재하여 생김새도 기괴하지만, 말 역시 통하지 않는다. 유료 도료당의 규칙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륜 일행을 사로 잡기 위해 성문으로 치닫는다.


  수 백 년을 버틴 유료 도로당. 주퀘도가 10만 군대를 이끌고 넘어서려 했으나, 이를 좌절시키고 그로 하여금 은편 10닢을 받아내어 홀로 통과시킨다. 배상금이 아닌 요금만을 수납한 그들의 자존심은 주퀘도를 두 번 죽였다. 요금만 내면 누구든 길을 터주는 그들이지만, 아니라면 전원 사살한다. 그들의 규칙은 글자를 넘어서는 무엇이다. 어쩌면 본질이다. 기꺼이 값을 치르겠다는, 의지를 가진 자에게 걸맞는 준엄성. 그리하여 명령대로 움직이는 두억시니는 살해 위기에 놓였다.


  이때 사모 페이가 그들을 구제할 방법 찾는다. 그들에 대한 연민을 지닌 그녀였기에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이리라. 그녀가 두억시니들의 요금을 대납하고 그들을 도로밖까지 이끈다. 혹자는 물을 것이다. 두억시니의 요금이 얼마냐고. 겨우 동편 한 닢이었다. 금 편 한 닢을 10만 원이라 했을 때, 동편 한 닢은 10원이다.(단순 예시이지만 인간은 은편 15닢, 1만 5천 원이라 보면 되겠다.) 그들은 왜 이리 요금이 쌀까. 당주 보좌관은 말한다. "신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보좌관은 결코 돈 때문에 두억시니를 살해 협박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두억시니를 존중했다. 그들 역시 의지를 가지고 길을 밟으려는 자들이기에.


  구구절절 말이 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왜 이 대목을 쓰고 싶었을까. 우리의 모습이 가끔 서글플 때가 있다. 10만 대군을 이끌어도 넘지 못하는 길이 있다. 두억시니와 같이 아무것도 모르며 달려들다 화살을 맞을 때도 있다. 부조리. 이치에 맞지 않음. 파악될 수 없는 것이 삶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톨스토이는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확실'이라 했다. 어느 누구도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없다. 당장 내일 죽을 이가 오늘 값비싼 가죽으로 신발을 맞추는 것처럼.


  내일이 어떨지 모르고,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인간은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는 그의 말이 가끔은 내 머릿속에 울릴 때가 있다. 사랑은 길을 터준다. 사모 페이가 두억시니를 긍휼히 여겨 그들의 길을 열어 주듯이.


 사모 페이는 두억시니들의 통행료를 지불한 다음 그들을 유인하며 관문을 통과하였다. 신을 잃은 그들 두억시니들에게 신의 가호를 바랄 수는 없으니, 나는 사모 페이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의 어진 마음이 저 가엾은 자들을 긍휼히 여기길 바란다.

- 이영도, '눈물을 마시는 새 2권' p. 100, 보좌괸의 일지 -



이전 13화 신 없는 이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