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줄도 몰랐던 그 해 여름

변호사 상담과 특별교육을 받고 나서

by N잡러

“죄의 성립 조건이 되면 죄입니다. 아무리 좋은 동기라도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학교에서의 처분은 결정 났지만 경찰서 신고 건이 남아있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가만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7월 13일 지인이 소개해준 변호사를 사무실로 찾아가서 만났습니다. 가면서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별일 아니다 라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 좋은 일도 아닌데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가해자라는 것이 정말 싫었습니다. 저에게 뭐라 하지 않겠지만, 피해자 부모였으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사무실에 도착하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물어봤습니다. 혹시나 ‘아이를 잘못 키워 폭력 가해자가 됐지’라고 여기지는 않을까. 그 순간에도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만 얘기하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얘기하려 했으나 처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라 그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변호사는 학교에서의 처분내용을 듣더니 조치가 심각하지 않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했습니다. 단, 만 14세가 넘었으니 형사 처벌이 가능한 나이이고 1:1 폭력이면 합의하고 끝낼 수도 있지만 두 명 이상 집단폭행이니 검찰로 이송될 거라고 하더군요. 담당 검사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피해 학생의 행동에도 원인이 있고 동기가 나쁘지 않으니 괜찮지 않겠냐고 물어봤습니다. 하지만 변호사는 그러더군요. 죄의 성립 조건이 되면 죄가 되는 거고 기타 나머지는 양형의 기준이 되는 거지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때린 사실이 있고 여러 명이었다면 그게 폭력이고 집단폭력이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데 마음도 머리도 복잡해서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군요. 분명 더운 날씨였을 텐데 더운 줄도 몰랐습니다.


여름방학을 하자마자 아들은 학교폭력대책위원회의 처분인 5호 특별교육 이수를 7월 20일부터 24일까지 강동 Wee센터, 경찰서 등에서 5일간 교육을 받았습니다. 저 역시 7월 20일과 7월 24일 강동 Wee센터에서 5시간의 부모교육을 받았습니다. 남편은 저에게만 맡기는 것을 미안해했습니다. 첫날 아침에 같이 교육을 받아야 해서 집에서 아들과 같이 나왔습니다. 처음 가보는 장소지만 잘못에 대한 벌을 받으러 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출근하는 남편 차나 택시로 편하게 가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대중교통으로 가려고 했는데 같은 사건으로 교육을 받게 된 아버님이 차로 간다며 같이 가자고 아들에게 연락해 왔습니다. 차로 편하게 갔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교육자란 사람이 자기 아들 하나 제대로 키우지 못하면서’란 생각이 사건을 알게 됐을 때부터 계속 있었거든요. 처음 사건을 알게 된 후에도 개인적으로 해야 하는 강의와 교육 등 많은 것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저의 상황을 전혀 표시 내지 않으면서요. 지나고 보니 어떻게 그랬나 싶지만 당시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사건이 나고 한 달이란 기간은 아무런 일도 없는 평상시와 같은 날들이었습니다. 무언가 노력을 한다고 변하는 것도 없고 그저 하라고 하는 것을, 하라는 시간에 해야만 하는 그런 날들이었습니다.


첫날 교육은 아이들과 부모 모두 MBTI 성격유형검사를 하고, 부모들만 따로 대화법 강의를 들었습니다.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폭력, 담배 등의 이유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고등학생 아들과 함께 온 어느 어머니 한 분은 중학교까지 특목고 갈 정도로 공부도 잘하고 착한 아이였답니다. 언젠가부터 변해서 지금은 공부는 말할 것도 없고 사고를 치고 있다면서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그 어머니 대화법 강의 중엔 결국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나조차 잘 못하면서 뭐라 위로해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냥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밖에 없더군요. 오후엔 아이들만 교육을 받는 거라 아들을 두고 나오는 데 왠지 저만 오는 게 미안했습니다. ‘내가 그 일을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걸, 그러면 일이 커지기 전에 어떻게든 해결했을 텐데, 그랬으면 이런 거 안 겪을 수 있었는데’ 싶었습니다. 제가 불편하고 힘든 것처럼 아들도 그럴 것 같았거든요.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나중에 들어보니, 밝고 긍정적인 아들은 이 과정 중에서 만난 형, 누나, 동생들과 잘 지냈다고 합니다.


사건이 동부지방검찰청으로 넘어가고, 검찰청 명령으로 아들은 7월 21일부터 24일까지 학교폭력예방센터인 강남 청소년 수련관에서 2시간씩 8시간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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