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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Oct 21. 2023

추석에 떠난 삿포로 가족여행

담배가 그렇게 맛있어?

올해 추석은 나, 남동생, 아빠와 셋이서 일본 삿포로로 패키지여행을 떠났다. 왜 셋만 있느냐고? 두 번째 엄마와도 이별, 세 번째 엄마와도 이별을 한 아빠의 작품이다. 어디 말하기도 남부끄러운 가정사를 이곳에 쓰느냐 하겠지만 아빠만큼 내 행복과 직결되는 중요한 인물이 또 없다.


내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과감하게 퇴사 결정까지 한 나였지만, 내 행복을 지키겠다고 가족을 등지는 것은 쉬운 선택이 아니다. 선택의 몫은 아빠인걸.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아빠를 후회하게 만드는 일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후회를 하게 만들까. 그래,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빠에게 행복을 알려주자. 그래서 나는 아빠가 추석에 일본을 가자고 했을 때 망설임 없이 오케이를 했다.


3박 4일 일정이었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야 했기에 아빠와 동생은 전 날 서울에 올라와야 했다. 평소 같았으면 호텔에서 지냈을 테지만 나는 아빠에게 우리 집에 와서 자고 인천공항에 갈 것을 제안했다. 서울에 올라와 단 한 번도 내가 사는 집을 들여다본 적 없던 아빠. 그런 아빠가 웬일로 흔쾌히 알았다며 짐을 싸들고 올라왔다.


김포공항에 마중을 나가 아빠와 동생을 기다렸다. 아빠는 공항을 나오자마자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태웠다. 동생은 한참 동안이나 나오지 않았다. 수하물이 다른 곳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동생은 백팩을 메고 커다란 캐리어 하나를 끌고 나왔다. 나는 물었다. "둘이 짐 합쳐서 왔어?" 동생은 백팩에 아빠가 먹는 약이 들어있다고 했다. 백팩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약이 많은가? 아빠는 차에 타기 전에 담배를 또 한대 더 태웠다. 나와 동생은 그런 아빠를 기다렸다. 내가 모는 차에 탄 가족들. 동생은 뒷좌석에 앉아 담배 냄새가 많이 난다며 하소연을 했다. 창문을 전부 열었다. 아빠는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하며 웃었다.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 운전을 하고 아빠를 태워가냐는 뜻이었겠다. 나도 이런 내가 신기했다. 사실 아빠와 동생과 살가운 사이는 아니다. 안부 전화도 한 달에 한두 번 할까 말까였다.


아빠는 이혼을 하고서 외롭다며 전화를 건 적이 있었다. 술을 마시고 늘어놓은 푸념이었다. 전자레인지도 세탁기도 밥솥을 쓰는 방법도 모른다고 했다. 청소도 제대로 할 줄 몰라 함께 살고 있는 동생이 고생한다는 말이었다. 동생이 빨래도 하고 밥도 하고 집안 청소도 한다고 했다. 이런 푸념 속에는 이제 그만 서울 생활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오라는 뜻이 숨어있다. 하지만 내가 내려갈 일이 있나. 모든 일을 이곳에서 하고 있고 제2의 고향이나 다름이 없는 걸. 나에게 고향에 내려와서 밥, 청소, 빨래나 하라는 뜻은 아니겠지. 나는 서울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빠는 담배를 어디서 태우냐고 물었다. 나는 옥상에 올라가거나 건물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 동생은 "어휴, 담배 담배!" 하며 짐을 풀었다. 밝은 곳에서 본 아빠는 너무나 작고 머리가 다 빠진 노인이었다. "오피스텔이라 집에서 태우면 안 되긴 하는데, 그냥 화장실에서 태우고 샤워하세요." 아빠는 화장실에서 담배를 태웠다.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10평 조금 넘는 집구석에 담배 냄새가 가득 찼다. 동생은 호들갑을 떨며 담배 냄새가 너무 지독하다고 창문을 열었다. 나도 당황스러웠다. 이렇게까지 담배 냄새가 독할 일인가. 나는 다시 "아빠, 그냥 내려가서 태우세요." 아빠는 나가서 담배를 태웠다.


아빠와 동생은 축구를 봐야겠다며 TV를 찾았다. 하지만 우리 집엔 TV를 키우지 않는다. 나는 OTT를 이용하기 때문에 모니터로 보거나 아이패드로 본다. 거실에 놓았던 컴퓨터로 생중계를 틀어주었다. 아빠와 동생은 나란히 앉아서 축구를 보았다. 나는 동생에게 맥주 한 캔을 따주고 작은 방에 들어갔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몰래 액상 전자담배를 태웠다.


그렇다. 나도 흡연자다.(아빠 미안) 성인이 되고서 가장 해보고 싶었던 일이 담배를 태우는 것이었다. 참 철없는 행동이었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 항상 지하철을 타기 전에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출근을 했었다. 어느 날 궐련형 전자담배가 나왔고 담배를 끊을 생각으로 전자담배로 바꿨다. 전자담배로 바꾸니 지하철에 탄 사람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코가 예민해진 것이다. 특히 담배 피우는 사람의 몸에서 나는 냄새는 정말이지 지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피우는 담배 냄새 외에 다른 사람이 피우는 담배 냄새는 맡기 싫다. 문득 나에게도 그런 냄새가 나는 걸까 생각이 들었다. 심각해졌다. 궐련형 전자담배도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몰래 작은 방에 누워 액상 전자담배를 끊지 못하고 손에 쥐고 있다. 흡연자의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에 흡연구역을 찾는 아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서 태우는 담배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잠시 휴식을 취할 때 태우는 담배가 그렇게 위로가 될 수가 없다. 술을 마실 때도 담배만 한 안주가 또 없다. 아빠도 나도 애연가였다.


다음 날, 인천공항에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미팅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출발했다. 동생은 김포공항에 올라올 때도 다섯 시간을 미리 광주공항에 있었다며 하소연을 했다. 아빠 앞에서 말이다. 아빠는 우리를 보며 담배를 태웠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도 흡연구역을 찾았다. 면세점을 들러 구경을 할 때도 아빠는 흡연구역을 찾았다. 비행기 탈 시간이 다 되었는데 그때도 담배를 태우고 오느라 사람들을 기다리게 했다. 동생과 나는 아빠에게 성질을 부렸다. 일찍 오면 뭐 하냐고! 담배 피우느라 비행기 놓치겠네.


삿포로에 도착하여 이동할 때도 가이드에게 제일 먼저 물어본 것은 흡연구역이었다. 가이드는 삿포로 자체가 청결한 도시이기 때문에 절대 나무 밑에서나 흡연을 하면 안 된다고 일러주었다. 나는 인터넷을 검색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시간 1시간이 주어졌지만 아빠는 흡연구역을 찾기 위해 30분을 할애했다. 겨우 찾은 흡연구역은 백화점 실내 흡연구역이었다. 그 뒤로 이동할 때마다 미리 흡연구역을 찾았다. 나는 담배를 태우지 않아도 괜찮았다. 액상 전자담배에 익숙해진 탓도 있고 담배를 태우지 않는다고 해서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하지만 아빠는 담배를 태우지 않으면 그 순간순간 성격이 변했다. 우리는 그런 아빠의 성격에 장단을 맞춰야 했다.


호텔에 들어올 때가 가장 편했다. 호텔에는 흡연구역이 마련되어 있었으니까. 나는 동생을 데리고 근처에 작은 술집을 갔다. 오로지 일본어만 들리는 술집이었다. 우리는 메이플 맥주와 교자를 주문했다. 동생은 처음 맛보는 메이플 맥주 맛에 홀라당 빠져버렸다. 기성 제품을 쓰는 듯했지만 교자도 너무나 맛있어서 두 번이나 주문을 했다. 각각 세잔 씩 맥주를 마셨다. 우리는 취했다.


술기운이 살짝 오르자 나는 동생에게 물었다. 아빠와 단 둘이 지내는 것이 버겁지 않으냐고. 솔직히 아빠가 짜증 난다고 말했다. 늘 제멋대로에 몸도 안 좋으면서 술담배를 달고 산다고. 하지만 어쩌겠느냐고, 나라도 아빠를 챙겨야지. 동생은 나와 다르게 참 착했다. 지금 옆에 자신이 없으면 아빠가 너무 외로울 것이라고. 누나가 없으니 나라도 아빠를 챙기겠다고 했다. 나는 혼자 행복하겠다며 멀리 떨어져 있는데, 내가 참 이기적이었구나.


호텔에 돌아와 보니 피곤했는지 아빠는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동생은 아빠가 코를 더 심하게 골기 전에 빨리 자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아빠의 코골이보다 일찍부터 깨워 조식을 먹자고 하는 아빠가 더 두려웠다. 평소 잠이 많은 나는 아침밥은 먹지 않는데 아빠는 당뇨 때문이라도 삼시세끼를 꼬박 챙겨드셔 야한다. 게다가 약속시간에 1시간 일찍 나가있을 만큼 계획적인 양반이다. 될 대로 돼라 하며 사는 나와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 일찍 우리를 깨운 아빠. 아빠는 우리를 데리고 조식을 먹으러 갔다. 함께 패키지여행을 온 가족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눴다. 그런 우리를 보고 한 가족들이 이야기했다. "참 보기 좋아요." 무엇이 보기 좋다고 하는 것일까. 자신도 자식이 둘이 있다고 하는 아버님 한 분. 함께 여행 왔으면 좋을 텐데 같이 여행을 다녀주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의 모습이 화목해 보였는지 부러운 눈빛이 가득하다. 그런 시선을 받는 것이 좋았는지 아빠의 얼굴엔 미소가 한가득이다.


아빠가 그리고 싶었던 가족의 모습은 이런 것이었을까. 아빠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살아왔을까. 어쩌면 아빠는 행복해지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다. 오로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행복한 길이라고 믿고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여행 내내 가장 비싼 패키지여행을 끊었다며 생색을 엄청 냈는 걸. 아빠를 후회하게 만들고 싶었다. 겉이 아닌 속까지 보기 좋은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머리 아빠



배를 타고 호수를 도는 코스가 있었다. 갈매기가 참 많았다. 우리는 새우깡을 사서 갈매기에게 던져주기로 했다. 나는 몇 번 던지다가 실내로 들어왔고 동생은 관심도 없는지 웹툰만 보고 있었다. 아빠는 누구보다 열심히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던져주었다. 어린아이 같았다. 아빠는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던지는 게 재밌는지, 새우깡으로 갈매기를 맞추듯이 던졌다. 그런 모습이 우스워 동생과 나는 아빠를 구경했다.


새우깡이 다 떨어진 아빠는 실내에 들어왔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창밖을 구경하던 중 아빠는 기분이 센치해졌는지 우리에게 이런 말을 던졌다. "아빠가 자연인이 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 웬 자연인? 우리는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에 나갈 것이냐고 물었다. 아빠는 더 이상 사는 것에 미련이 없고 조용한 곳에서 지내고 싶다고 했다. 동생은 현실적이었다. 아빠는 당뇨 약 때문이라도 도심에 살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아빠에게 "그냥 절에 들어가세요. 어차피 깎을 머리도 없잖아." 동생은 내 농담이 재밌었는지 깔깔 웃어댔다. 아빠도 머리를 매만지며 “이 놈 시끼.” 허허 웃었다. 옛날 같았으면 크게 호통을 쳤을 텐데, 이빨 빠진 호랑이란 말을 이럴 때 쓰나 보다.



우리는 주어진 자유시간마다 길거리 음식을 사 먹었다. 나오는데 한참 걸린 타코야끼를 들고 길 위에서 허겁지겁 먹기도 했다. 너무 뜨거워서 입천장이 데이기도 했지만 그 자리에 서서 2박스를 다 먹어치웠다. 우리는 중학생이 된 듯했다. 셋이 길바닥에 서서 타코야끼를 먹고 있다니. 그 모습이 우스워 참 많이도 웃었다. 또 불초밥(?) 가격은 왜 이리 비싼지, 고기 한 덩이 올라간 초밥이 5000원이나 했다. 고로케도 사서 함께 쪼개먹었다. 편집샵에서 귀여운 스누피 인형을 한 아름 샀다. 아빠는 스누피 하나만 사지 말고 스누피 여자친구도 세트로 사라며 다그쳤다. 혼자는 외롭다나? 잠깐 들른 과자가게에선 푸딩을 사 와 나눠먹었다. 분명 아빠는 안 먹겠다고 했는데, 우리들 것만 사 왔냐며 은근히 서운해했다. 그래서 우유 아이스크림은 스푼 하나 가지고 셋이 나눠먹었다. 참 달콤하고 맛있었다.


우리는 호텔에 돌아와 석식을 먹으며 길거리에서 먹었던 음식에 대해 조잘조잘 이야기 나누었다. 동생이 말했다. 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겠냐고. 여행은 먹는 것이 전부라고. 덩달아 나도 말했다. 행복은 식탁 위에 있어. 멀리 볼 필요 없다고! 길에서 사 먹는 간식거리가 대단하게 비싼 것도 아니다. 소소하게 나눠 가지는 추억이 무척이나 대단한 거지.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던 또 다른 가족이 말을 걸어왔다. 그리곤 아빠에게 술잔을 건네며 술을 따라주려 했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막았다. 그렇지 않아도 술이 약한데 술 마시면 코를 더 심하게 골기 때문이었다. 속내는 이러했지만 우리는 아빠가 당뇨가 있어서 술은 마시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그러자 또 같은 말을 들었다. "참 보기 좋아요. 보기 좋아."


좌) 유황 / 우) 참새 인형


온천으로 유명한 호텔에서 마지막 밤이었다. 유황이 좋긴 좋은가보다. 머릿결이 너무 부드러워지고 피부도 매끈해졌다. 노곤하게 반신욕을 하고 나와 방에 들어갔다. 지나가는 길에 본 아빠는 여전히 흡연구역을 맴돌고 있는 듯했다. 어휴, 그놈의 담배. 좀 줄이지.


나는 방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빠가 방에 들어와 내 짐 위에 툭, 인형을 던졌다. 참새 인형이었다. 낮에 갔던 편집샵에서 인형을 사재끼는 모습을 보고 사 온 것이다. 아빠가 나에게 인형을 사준 것은 태어나서 두 번째이다. 아주 어릴 때 커다란 곰인형, 그리고 지금 이 작은 참새 인형. 지금은 차키에 걸려있다.



마지막 날 밤, 이만하면 행복한 여행이었다 하며 자기 위해 이부자리를 폈다. 동생도 말만 많은 두 어른을 데리고 다니느라 피곤했는지 금세 잠이 들었다. 날씨가 쌀쌀해서 그런지 목이 칼칼했다. 목이 말라 물병을 들고 물을 마시는데, 갑자기 역한 냄새가 훅 올라왔다. 그 자리에서 바닥에 물을 뿜었다. 내가 마신 물은 물이 아니라, 재떨이였다. 물병 안에는 까만 재와 담배꽁초 하나가 둥둥 떠다녔다. 아무리 담배가 기호식품이라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나는 아빠에게 소리 질렀다. "담배 좀 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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