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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Oct 21. 2023

장례식은 당연히 육개장이지

고인의 명복을 비는 방법

한창 여의도에 위치한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서 연수반 수업을 듣던 중이었다. 스마트폰에서 진동소리가 울렸고 확인을 해보니 막내 고모가 보내주신 김치가 도착했다는 메시지였다. 입을 틀어막았다. 전라남도 묵은지는 그 어느 지역과 견주어봐도 일품이기 때문이다. 오랜 서울 생활에 김치맛은 포기하고 살았는데, 오랜만에 막내 고모표 묵은지를 먹을 생각에 미친 듯이 설렜다. 수업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카카오톡에서 오랜만에 보이는 이름이 떴다. 프리랜서 일을 하다가 잠시 2년 동안 입사하여 다녔던 조리복 회사가 있는데, 그 회사의 대표님이었다. 메시지 내용은 이러했다. '어진 양. 정작가님 아버님이 돌아가셨어. 혹시 모르고 있을까 봐 연락 남겨.' 정작가님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니.


정작가님과 인연은 20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리복 회사는 요리사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었다. 요리사와 생산자를 연결하는 로컬푸드 여행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처음 만난 분이 정작가님이다. 정작가님은 K매거진에 여행 작가로 일을 하고 있었고, 평소 로컬푸드에 관심이 많아서 이 프로그램에 참가를 했었다. 스텝으로도 커뮤니티 관리를 함께 했던 나는 자연스레 다양한 사람들과 인연을 쌓을 수 있게 됐다. 기자 모임을 함께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때 나는 야한 산문시를 써서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보여주었고, 그들은 나의 야한 글을 아주 좋아해 주었다. 그 계기로 작가가 되기로 결심을 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 정작가님은 나의 글을 읽어주면서 진심으로 응원을 다해 주셨다.


회사를 그만둔 지금까지도 10년 가까이 연을 맺고 있는 사람 중에 한 명인 정작가님. 크고 작은 일에 조언을 구하며 가끔 재밌는 일을 함께 구상하기도 했고 그의 아버지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 모음집을 디자인해주기도 했다. 아버님은 작품 속 사진으로만 만났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사진 속 아버님의 미소가 떠오르며 마음이 심란해졌다. 나에게 연락을 주지 않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혹시 가까운 지인으로만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싶으신 건 아닐까. 장례식을 가면 어떻게 조문을 해야 할까.


현재 있는 곳은 여의도고 집은 김포이고 장례식장은 은평구였다. 수업은 오후 9시 넘어서 끝날 것이고 바로 가기엔 후줄근한 초록색 티셔츠에 청바지다. 집을 들려서 다시 은평구까지 넘어가면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게다가 날씨는 국지성 호우주의보가 떨어진 상태라 초보운전인 나에겐 너무나 어려운 동선이었다. 마음은 이미 장례식이지만 다음날 가는 것을 선택해야 했다.


교육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 문 앞에는 아이스박스가 놓여있었다. 김치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을 때, 정작가님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이럴 때 희비가 교차한다고 하는 것일까? 김치찌개를 해 먹을 생각에 너무 좋다가도 마음 아파하고 있을 정작가님을 생각하면 기운이 땅으로 꺼졌다.


다음 날, 퇴근을 하고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정작가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갔다. 장례식장엔 많은 조문객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ATM기를 찾았다. 얼마를 뽑아야 적당할까 고민했다. 항상 어려운 숙제다. 디스플레이에 띄워진 이름을 찾아 정작가님이 계신 곳으로 갔다. 혹시 자리를 비웠으면 어쩌지 생각했지만 수척해 보이는 정작가님이 놀란 토끼눈을 하고서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아니, 어떻게... 어서 들어와요. 저녁은 먹었어요?"


정작가님을 보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상태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오랜 투병 끝에 편안하게 가셨다고 하시지만 마음이 울컥 올라오는 것이 순간 눈물이 고였다. 겨우 지인일 뿐인 내가 울면 안 되지. 냉정함을 찾고서 대표님께 연락을 받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대신 연락을 돌려준 것이라 설명했다. 다행이었다. 혹시나 연락을 주지 않았던 이유가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내심 걱정했기 때문이다. 일부러 저녁은 먹지 않고 조문했다. 장례식장을 오기 전에 장례식 조문 예절을 검색했었다. 식사를 내어주면 남기지 않고 다 먹고 오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장례식장에 있는 음식은 밖으로 가지고 나오지 않는 것도.


이런 예절은 기억하는데 도통 어느 순서로 절을 올려야 하는지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아버님 사진은 작품 모음집에 실었던 사진과 같은 사진이 놓여있었다. 환하게 웃고 계신 아버님의 사진. 정작가님은 서서 손짓으로 순서를 알려주었고 나는 아버님 앞에 절을 두 번 올리고 나서야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가님이 나에게 절을 하자 다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 마주 보며 절을 한 번 더 하지!


나는 정작가님에게 말했다. "사진으로만 뵈었는데, 이렇게 또 사진으로 뵙네요." 정작가님은 "당신만큼은 가족들 인사시켜드려야지." 작가님은 나를 데리고 어머님과 아내분을 소개해주었다. 아버님 작품집을 만들어주었다며 소개했다. 딸 1호와 2호가 앞을 지나갔다. "따님들 맞죠?" 정작가님은 웃으며 그렇다고 했다.


조문을 마치고 식탁 앞에 앉았다. 정작가님이 소주를 들어 보였지만 거절했다. 정작가님은 주당이다. 나와 술잔을 기울일 때면 기본 세병씩은 마시고 귀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정작가님과 마주하는 자리에 술은 빠질 수 없었지만 오늘은 거절했다. "아뇨. 차 가져왔습니다." 계속 오시는 손님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다.


식탁 위에 차려진 밥상에는 멸치볶음, 코다리찜, 귤, 김치, 마른안주가 놓여있었다. 국은 김치뭇국이었다. 생일에는 미역국을, 결혼식에는 잔치국수를, 장례식에는 육개장을 내어주는 우리들. 고맙고 귀한 사람을 여기는 방법엔 항상 음식이 빠지지 않는다. 장례식은 당연히 육개장일 테지만, "육개장이 다 떨어져 버렸어. 그런데 김치뭇국도 맛 괜찮아. 먹어봐." 김치뭇국이면 어때요. 김치 맛이 중요한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일이라면 육개장이든, 김치뭇국이든.


밥을 싹싹 긁어먹고 조용히 일어났다. 그리고 아내 분과 조용히 악수를 하고 장례식장을 나왔다.

오늘 정작가님과 만난 이 자리에 술상은 없었지만, 이미 술에 젖은 듯 마음이 축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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