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대면하는 우리의 태도 01
우리는 살면서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가족의 죽음, 친구의 죽음, 반려견의 동물, 알지 못하는 사람의 죽음.
그리고 맨 마지막은 나의 죽음.
어쩌면, 나는 나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일지 모른다.
내가 죽는다는 것은 더 이상 타인의 죽음을 보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끔은 타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대신 내가 죽어야 하는데.
그런 의미는 아니다.
다만 죽음은 떠나간 이의 삶을 정리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과정인데,
그런 과정을 겪을수록,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
죽은 이에게는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남아 있는 사람에겐 내 행동이 위로가 되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리고 가끔씩, 혹은 관계에 따라선 자주 느껴지는, 떠나간 이의 부재는 너무도 공허하다.
살아있을 때 했어야 했는데. 그런 생각은 의외로 들지 않는다.
그저, 그때를 좀 더 충실할 걸.이라는 생각이 더 들었던 것 같다.
이젠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이 글은 앞으로 써 나아갈 글의 시작이다.
간략하게 말하겠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책을 끝까지 읽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길게 쓸수록 내 글을 읽을 사람은 적어진다는 의미이다.
나는 26살 대학생이다. 여전히 대학을 다니고 있으며 졸업을 위해선 1년을 더 다녀야 한다.
나는 정치학을 전공 중이며, 철학을 부전공하며, 소설을 가끔 쓴다. 그리고 책을 가끔 읽는다.
아직 배우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무엇인가를 쓴다는 것은 조심스러운 과정이다.
정치학을 배우고 있는데, 정치학에 대해 함부로 쓴다는 건 조심스러운 것처럼.
하지만 나는 여러 죽음을 겪었다.
엄마의 죽음, 할머니의 죽음, 아버지의 죽음까지.
어찌 보면 너무도 빨리 온 비극일지 모른다.
브런치 공모전을 어쩌다 봤다.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주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했던 경험이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죽음인 듯하다.
고대 그리스에선, 비극을 희극보다 높은 가치를 두었다.
나는 내가 겪었던 비극을 적어낼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어떤 죽음을 맞이했고, 어떻게 대면했는지.
살아온 세월이 짧기 때문에
어떻게 위로를 받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런 건 잘 모른다.
지금도 촛불처럼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다.
다만 어떤 마음이었는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적어내려고 한다.
누구에게라도 도움이 됐으면 바란다.
그럼 시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