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칼두 Oct 28. 2020

남겨진 이의 삶1

죽음을 대면하는 우리의 태도 16

가족들이 온전히 사라진 후, 


내 삶은 온전히 뒤바뀌었다.


문득문득 찾아오는 생각과 상황은, 그전에 꾸던 것들과 온전히 다르다.


너무도 많아, 다 말할 수 없다. 생각나는 몇 가지를 말한다.



1. 돈


나는 한 번도 돈을 걱정해본 적이 없다. 

정말 감사하게도.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은 내 주머니에서 나가며, 모든 것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아빠가 남긴 돈은 많지 않았다. 처음엔 많았는데, 아빠가 남긴 것들을 정리하다 보니 서서히 줄어들었다.

새로운 집을 구하는데 보증금으로도 일부 쓰기도 했고.

약 남은 돈은 천만 원 정도.

대학생에겐 많은 돈이지만, 혼자 남은 학생에겐 적은 돈이다.


하지만 이제 영영 돈을 신경 써야 하는 운명이다.

어찌 보면 아빠의 몫을, 내가 받은 것일지도.


이사를 위해 짐을 정리하다 보니, 아빠의 가계부를 보게 되었다.

매달, 영수증을 모아놓고, 지출과 수입을 계산하셨다.

얼마나 신경 쓰였을까.

이제 온전히 내 몫이며, 내가 살아있는 한 해야 한다.


2. 가족


여전히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은 많다. 감사하게도.

하지만, 가족만큼 나를 완전히 사랑해주는 이들은 없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각자의 가족을 사랑하며, 각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가족은 자신보다 나를 사랑해줬다.

나를 위해 분노해주고, 나를 위해 슬퍼해주고, 

나에게 화를 내고, 나에게 기뻐했다. 


이제 그런 가족들이 완전히 소멸했다는 것.

과거의 잔상들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이 잔상들은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그럴수록 내 삶은 불행해질 것이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그 잔상의 불꽃이 아직 타고 있다는 것.

가족들이 주었던 사랑이 그렇게 크기에. 



3. 꿈 


나에겐 어떤 입신양명의 꿈이 있었던 거 같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근데, 이젠 나는 내가 잘될 이유가 없다. 

내가 잘돼도 기뻐해 줄 사람이 없다. 


이제 나를 위해 가장 기뻐해 줄 사람은 나뿐이다.

하지만 내 꿈은, 나를 기쁘게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재밌어하는 것을 하기로 했다.

그게 사회적으론 인정을 덜 받을지라도.

나에게 기쁘다면 상관없다.


나는 그러한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꿈이라는 건 참 공허한 거구나.

꿈이라는 말 자체가 공허하다고 생각했는데,

담고 있는 의미마저도 공허하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계획대로라면 2022년 2월에 졸업할 것이다.

나는 무엇이 돼있을까?

무엇이 돼도 상관없으며,

심지어 무엇이 안 돼도 상관없다.

어차피 이제 살아가는 게 크게 상관없기 때문에.

그저 하루, 하루, 나를 움직이게 할

혹은 

삶을 지탱하게 할

혹은

재밌게 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찾아 나선다.



이전 15화 아빠8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