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hl May 17. 2019

치맥과 아이스크림, 그리고 뾰루지

사랑하면 닮는 것들

  야근과 운동을 포기하고 날 기다린다는 그를 만나러 가는 길.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자연스레 손가락이 아랫입술 밑의 푹 들어간 곳으로 향했다. 어젯밤 발견한 뾰루지가 적당히 익은 듯 도톰하게 올라와 톡톡 건드리기 좋았다. 


그러다 문득 그런 스스로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원래 뾰루지가 있든 없든 얼굴에 거의 손을 안 댔는데, 어느새 그의 말도 안 되는 개똥철학 - 손으로 계속 만져서 얼른 곪게 해야지 - 를 따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닮아간 게 더 있다. 삐졌을 때나 무안할 때 그가 짓는 특유의 표정이 있는데, 요즘은 나도 싫은 내색을 할 때 곧잘 그런 표정을 짓는다. 입을 다문채 양 입꼬리만 내리는 터라 팔자주름이 걱정되는데도, 습관이란 게 참 무서워 나도 모르게 자주 그 표정을 짓게 된다.


아빠가 매일같이 - 말 그대로 매일이었다 - 야식으로 먹는 걸 옆에서 주워 먹다 보니 질려버린 치킨은 또 어떤가. 그가 좋아해 몇 번 같이 먹다 보니 나도 가끔은 치맥을 함께하는 금요일 저녁이 기다려진다. 


아이스크림도 마찬가지. 예전엔 아이스크림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에게 공감하지 못했는데, 이젠 집에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나눠먹는 게 소확행이 됐다. 때론 '오늘은 무슨 아이스크림이 새로 나왔나~'하고 둘이 마트 냉장고 구경을 가기도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알면 웃을 일이지만 우리에겐 나름의 데이트 코스다. 


반대도 있다. 그를 만나기 전 내 전부였던 재이와 와니를 알아가며 그는 나 못지않은 고양이 바보가 되었다. 매일 저녁 집으로 가는 길엔 주변에 고양이가 없는지 두리번거리기 일쑤고 가끔은 길에서 만난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한다.


원래도 동물을 좋아하긴 했지만 고양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던 그는 특히 애교가 많은 와니를 겪으며 무장해제가 되었다. 이젠
 와니의 발 싸대기를 맞으려 얼굴을 들이밀 정도다. 집에 놀러 오면 나보다 아이들을 먼저 챙기는 모습에 살짝 서운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만큼이나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따스하게 와 닿는다.


그에게 치킨이 있다면 내겐 떡볶이라는 최애 음식이 있는데, 덕분에 그는 나를 만나고 떡볶이를 일주일에 서너 번은 거뜬히 먹을 정도가 되었다. 심할 때는 점심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을 먹기도 하는데, 맛있어서 먹는 거라며 티 내지 않고 내게 맞춰주는 게 참 고맙다. 





"정말 그럴까, 사랑하면 닮는 걸까?"


내가 살이 찐 건 다 치맥과 아이스크림 때문이라며 그에게 볼멘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같은 음식을 먹으며 함께 즐거움을 느낀다는 게 한편으론 참 행복하다. 그래서 서로 닮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오랫동안 같이 한 시간 때문일 수도, 서로를 향한 배려의 부작용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그렇게 닮아가는 순간,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다름 아닌 '행복'의 감정을 느끼는 것. 그게 바로 날이 갈수록 더 닮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어느새 뾰루지가 제법 단단해졌다. 그의 개똥철학이 정말 효과가 있는 걸까. 내 뾰루지만 보면 짜주겠다며 두 팔을 걷어붙이는 그가 보기 전에 얼른 손을 써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