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무뎌지지 않기

by 화정

주말 오전, 알람 없이 눈을 뜨면 느긋한 산책을 나가는 루틴을 지킨다.

길을 나서면 늘 마주하는 풍경은 살짝 경사가 진 골목길이다. 앞을 보면 자연스레 시선이 높아지고, 좁은 길 양쪽으로 낮은 담벼락이 서 있다. 사람 키보다 훨씬 큰 나무들이 삐죽하게 담장을 넘었고, 그 뒤로는 푸른 하늘이 배경처럼 깔려 있다. 북촌 한옥마을의 골목길과 시월의 가을 하늘이 어우러진 모습이 그림같이 한눈에 들어오면 종종 여행지에 놀러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주말이면 늘 마주하는 장면이지만 볼 때마다 눈길을 사로잡으며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곤 한다.


천천히 걷는 시간은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매번 같은 길이지만 날씨마다, 계절마다, 혹은 그날의 기분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분위기가 있다. 걷는 동안에는 복잡했던 생각은 내려놓고 이렇게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천천히 들여다본다. 주말만큼은 광합성을 하는 식물처럼 햇볕을 듬뿍 받으며 에너지를 충전한다.


"지금, 계절의 변화를 느끼시나요?"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증상은 뇌가 지쳤다는 신호라고 기사를 보았다. 긴장을 풀고 휴식이 필요할 때 자연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풍경과 바람, 온도, 습도를 느끼려면 시야가 넓어야 한다. 내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이런 작은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다. 거꾸로 말하면, 이렇게 작은 변화에 귀 기울이는 연습을 통해 내면의 여유가 생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평일과 주말을 기점으로 일상은 반복된다. 비슷한 패턴이 안정을 주기도 하지만,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날짜만 바뀌는 무채색과 같은 시간을 보내지 않기 위해 나만의 방법을 시도해 본다. 특별한 일 없는 일상에 무뎌지지 않고 순간순간 깨어 있도록 가까이 있는 것들을 살핀다.


글감의 아이디어도 여기에서 나온다. 색다른 무언가가 아니라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을 소재로 한다. 상황은 같지만 다른 게 보이는 것, 관찰을 통해 나온 생각 꾸러미를 가지고 문장을 이어 나간다.

오늘 글을 써야지, 하고 생각하는 날은 좀 더 민감해진다. 책을 보다가 혹은 지하철 광고를 보고 떠오르는 단어를 엮어서 한 만장 정도만 메시지 창에 적어 두고 시작한다. 예전 경험이나 책에서 읽은 문장 등 어울릴만한 것들을 연결 짓고, 매끄럽게 읽히는지 퇴고를 하면서 고쳐나간다.


나에게 떠오른 아이디어, 생각, 감정에 민감하지 않으면 글감을 찾기가 어렵다. 쓰다 보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든 일은 하나의 신호와 같다. 좋은 일은 더 가까이하고, 나쁜 일은 새롭이 시도하거나 바꿔야 할 시기임을 한발 떨어진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다. 무언가를 쓰는 일은 오늘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고, 예민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연습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매일 수천개의 글쓰기 아이디어가 지나간다. 좋은 작가들은 그 중에 대여섯 개의 아이디어를 얻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런 아이디어도 얻지 못한다./오슨 스콧 카드


글을 쓰는 일은 무뎌지지 않도록 해 준다. 나아가, 마음 깊은 곳에서 직관이 말하는 바를 밖으로 꺼내어준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기록하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지나버리면 잊혀지는 하루가 아니라, 글을 쓰면서 하루하루 쌓이는 경험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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