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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정 Mar 17. 2024

머리를 비우려면 몸을 가볍게

나의 주말 루틴 중 하나는 조용히 앉아있는 시간 보내기.

집 근처의 선원으로 가서 방석 위에서 한 시간 혹을 두 시간 좌선을 한다. 철저하게 혼자 있는 시공간을 만드는 좌선은 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 중 하나로, 이 시간만큼은 외부에 정신을 뺏기지 않을 수 있다.


도시에서 이렇게 고요하게 시간을 보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눈은 살포시 뜨고, 허리를 세우고 앉아 있으면 주변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도로의 자동차가 지나는 것부터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걸음과 대화 소리, 비둘기가 건물 지붕에 날아들어 푸드덕 날갯짓을 하는 공간이 머릿속에 펼쳐진다. 보지 않고도 보이는 장면들이 하나둘씩 오른다.

   

이렇게 오분만 가만히 있으면 마음에 일렁이는 생각들이 보인다. 특히 이번 주말에는 미디어에서 본 장면들로 뒤죽박죽이 되어 정신이 없었다. 금요일 저녁에 잠들기 전 보았던 쇼츠, 그리고 TV를 보다가 잠이 들어버려서 무의식 중에도 각종 소리와 영상이 남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했던 행동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고 산란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입맛에 맞게 편집되고 짜인 동영상을 보는 것은 가장 간단한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그러나 손쉬운 방법에 중독되어 한 시간 넘게 영상에 빠져 있다 보면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가 생긴다. 과도한 인터넷과 SNS 사용은 '도파민 중독'으로 이어지고, 도파민이 너무 많거나 적으면 뇌는 비정상이 된다. 내가 느낀 부작용은 집중력이 저하이다. 내가 본 각종 이미지의 잔상들로 인해서 집중하는 시간이 짧아지고, 생각이 단순화되어 버린다. 이런 상태에서는 무엇을 해도 효율이 금방 떨어진다.  


뭐든 과도한 것은 좋지 않은 걸까. 우리의 일상은 쾌락보다 '절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을 너무 오래 본다면 시간을 제한해서 사용하거나 일정 시간 꺼놓는 도파민 디톡스도 요즘 유행인 듯하다. 식상하긴 하지만 '독서'와 '운동'이 심신안정을 위한 안전한 수단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즉각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은 부작용을 남긴다...


진짜 휴식이란 무엇일까.

현란한 영상으로 뇌를 속이는 게 아니라 비워진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어야 제대로 쉬는 게 아닐까. 알람 없이 눈을 뜰 때까지 수면을 하고 영양가 많은 음식을 충분히 먹는 것으로 기본적인 신체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필요한 것은 정신의 휴식인데,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관리하기가 어려운 분야이다. 몸무게를 잴 수도 없고, 맥박을 확인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머리를 쓰는 사람일수록 몸을 움직이는 게 도움이 된다.

하루종일 정신의 에너지를 소진시켰다면 아무리 좋은 책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몸을 움직이는 게 낫다. 특히 나는 내향인에 생각이 많은 타입이라 그런지 몸을 움직이면서 생각을 덜어내고, 체력을 끌어올릴수록 머리가 맑아졌다.  


작년 여름, 생애 첫 대회를 준비하며 6개월 정도를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취미로 즐겁게만 춤추다가 목표가 생기니 선생님은 작은 포인트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최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다시 하면서 반복이다.


급격하게 늘어난 연습 강도. 취미에서 전공자의 생활을 아주 살짝 엿본 정도랄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아무리 힘든 동작도 가볍게 추는 것이다. 입꼬리를 올려 활-짝 웃는 표정으로...! 순서 기억하랴 표정 관리하랴 온몸이 긴장을 해서인지 옷이 흠뻑 젖어야 수업이 끝나곤 했다. 한여름을 땀과 함께 보내서 힘들었지만 빠진 체중과 함께 케케묵은 감정이 쓸려나가 시원했다.


무아지경(之境)이라는 말처럼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데 쓰이는 신경은 꺼진다. 어느 정도 순서를 외우고 나면 이제 음악을 들으면서 동작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때부터는 또 다른 세계다. 단순한 운동에서 예술로 넘어가는 단계. 음악이 있으니 가슴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의 전통춤은 대체로 한(恨)의 정서를 기반으로 하지만,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흐름으로 구성된다. 때로는 구슬프게, 때로는 흥이 나게 희로애락을 표현하다 보면 그 안에서 나의 감정도 해소되는 기분이다.




'노벨상 수상자 중에서 아마추어 배우, 댄서, 미술가 등의 공연가로 활동한 사람의 비율은 다른 과학자보자 최소 22배 많았다*'는데 그 이유는 뭘까. 분명 예술이 주는 것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선다. 안에서 찾을 있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직접 움직여서 무언가를 표현하고 만들어내는 활동은 인간에게 건강한 에너지를 준다.


예술이 주는 창의적 상상력과 감정의 해소는 누구에게나 도움이 된다. 개인에게 지워지는 정신적인 부담감이 갈수록 커지는 요즘, 퇴근 후 여러 선택지 중에 춤을 한번 춰보는 게 어떨까. 스트레스가 쌓일 땐 맥주 한 캔도 좋지만 연습실에서 한바탕 땀을 흘리는 것도 머리를 비울 수 있는 괜찮은 자극이다.



*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데이비드 엡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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