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를 알아차리기
행복이란 뭘까
이 막연한 질문에 골몰하던 때가 있다. 인생이 다 꼬여버려서 어둠이 드리운 시기였다. 퇴근 후 집으로 오는 길에 거리의 가로등을 보며 걷는 데 눈물이 났다. 밑도 끝도 없이. 다행히 거리에 사람은 많이 없었다. 소리 나지 않게 나지막이 후드득-떨어지는 눈물을 닦으며 행복이 무얼까 떠올려 보았다.
당시의 나는 멀쩡히 일상생활은 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특별한 사건사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마도 혼자 짊어지고 온 걱정과 고민들이 점점 가중되었을 것이다. 원래 안고 있던 문제들이 겹치고 무거워져 어느 순간에는 조금만 흔들려도 크게 진동이 왔다. 그냥 지치고, 힘들고, 답답했다. 그것은 아마도 세상 모든 사람이 짊어져야 하는, 내가 살아온 햇수만큼의 '현실이라는 무게'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하려고 노력하고 애쓰면서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노력이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손으로 움켜쥘수록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많다고 느끼던 때가 아닌가 한다. 힘듦이 더해질수록 행복이라는 단어를 더 움켜잡고 싶었다. '나도... 행복할 수 있을까?' 뭘 해도 힘도 안 나고 웃음이 나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스치듯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평일 저녁. 혼자서 저녁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았다. 더워진 날씨에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막 차려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 보고 있던 무한도전을 켜 두고 식사를 하는데, 살짝 열어둔 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한줄기 불었다. 누가 보면 평범하다 못해 소박한 장면. 그 짧은 순간에 가슴이 상쾌했다. 한줄기 행복한 기분이 스쳤다.
찰나를 알아차리기
소박한 식사와 선선한 바람이 불던 어느 여름밤, 그 순간이 알려준 행복은 단순했다.
행복은 온전히 현재에 있어야 한다는 것. 후회하는 과거와, 걱정하는 미래는 없어야 한다.
그날 이후, 나는 안테나를 세웠다. 일상에서 감사와 행복의 순간들이 언제인지를 살폈다. 가슴에 상쾌한 기분이 번지는 장면은 꽤나 소박했다.
정독도서관 벤치에 앉아 고양이처럼 햇볓을 쬘 때
나뭇잎 사이로 반짝거리는 햇살을 맞으며 산책을 할 때
책을 읽다가 예상치 못하게 심쿵하며 나를 이해하는 문장을 만났을 때
혹은 막역한 친구와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고, 해맑은 아이들의 눈동자를 보는 것 같은 일이었다.
언제부턴가 무언가 성취하고 이루어야만 행복이란 보상이 주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이 부담이 되어 평소의 나를 압박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긴장과 부담을 덜어냈을 때 일상에 흩어져 있는 기쁨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일상에서 행복을 찾도록 힘을 뺀다. 충만함은 찰나와도 같다. 그것을 알아보고 내 마음에 번지는 기쁨을 알아차릴 여유가 필요할 뿐이었다. 어떨 때 내 마음이 기분 좋게 흔들거리는지를 조용히 지켜본다. 우리의 주변에 워낙 신경을 뺏기는 것들이 많다 보니 다소 노력이 필요하다. 하루 중 한 시간은 SNS를 차단하고 가벼운 명상을 한다. 여백과 같이 조금 심심한 시간을 보낸다. 삶의 충만함, 기쁨, 보람은 아주 주관적인 행복이라서 순간순간에 집중하는 연습이 없다면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반짝이는 순간의 이미지나 소리, 기분은 마음 어딘가에 저장된다. 찰나를 알아차리는 것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과 같다. 우리가 일상이라고 부르는, 지극히 평범하고 반복되는 날에도 마음의 안테나를 세운다.
돌아보면, 힘든 순간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소소한 것들이다. 책 속의 글귀나 한 사람의 따스한 눈빛과 같이, 오늘의 나를 지탱해주는 것은 일상의 빛나는 순간들 덕분임을 안다. 일상에서 은하수처럼 작고 소소한 행복을 찾고 발견하는 것은 내 몫이다. 매일 조금씩 행복하기 위해 자연을 보고, 누군가를 만나고, 글로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