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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tain Life Jul 31. 2016

한옥의 여름 나기

소소한 여름의 일상




여름/아침




 여름이 왔음을 직감하자 가장 먼저 러그를 걷어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차지한 대자리. 여름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핫플레이스라고나 할까요. 대자리 위를 누비며 몸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달아오른 체온을 식히는데, 덩달아 없던 지병마저 치유되는 듯한 기분은. 흠.



 어림잡아 이런 풍경입니다. 그동안 늘어난 살림살이에 그릇장이 벽면 한 구석을 차지하게 되었고, 혼례식을 위해 꾸며둔 벽장식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여전히 집의 중앙을 점령하고 있네요.








오며 가며, 한 번씩은 꼭 눈이 가는 벽 장식이 되었네요.


 

 미셸의 놀랍도록 감각적인 자리 선점.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집의 상태를 그 예민한 감각으로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영물이랍니다. 때는 해가 중천에 뜨기 시작할 무렵, 한낮의 무더위가 내린 시각, 가장 시원한 자리를 차지한 작은 맹수.



여름/점심




 시계를 대신해 시간을 감지할 수 있는 단서 몇 가지. 담벼락에 비친 능소화 덩굴 그림자. 밤새 내린 장맛비에 젖은 발판을 말리기 위해 세워둔 나무판 조각 사이로 비친 태양의 각도. 점심시간.



무더위에 불을 가장 적게 쓰고 시원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요리는 여름의 별미, 콩국수지요.



아무것도 없으면 섭섭할까 봐 뚝딱 고명을 얹어 한 그릇 들이킵니다.



대자리 위에서 달콤하고 시원한 수박 한 입, 여름의 호사로운 망중한을 즐겨 봅니다.



 장맛비에 한 번씩 젖곤 하는 마당의 타일이 매섭게 들이치는 태양빛에 점령당했네요. 퍽 오랜만에 드는 햇빛인지라 미셸은 기쁨에 겨워 온몸으로 따사로운 직사광을 맞이합니다.  



형님의 발자취를 소심하게 쫓는 작은 발자국.






 이렇게 태양광이 무자비하게, 혹은 자비롭게 내리쬐는 날이면 장맛비로 인해 눅눅해진 무언가를 말리기에 여념 없어지곤 합니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열이 후끈하게 달아 오르는 여름의 일상, 부채를 펴 들고 시원한 것을 찾아서.



한여름의 제철과일, 새콤달콤한 자두.  한 여름의 유희.

 


한낮의 무더위를 피해 대자리를 누비며 작은 맹수의 부드러운 촉감을 즐기고 있는 한 때.



여름 속에서.  ma belle, michelle. 이 작고 나약한 생명체의 푸릇한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빠져드는 건 시간문제이지요. 시암 캣의 푸른 눈동자는 여름의 풍부한 광량 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것만 같습니다.


 


여름/저녁




 태양빛이 집의 남쪽으로 난 벽면을 사선의 각도로 비추기 시작하면, 해가 서산에 걸리기 직전임을 감지합니다. 벌건 대낮의 무더위도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기를, 옅은 핑크색의 노을빛 잔광이 치열했던 여름의 순간을 반증하는 듯하네요.  


오래된 것에 대한 애착, 차곡차곡 쌓여가는 오래된 물건들.



 태양이 인왕산을 넘어가 어느 정도 사그라들면, 비로소 옥상으로 올라갈 엄두를 내 봅니다. 장맛비로 푸릇하게 자라나고 또 영글어가고 있는 옥상정원의 식물들. 그러나 오늘같이 하루 종일 따가운 태양빛이 훑고 가는 날이면 식물들도 한 풀 꺾여 시들해오죠. 이럴 땐 시원하게 호숫물 샤워를 듬뿍 뿌리고 나면 마음도 한 결 시원해집니다.


summer time

 해는 이미 서산 뒤로 누웠지만 완전한 어둠이 내리기엔 아직입니다. 저녁이 되어서도 태양이 뱉어놓은 푸른빛의 잔광이 여름의 시간을 마법같이 늘려주기 때문이죠.  써머타임.



 물을 싫어하는 미셸 이건만 물 주기가 끝날 때까지 굳이, 옥상 위로 올라와 굳건히 자리를 지킵니다. 그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시암 캣.



 옥상에 들른 김에 캣닢 한 움큼을 따 고양이와 교감을 시도해 보건만,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캣닢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워 버린 고양이들.   



 여름날의 어떤 일상을 마무리할 순간입니다. 문득 떠오르는 조합. 치킨과 맥주.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요!





여름의 시간들. 일상의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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