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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Oct 20. 2019

아시아 속 작은 유럽 이야기

대만에서 느끼는 LGBTQ와 게이 지수



스타벅스에서 시작된 이야기



 내가 인생에서 처음 *LGBTQ라는 단어를 접하게 된 계기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떠났던 캐나다 토론토에서였다. 당시 나는 굉장히 운이 좋았던 편이라  전 세계 최대 커피 체인인 스타벅스에서 바리스타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갖은 우여곡절 끝에 파이널 인터뷰를 통과하고 채용 통지를 받게 되었을 땐 정말 세상 모두를 가진 마냥 의기양양했던 기억이 난다. 쨍한 초록빛의 스타벅스 앞치마를 걸치고 폼나게 커피를 내리는 일이라니! 이렇게 간절히 원했던 일을 이루었으니 앞으로의 캐나다 생활도 내 바람처럼 뭐든지 다 잘 풀리게 될거야.



 하지만 그 쨍한 초록빛의 스타벅스 에이프릴을 걸치고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나의 이 오만한 생각은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스타벅스 바리스타의 일이라 함은 기본적으로 3교대 근무 시스템에 남녀 구분이 거의 없는 캐나다에서는 특히 커피를 만드는 일부터 쓰레기를 버리는 일, 객관적으로 힘을 쓰는 모든 일까지 남녀가 공평하게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일단 영어에 있어 ‘논 네이티브 스피커’인, 아주 기본적인 소통부터 NG인 내게 스타벅스의 바리스타라는 직함은 너무 벅차고 부담스러운 반짝반짝 빛만 나는 무거운 왕관에 지나지 않았다. 매일매일 출근하는 일이 괴롭고 손님들 앞에만 서면 겁부터 덜컥 나던 끝이 보이지 않는 흙빛 터널을 홀로 외롭게 걷던 어느 날, 그런 나의 일상 속에 한줄기 빛이 되어주는 사내를 만나게 되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데이비드’.




'데이비드'의 남자 친구




 그랬다. 막막했던 스타벅스 생활에 내게 한줄기 희망과 빛이 되어 주었던,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나는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였다. 백인들 천지였던 매장에 유일한 히스패닉계였던 그는, 결코 화내거나 채근하지 않으며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내게 일을 가르쳐 주었고 나는 그런 그의 착한 심성은 물론이거니와  맑고 천진했던 미소에 매료되어 남몰래 그를 흠모하게 되었다. 그와 함께 단 둘이서만 클로징 쉬프트를 할 때면 하늘을 날 것 같은  황홀한 기분에 스타벅스에서 일하면서 가장 싫었던, 키만큼 쌓인 원두 찌꺼기를 버리러 가는 길에서 조차 콧바람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남몰래 나 혼자 그에 대한 마음을 키워가던 중 하루는 그가 나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오늘은 내 남자 친구가 나를 데리러 올 거야.” 그때 나는 그의 이 말을 이렇게 이해했다. “좀 있다 내 [남자 사람 친구]가 올 거야.” 얼마나 친한 친구이기에 이 늦은 시간에 만나러 오는 걸까? ‘정말 엄청 가까운 [남자 사람 친구] 인가보다.’라고 별생각 없이 지레짐작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이 ‘별생각 없던 지레짐작’이 사실은 어마 무시한 오해의 발단이었다는 것을 그의 [남자 사람 친구]가 오자마자 깨닫고 말았다.



 나의 ‘데이비드’를 데리러 온 그 남자 사람 친구는 매장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처음부터 아예 거기 없었던 사람처럼 곧장 나의 ‘데이비드’에게 달려가 입술이 없어질 정도의 정열적인 키스를 인정사정없이 퍼붓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그 남자 사람 친구가 ‘프랑스 사람인가? 아니 그런데 프랑스 사람들이 한다는 그 뽀뽀는 양쪽 두 볼에 살짝 쪽쪽 아니었던가?’ 하는 엄청난 혼란과 컬처 쇼크를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나의 데이비드가 말했던 남자 사람 친구는, 정말로 그의 남자 친구였던 것이다. 손도 잡고 허그도 하고 같이 잠도 자는. 나는 그 날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정신을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가 2시간을 침대에 틀어박혀 대성통곡을 했는데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나의 젠틀하고 친절하고 순수한 ‘데이비드’가 게이라니… 게이라니?! 나의 짝사랑은 어떻게 되는 것이며 그에 대한 순수한 내 마음은 어쩌라는 말인가. 물론 지금은 이렇게 웃으며 재미난 에피소드로 추억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당시는 정말 엄청난 충격과 마음의 상처로 한동안 후유증이 심각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나름 큰? 사건을 겪은 후 나는 캐나다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에티켓과 인간관계에 대해 깨달은 것이 있다. 만약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절대 내 기준과 내 관습으로 상대를 평가해선 안되며, 특히 상대의 사생활과 성 정체성에 대해서 멋대로 간섭을 하거나 깊숙이 관여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초, 중, 고를 모두 나온 내가 그들을 100% 이해하는 것은 어려울지 몰라도, 적어도 그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한다거나 무조건적으로 부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내 변치 않는 생각이다. 나는 대만에 와서도 이와 비슷한 감정을 지속해서 느꼈는데 특히 회사에서 실제로 함께 일을 했던 동료 중에 성 소수자가 있었고, 그들이 회사 내부에서 성 정체성을 그대로 인정받으며 사회의 한 일원으로 평범하게 지내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캐나다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 중 지금까지 인생을 논하며 힘들 때 곁을 내어주는 소중한 친구가 게이이고, 그 친구가 그의 파트너와 함께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나는 더욱더 이성애자와 성 소수자로 그들을 나누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 그들의 존재를 존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게이 지수에 관해 논한 적이 있다. 게이 지수가 높은 곳일수록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진보한 도시들이 많으며 그중에 대표적인 곳이 바로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라는. 게이 지수가 높은 서양의 도시가 샌프란시스코라면, 동양의 도시는 타이페이가 아닐까? 나와 달라도 괜찮은 곳, 남들과 같지 않아도 존중받을 수 있는 곳, 나는 그런 곳에서 하루하루 살고 있다.







2019년 타이완 LGBTQ Pride



*LGBTQ: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er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퀴어)의 줄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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