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하는 여행
인간은 원래 일하기 싫어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내가 최근에 한 혼자 여행은 그리스 아테네를 시작으로 이탈리아를 횡단, 프랑스 남부를 거쳐 스페인으로 가는 약 2개월 간의 여정이었다. 타이페이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할 기회를 준 소중한 대만의 첫 회사를 입사 3년을 꽉 채우고 퇴사를 결심하게 되면서, 요즘 한국에서 퇴사가 트렌드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물결에 편승되었다기보다 원래 한 군데서 진득하게 일을 잘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거니와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이미 2번의 이직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큰 망설임 없이 사직서를 작성, 싱가포르를 거쳐 아테네로 가는 스쿠트 항공 편도 티켓을 예약하였다. 나는 이직을 할 때나 운 좋게 긴 유급 휴가를 얻을 때면 기내용 캐리어 하나 달랑 들고 훌쩍 어디론가 떠나곤 했는데, 습관성 퇴사와 습관성 여행 벽이 원래부터 나의 자아에 장착되어 있었던 것과 더불어 대만에 온 이후로 대만 사람들이 이런 퇴사 트렌드와 뼛속 깊이 관련이 있는 '프로 이직러', '프로 여행러'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 스스로 조금의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아 그래, 인간은 원래 일을 하기 싫어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구나. 다행이다.'
20대와 30대의 혼자 여행의 차이점
내가 기내용 캐리어 하나만 달랑 들고 비행기를 타는 이유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20대 때는 나름 배낭여행을 한다는 로망에 젖어 있었기에 내 몸만 한 배낭을 등 뒤에 걸치고 작은 미니 백팩을 앞으로 메고 뒤뚱뒤뚱 힘겹게 여행을 다니곤 했다. (아마 이 시기에 나의 무릎도가니가 다 나가지 않았나 싶다.) 평소 운동은 극혐, 움직이기를 세상 제일 싫어하는 나의 라이프 스타일이 지금은 프리다이빙, 테니스, 수영, 달리기 등등 운동을 즐기는 스타일로 바뀌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는데 족히 2-30킬로는 되는 큰 가방을 짊어지고 쉬지도 않고 돌아다녔으니 몇 번의 여행이 끝난 후 나의 허리는 이미 최악의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출근을 하려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억’하는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나는 허리를 부여잡고 하늘이 노래지는 경험을 했다. 발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벅찬 요통이 나를 후려친 순간 나는 ‘이대로 걷지 못하면 어쩌나 아이를 낳아보기는 커녕 아직 시집도 못 갔는데 평생 누워서 살아야 하는 건가’와 같은 온갖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반쯤은 정신을 놓고 있었다. 회사 인사부 직원의 도움으로 간신히 119를 부르고 들것에 실려 나오면서 나는 한국에서도 타본 적이 없던 구급차를 타이페이에서 타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혼자 여행을 하려면 몸이 튼튼해야 한다. 그 누구도 나를 돌봐주지 않기 때문에 순전히 나의 컨디션은 오직 나만이 조절할 수 있다. 20대 땐 겁도 없이 하루 5시간은 기본 쉬지 않고 걸으며 악착같이 하나라도 더 보려 애를 썼던 것 같은데, 30대에 들어서서는 제법 여유를 가지고 풍경을 바라보고 한 템포 쉬어가는 여행을 즐기게 된 것 같다. 무리해서 몸의 컨디션을 엉망으로 만들기보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 하루 조금 쉬어가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중화민국? 거기 중국 아니야?
내가 처음 대만을 여행한 시기는 2010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땐 꽃보다 할배도 없었고 배틀 트립도 없었던 시절이라 주위 지인들은 나에게 '중국'에 뭐하러 가냐는 질문을 많이 하곤 했는데, 사실 아직까지도 대만이 중국과는 엄연히 다른 하나의 지역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정식으로 국가로 인정받지 않고 있고 올림픽에도 '차이니즈 타이페이'로 참가를 해야 하는 서글픈 현실을 가지고 있지만 대만에 와 본 사람이라면 분명히 안다. '아 여기는 중국이 아니구나.' 나 역시 처음에 복잡한 대만 역사에 당최 어떤 식으로 이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접근해야 할지 많이 난감했지만 기본적으로 중국사를 좋아하고 청나라 역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짧은 시간 내에 대만인들의 생활 방식에 들어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무엇보다도 일본 유학 시절과 캐나다에서 생활하던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바로 대만 출신의 여자 아이였는데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된 것을 보면 나는 확실히 중국 친구와의 인연보다도 대만 친구와의 인연이 더 깊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낯선 먼 친척과의 조우
처음 대만에 와서 많이 낯설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번체 중국어'이다. 학창 시절 제2외국어로 '간체 중국어'를 살짝 맛만 본 내가 대만의 한자와 마주하고 느낀 당혹감이란, 분명히 만난 적이 있는데 사실은 굉장히 낯선 먼 친척과 만난 기분이었달까. 어쨌든 새로운 회사에서 1년간은 90% 눈칫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나의 번체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중국어 전공은 당연히 아니고 많은 한국인들이 다니는 '화어 중심'이라 불리는 중국어 교육 기관조차 다녀본 적 없는 내게 회사의 계약서를 읽고 이해하는 일은 아주 많은 노력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첫 회사에서 만났던 상사가 나에게 주었던 미션 중 하나가 '회사에서 지내는 8시간 동안만큼은 영어나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중국어만 읽고 쓰고 말하라'라는 것이었다. 처음엔 이 미션이 너무 괴로워서 그 상사의 눈에 띄지 않으려 요리조리 피해 다녔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상사 덕분에 나의 중국어가 짧은 시간 내에 아주 빠른 속도로 일취월장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주음 부호'를 사용하는 번체 중국어가 아닌 '한어병음'을 이용하는 번체 중국어를 읽고, 쓸 수 있기에 진정한 번체의 세계는 아직도 멀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