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Lifer의 타이페이 혼삶 기록
「타이페이에서 직장 생활을 합니다. 」
라고 처음 만난 한국 사람들에게 자기소개를 하면 열명 중 아홉 명은 꼭 내 신상조사를 시작한다. ‘어쩌다 타이페이에서 살게 되셨어요?’ ‘실례지만 지금 하시는 일이 뭐예요?’ ‘중국어 잘하시나 봐요?’ ‘왜 하필 대만인가요?’ ‘거기 중국 아닌가요?’ ‘음식 맛있다던데?’ 이런 질문들이 이제는 진절머리가 날 법도 한데 나는 대게 이 모든 질문들에 친절하게 다 답을 해주곤 한다.
‘어쩌다 보니 여기네요.’ ‘그냥 작은 회사 다녀요.’ ‘먹고살 만큼은 해요.’ ‘중국 아니고 대만이요.’ ‘살아보니 못 먹는 게 더 많네요.’ 간략하고 군더더기 없이 하하 호호하며 적당히 신상조사에 응대, 딱 거기까지이다. 대만에서 외국인이 합법적으로 *공작증과 *거류증이라는 것을 받으며 일을 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기에 이 곳에서 취업비자를 서포트받으며 일을 하는 나의 이력에 상당히 궁금증을 갖는 이들이 많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하지만 정말로 딱 거기까지만.
사람 사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을 몸소 깨닫게 된 순간부터 오히려 나는 여기 오지 마시고 한국에서 그냥 사세요. 이 말이 목구멍, 아니 목젖 끝까지 올라왔다. 이 나라가 좋고 싫고를 떠나 어디에서 살든 자기 자신의 마음가짐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을 이곳에서 살면서 나 스스로 절절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만은 분명히 동북과 동남의 사이에 속한 아시아의 작은 섬나라이지만, 중화라는 전통적인 관념을 기반으로 한 일본과 유럽의 문화가 뿌리 깊게 섞여있는 다문화 국가이다. 나는 이런 아시아의 외양을 했지만 그 속은 좀처럼 알 수가 없는? 이 나라에서 4년 차 혼삶을 진행 중이다. 이 혼삶 덕분에 적지 않은 경험과 고통을 거치며 앞으로의 삶에 대한 가치관이 많이 변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해도 되고, 단체를 위해 개인이 무리하게 희생하지 않아도 되며, 무엇보다 회사에 반드시 화장을 하고 가지 않아도 되는, 책에서만 경험했던 유럽의 ‘합리적 개인주의’를 이 작은 섬나라에서 맛보게 되다니, 실로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양력 10월 10일 더블텐, 쌍십절이라고 불리는(雙十節) 오늘은 바로 대만의 국경일인데 남의 나라 국경일을 벌써 네 번이나 맞이하고 있다니, 참 감회가 새롭다. 나는 내년이 지나면 이 나라에서 영구 거류증이라 불리는 서방의 PR(Permanent Resident)과 같은 개념의 영주권 신청이 가능해진다.
시간 참, 빠르다.
*공작증: 工作證, 취업비자와 같은 개념
*거류증: 居留證, 거류비자와 같은 개념
대만은 다른 나라들과 조금 다른 비자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취업비자와 거류비자가 나누어져 있기에(가까운 예로, 일본 같은 경우 취업비자=거류비자이다. 취업비자가 취득되면 거류도 동시에 함께 인정이 된다.) 반드시 공작증을 먼저 취득해야만 그에 따른 거류 자격을 받을 수 있다. (학생비자는 학생비자를 받고 그에 따른 거류 자격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