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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에 May 18. 2021

간사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나를 잘 모르는 사람

갑자기 닥쳐온 언론고시와 사진 촬영 그 사이의 일기

2021.04.04


요즘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간사함을 기록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야 미래의 내가 나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기에. 꽤 긴 시간 동안 나는 할아버지가 모아놓으신 골동으로 패션 화보를 찍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기적과도 같이 현실로 이뤄졌다. 나의 소중한 친구들 덕분에. 그 촬영이 몇 시간 전에 끝나고, 나는 지금 이렇게 나의 간사함을 미래의 나를 위해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무감으로 겨우겨우 끄적이고 있다.

시험 보러가는 길, 아빠가 태워준 차 안에서

이 촬영을 대학원 포트폴리오로 쓰거나, 유명한 잡지들에 각 잡고 투고를 할 생각이었고 그 생각은 아직도 유효하다. 하지만 포커스가 다 나간 사진이나 거진 반은 쓸 수도 없는 흔들린 사진들이 나왔을 것 같아서 너무 두렵다. 그래서 그것이 실망으로 이어질까 봐, 영화처럼 될까 봐 무섭다.


 일을 잘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결국 자꾸 만날 좋은 사람은 될 수 없는 것이 슬프다. 그래서 일로 처음 보는 사람에겐 마음만큼 온전히 잘해주지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모든 것을 끝내고 돌아와 혼자 누워 내가 무엇을 못했는지, 현장에서의 장면과 목소리가 들리면서 겹치는 시간을 견디는 것은 외롭다. 정말이지 외롭다. 항상 촬영이 끝나고 나면 몇 번이고 되뇌었다. 외롭다. 이번 촬영에선 그것을 과감히 끊어내고자 했다.

촬영이 끝난 다음 날 장비를 반납하기 위해 혼자 현장에 다시 돌아왔다. 대기시간동안 찍은 아름다운 그림자.


 모르면 모른다고 이야기했고 누군가의 조언을 내가 준비하지 못해서 듣는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영화 현장에서의 나와 오늘 촬영 현장에서의 나는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아서 슬폈다. 모두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내가 표현하고 하자는 것을 만드는 과정은 일종의 PTSD를 남기는 것 같다. 그 결과가 어떠하든 간에. 그것을 알면서도 왜 하겠다고 하는 것인지,


 내가 나를 잘 몰라서 그냥 창작을 계속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할 수 있어의 중독은 스스로를 착취하게 하고 그것이 우울을 만든다고 하는데, 창작은 그것을 기본으로 하는 행위는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창작의 희열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그 짧은 희열에 중독되는 것은 건강한 행위일까 하고 고민한다.

뜬금없는 곳에 서있는 당신

 무엇을 적립해 판단하지 않는 나는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해보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창작엔 도움이 되지만 결과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요즘 들어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싫어하는 나의 정수라고. 스스로 바보 같다는 느낌을 받게 만드는 상황들의 정수.


 그것을 알면서도 뭔가를 지시하고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싫은지 말해야 하는 행위를 계속하려고 드는지 모르겠다. 6단계나 되는 채용 프로세스 중에서 2단계를 지나고 나면 혹은 떨어지고 나면 나는 또 어떠한 간사한 마음을 가지게 될지 모르겠다. 지금 나의 마음의 세계는 사면초가라고나 할까. 아무 곳으로도 흐르지 못하고 어딘가 좁은 틈에 끼여 서있다.

빛과 어둠, 이쪽과 저쪽

 이것도 하겠다고 못하겠고 저것도 하겠다고 못하겠다. 자꾸만 내 전 직장으로 출근하는 꿈을 꾼다. 같이 일하던 그들은 그곳에 계속 있고, 나는 인턴으로 다시 출근하는 꿈을. 그래서 내 얼굴을 가리려고 애쓰는 꿈을 일주일 새에 2번이나 꾸었다. 나더러 주관이 세고 고집이 세다고 말하지만 나는 정말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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