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어디지
202.05.19
촬영이 끝났다. 다음 날 장비를 반납하자마자 달려가서 현상소에 들러 촬영본도 받았다. 10 롤 정도를 찍었다. 촬영본은 촬영을 떠올린 처음의 내 머릿속의 결과보단 좋았고 기대에는 약간 못 치는 것도 기대보다 잘 나온 것도 있었다. 애초에 이 촬영을 준비하면서 좋은 사진 한 장을 건지는 것이 목표였다. 아무리 발로 찍은 롤에도 필연적으로 한 장은 좋은 컷이 있다. 이 모든 것을 시작하지 않으면 그 사진 한 장도 건질 수 없으니 시작하길 잘했다는 말을 되뇌었다.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었다. 견딜만하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에 이케아에 갔는데 급하게 나서느라 핸드폰을 집에 두고 왔다. 책장을 사고 배송받을 핸드폰 번호를 적는데 스물두 살부터 써오던 내 번호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떤 번호를 적고 왔는지 아직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멤버십은 다른 가족 이름으로 되어있어 다행히 나에게 전화가 올 일 없이 배송은 잘 받았다.
친구를 만나서 사진을 찍고 같이 현상소를 갔다. 같이 집에 돌아오는 길에 퇴근 길이 겹쳐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곳의 관경이 너무 낯설어서 친구 옷깃을 붙잡고 지하철을 타러 내려왔다. 자기를 따라오라던 저 멀리 사는 친구. 나 여기서 세 정거장 멀리 사는데.. 학교도 이 길로 다녔는데. 이상하다.
다른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 그 동네는 그 친구의 집에 갈 때 말고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매번 같은 대중교통으로 같은 길을 따라서 다녔던 길인데 역이 너무 낯설어서 내가 제대로 내린 것이 맞는지 몇 번이고 카톡에 찍어놓은 주소와 역 이름을 확인했다. 둘이 같은 것을 확인하고도 이상해서 몇 번이고 확인했다. 친구와 밥을 먹으면서도 엄마라는 단어가 나오면 눈물이 이상하게 차올랐다. 문제가 있는 건가 하고 자각했다.
그 무렵 스토커가 세 모녀를 살해한 사건이 난리였다. 나를 힘들게 하던 문제와 비슷한 맥락이 있었다. 너무 사소해서 나만 알 수 있는 일종의 트리거였다. 전시를 열면 누군가 나를 스토킹 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거대한 망상이라는 것은 그 당시에도 알고 있는데 심신이 피곤해서 그런지 유약한 마음으로 며칠 잠을 설쳤다.
아무래도 시작은 상식 시험이었지 싶다. 바이든 당선인이 이슈였던 때라 미국의 행정부 관료들의 이름을 외웠다. 미얀마의 역사와 수도, 아웅산 수치에 대해 공부했다. 이런저런 사회현상 용어들을 구겨 넣었고 주식을 공부했으며, 눈뜨자마자 뉴스를 읽었다. 한 사람을 외우면 한 사람 이름이 생각나지 않으니 나중에 가선 울고 싶은 지경이 되었다. 세상 돌아가는 일이 시험 범위 전부이니 머릿속을 싹 밀어버리고 자꾸만 튕겨 나오는 탱탱볼을 꾹꾹 눌러 머릿속에 담아 넣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내 핸드폰 번호도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머릿속 용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살면서 처음 느껴봤다.
그렇게 힘들다 바쁘다 하면서 20대 초반을 보냈으면서 퓨즈가 나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에서야 경험한다. 그런 와중에도 분주히 움직여 사진을 여기저기 투고해 전시를 하게 되었다. 지나오고 나서보니 정말이지 곤했다. 여러 개를 한 번에 해내는 것이 그다지 큰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스로가 그런 일에 능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능했기 때문이다. 시험에도 통과하고 나면 나머지 단계를 전시와 함께 병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시험 결과보다 먼저 나온 전시공모 발표에는 내 이름이 있었고, 전시 스케줄을 정해야 했다. 전시 기간 동안 상주가 걱정됐다. 이번 방송국 시험에 붙으면 전시를 아예 못하게 될 수 도 있는 상황이었다. 고작 일주일 남짓한 시간도 뺄 수가 없어지는구나. 라디오 pd가 되어 남는 시간엔 작가로 성공해 나의 두 가지 자아를 채우겠다는 생각은 현실 앞에서 일찍이도 깨졌다. 세상사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왜 자꾸 까먹는지. 선택을 언제고 유보할 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없는 시기를 보내면서 방송국의 발표가 났고 낙방했다.
뭔가를 만들겠다는 나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나의 큰 걱정에도 불구하고 불합격 세 글자 앞에서 나는 아주 의연했다. 온 우주가 나서서 나의 기업 입문을 막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릴 수 있는 것만 이룰 수 있다면 내 인생은 아주 전형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전시를 할 수 있음에 홀가분하고 설레는 감정이 들었다. 더불어 밤잠 설치는 유약한 마음을 가지고도 열심히 움직여준 나에게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