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사에 May 17. 2021

Legacy Project

반드시 닿을 당신의 레거시, 당신이 레거시

2021.05.17

 병풍 3점을 골라 거기에 맞는 빈티지 의상을 매치해 시안을 짰다. 모란이 한아름 그려진 궁모란도, 새와 꽃이 그려진 화조도, 학과 소나무 그리고 바다가 그려진 송학도. 빈티지 의상들을 모아 색과 이야기를 매치시켰다.


물려 내려온 한국의 민화 병풍들과 누군가 입던 빈티지 의상들 그리고 물려받은 필름 카메라들을 가지고 담겠다고 마음먹었다.

모란

시안을 어떻게 짜는 것인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는데, 알아듣게만 쓰면 되지 않겠나 싶어 만들어 보냈다. 받아본 친구도 시안을 받아본 적 없어서 모르겠지만 알아먹었으니 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러게, 그게 시안이라는 것의 필요 아니겠는가. 시나리오에 약어를 잘 못쓰거나 무언인가가 잘못된 것을 모두에게 보내고 나서 깨닫게 됐다면 나는 아마 저렇게 가볍게 이야기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가끔 누군가 영화과 단톡방에 실수를 하면 문자를 뚫고 나오는 당황이 나에게까지 전달될 때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하고 연신 사과하는 텍스트에 작은 실수도 용납이 안된다는 것이(남에게든 자신에게든) 이런 것일까 싶을 때가 있었다. 해가 바뀌어도 꼭 몇 번은 겪었던 일이다. 하긴 생각해보면 나도 연신 느낌표를 남발하거나!! 조금씩은 울면서 문자를 보냈었던 것 같다ㅠㅠ


"처음 해봐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은 약속할 수 있어요."

 이번 촬영을 준비하면서 몇 번이고 되뇌고 몇 번이고 이야기했던 말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이 참 감사했다. 최선은 사실 어떤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남발하기에는 무책임한 말이다.


물건 사는 데는 가성비를 안 따지고 살아가는 데에만 가성비 따지는 결과 중시형 인간이 말합니다
'최선은 당연한 거고.'

그런데 정말 할 수 있는 것은 최선뿐인데, 그것만으로 괜찮다고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혼자서 계속 울컥했던 기억이 있다. (ㄴr  ㅎㅗㄴㅈrㅁㅏㄴ의 ㅊrㄱ각 이었다면 미안해...)

이번에 사용된 세 가지 병풍의 모티프를  사진으로 담아 작은 선물을 만들고 싶었지만 새를 담기 어려워 낙담하던 중 만난 친구. 목청이 커서 눈을 들어보니 어이없게귀여운 저 친구가


 촬영장에서 누군가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나에겐 공격으로 느껴졌다. 내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 들키는 것 같아서 창피했고, 왜 긴 회의 동안은 아무 말도 안 하다가 이제 와서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에 대한  결정을 내가 빠르게 내려야 한다는 것이 참 버거웠다. 하지만 사진 촬영에선 "그래? 그럴까?"가 되는 것이 신기했다.


내가 성장한 것일까 아니면 사진이라는 과정이 나에게   맞는 것일까. 뻔한답이지만서도 결국  다겠지. 도대체  시절의 나는 누가 나를 공격한다고 느꼈던 것일까. 모든 것에 책임을 져야 하는 영화 연출이라는 과정이  무거웠다고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만큼 모두가 말도안되게  희생과 노력을 기울여 이뤄나가는 일이 영화였다는 것도. 그래서  부담감이 나를 짓누르는 것은 어쩔  없는 필연이었다고도 생각한다.


 꽤나 오랜 시간 이곳저곳에 손글씨와 타자기로 남겨놓은 글들이 있다. 결국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라는 사실이 이젠 더 이상 외롭지 않고, 그 무엇보다 든든한 힘이 된다. 내가 남겨놓은 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송학도의 바다... 는 찍으러 떠나야 하나.


  <Legacy Project>

 새롭지 않으면 도태되는 세상에서  시간 동안 물려 내려온 것들을 가지고 만든 프로젝트입니다.

가족들이 40 넘게 모아  한국의 전통 병풍들과 소품들을 가지고 이미지를 꾸몄고, 엄마 아빠가 장롱에서 꺼내 주신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시대를 온전히 담고 있는 물건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환영받다가도 도태되고 때론 대체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가치를 재조명받는 것을 보면 세상에 무엇인가를 탄생시키는 일은  자체로 유효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환영받거나, 환영받지 못하더라도요.

 저의 깨달음이 만들고자 하는 누군가에게 용기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마음을 담아 만들어낸 모든 것은 상상하지도 못한 방법과 모양으로 반드시 누군가에게 닿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것들이 그러하듯 대체될  없는 가치를 가질 것입니다.

 




이전 14화 누군가의 사라짐이 불안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