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카드
2021.03.13
두시가 다 되어 스탠드를 다 사고 이태원으로 넘어가는데, 엄마가 갑자기 타로를 보고싶다고 했다. 이상하게 타로나 사주를 보고 오면 매번 가위를 눌리기때문에 잘 보려고 하질 않는다. '살면서 그런적이 없는데 우리 엄마 왜이럴까. 많이 답답한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사실 나도 어제 갑자기 누구를 붙잡고 뭐라도 물어보고싶다는 생각을 했기에 들어가보자고 했다.
"저는 안믿어서 엄마만 봐주세요." 라고 앉아있다가 결국 내 카드까지 뽑게됐다. 나는 취업을 할까 예술을 할까가 질문이었다. 취업 카드를 뽑고 예술 카드를 뽑으라는데, 취업은 뭐가 나와도 상관없는데 예술카드는 하지말라는 이야기가 나올까봐 괜히 뽑을 때 손이 떨렸다. 전공이 무엇이냐길래 연극영화라고 했더니 적성도 안맞는데 왜 거기 갔냐고 바로 이야기하는 것에 웃어버렸다.
"졸업하니까 알것 같더라고요. 안맞는 걸."
살면서 몇번 본적도 없지만, 항상 나에겐 연극영화 정치외교가 잘 맞는다던 타로 아줌마 아저씨들이 떠올라, 여기는 신빙성이 있는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번째 카드를 보니, 이정도로 고민을 때렸으면 모든 것이 귀찮아서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은 상태일 것이라는 것이었다. 고민이 너무 많아 지쳐버린 상태라 이걸 갖다줘도 하기싫고 저걸 갖다줘도 하기싫고. 나를 좀 내버려 둬 라는 마음이라고. 그래 나의 아주 거대한 허무는 사실 고민에서 오는 것이었지.
"결론은 대기업은 못들어가고 들어가서 한달만에 뛰쳐나올 성격이 가고싶지도 않으면서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 돈은 무슨 일을 해도 취업을 하면 고만고만하게 벌어. 예술 관련한 회사를 들어가지 않으면 자유를 갈망하는 사차원이라 뛰쳐 나오겠네.".
"월 200이 제 마지노인데요, 그 정도 제 일 해서 벌 수 있으면 저는 예술하고 싶고요. 월 100도 못벌고 살아야되면 저는 취업을 하고 싶어요."
월 200은 열심히 뛰어다니면 넘게 벌 수 있으니까 해보라는 말. 돈이 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전문가가 되어야 될테니 공부를 더 하라고. 그냥 그런 말들이 위로가 됐다.
영화과에 처음으로 들어갔을 때, 내가 이루고싶은 것들을 적어놓은 리스트가 있다. 첫째는 '영화가 좋아지는 것' 이었을 정도로 신입생일 때의 나는 영화를 잘 몰랐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영화 몽 루아를 보면 지지고 볶다 헤어진 여자 주인공에게 남자 주인공은 예전과 달라진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여자 주인공은 당신을 만나기 전으로 돌아갔을 뿐이라 대답한다. 나도 영화와의 긴 연애담을 끝냈더니 아주 쉽게 그 전의 나로 돌아간다. 생각조차 할 엄두를 못냈던,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못버티고 버틸 수 있는지의 기준이 생긴다. 미세먼지가 아주 자욱해 회색 빛의 하늘과 공기에, 돌연 바람이 불어 추웠던, 이상한 사건들로 채워진 오늘을 나의 의미부여로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