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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에 Apr 29. 2021

교수님과 타로카드-1

교수님과의 통화

2021.03.13


 아침에 엄마가 무엇을 할 것이냐 물어봤다. 불합격 메일을 받자마자 쉬지 않고 이력서를 돌렸던 나이기에 주말엔 사진을 가지고 뭐라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자기와 함께 스탠드를 사러가 주지 않겠냐고 했다. 그래서 용산까지 길을 떠났다. 하지만 당장 엔틱 가구를 살 능력도, 이유도 없는 나는 금세 지쳐버렸고 거기 있던 수많은 의자들 중 하나에 주저앉았다. 넋 놓고 앉아 어제 교수님께 보내 놓은 구구절절한 문자를 떠올렸다.


교수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를 기억하실진 모르겠지만 주저리 교수님을 안 지도 오래됐군요. 주저리. 저는 요즘 취업준비를 합니다. 그 시절이 요즘 너무 생각나네요. 가끔씩 감독님을 검색하며 영화를 기다리고 있어요. 항상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이른 저녁에 보냈지만 여전히 답이 없네. 번호가 바뀌셨을까. 얘가 누구더라 하시며 짜증을 내고 계실까.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옆을 돌아보니 성모 마리아 상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제가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지도 몰라요. 무언가를 기대하며 기뻐할 수 없는 것은 행복의 기준을 제가 정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당락으로 인생을 보아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딜 붙는다고 행복해질까요. 사실 그러지 못할 것을 아는데요. 제 행복마저 내려놓습니다.


그때 교수님께 전화가 왔고 후다닥 뛰쳐나가 전화를 받았다. "너 목소리는 그때랑 똑같구나." 카펫이 돌돌 말려있는 창고에 쭈그려 앉아 통화를 이어갔다. 뭐 하고 지내냐는 말에 그냥 있기만 한다고 대답했다. 할 수 있는 일만 한다고 했더니,


" 할 수 있는 일은 많잖아?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면 금방 포기하게 되지 않니?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그래도 내가 선택한 거니까 라고 하면서 한 가지 일을 쭉 하게 되잖아?"

 

 플랜 F까지 세워가며   있는 일만 하던 내가 생각났다. 눈물이 고였다. 교수님은 아무것도 모르고 하신 말씀이겠지만.


"가끔, 아주 가끔씩 연락이 이렇게 와.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한가 봐. 내가 길게 통화는 못하고 한번 보자구."


 꼭 다시 뵙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아무래도 내가 영화 쪽에서 일하지 않으면 다시 뵙긴 힘들겠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상하게 이 곳은 물과 기름 같은 곳이라 속하지 않으면 아무리 서로를 좋게 생각해도 섞이기가 어렵다. 극장에서나 뵐 수 있었으면.


 나는 긴 시간 동안 영화를 한 것이 아니라 영화 전공을 한 것이라고 말해버렸지만, 오늘의 통화 한 통으로 영화를 전공한 것이 나에게 어떤 시간이었는지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 시간을 그렇게 쓴 것이 영화를 한 것과 비교해서 덜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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