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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에 Apr 27. 2021

칼국수를 먹다가 떠오른 사람

면접을 보고 와서 쓴 그때의 일기

 2021.03.12.


 스타트업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보러 가는 도중에 별의별 일이 다 있었지만 한시간 가량의 면접을 잘 마치고 돌아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떨어졌다. 내게 누구와 싸운 경험이 있는지, 그렇게 해결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그 결정은 단순히  갈등을 피하기 위한 결정이었는지,만족하는 결정이었는지, 의견을 거절당하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등등 여러가지를 물어보는데 내 안의 유교걸과 까라면 까의 고지식한 인간을 자꾸만 드러내게되는 것이 부끄러워 집에 와서 넋다운이 되었다. 갈등을 피하고 싶어 참고 넘어가고 손해보는 내가 너무 싫지만 쉽게 고칠 수 없었다. 나의 비겁하고 나약한 모습에 질려버렸다.



여전히 하고싶은 일이 절실히도 없다. 그게 왜 자꾸 면접에서 티가 날까. 나보다 영혼없는 사람들 줄줄이 사탕일텐데.



  그날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워 사진계정에 사진을 올리는데, 무슨 말을 쓸까 하다 며칠 전 칼국수를 먹다가 옆자리 남자를 보고 떠올린 교수님이 생각났다. 떠올리자마자 정말 오랜만에 목놓아 울었다. 그 후로 좋은 스승은 커녕 교수라고 부를만한 사람도 만나지 못해서 외로웠고, 무엇이든 내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아서 억울했으며 일기같은 영화는 역시나 찍으면 안되는 것이었는데 그 쉬운걸 깨닫지 못해서 그 업보로 나는 아직까지도 방황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제가 이렇게 되리란건 입학했을 때부터 정해져 있던 사실인데 제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버티기만 했나봐요. 현장은 도망다니고 글은 쓰고싶어하면서 영화를 하겠다뇨.

하지만 저는 영화에 맞추려고 날카로워지고 나빠지지 않으니 이게 원래 사람들이 사는 삶이구나 이제야    같고 적응하나 싶어요.

그리고 계속 찍는 사람들은 저와 같이 느끼지 않기때문에 계속하는거겠죠. 저를 나약하다고 누군가는 부를겁니다. 교수님도 저에게 언젠가 한번 지루하고 나약하다고 하셨던  처럼요.


 여러가지 하고싶은 말들이 생각나 목놓아 울었다. 가만히 쳐다만 보실  같은 그분이 생각났다.  네가 왜이렇게 우는 건지 생각은 해보았니. 그동안 무엇을 썼니. 내게 졸업 영화를 보내둬라. 그냥 연락을 하지 그랬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사들에 어느하나 자랑스럽게 대답할  없어 한층  부끄러워졌다.


 이젠 영화과 시절을 팔아 이야기 하는 것이 부끄럽다. 나를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것이 질척거리는 미련같다.



36컷 중 딱 한 장 나온 사진. 한장이라도 나온 것에 감사해야할까 들인 정성에 슬퍼해야할까 나의 학교생활과 비슷하다


 일도 맡은 바도 잘 해낼 수 있지만 성격적으로 부족하다는 느낌을 나도 받고 그들도 받던 면접자리가 생각났다. 면접이 지루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이던 마케팅 팀장님.



 열심히는 하는데 안될 일을 하는 사람. 믿음을 줄 수 없는 사람. 신뢰받지 못하는 나. 아무것도 아닌 나. 무언가 망가져서 결국 아무도 영원히는 머무르지 않는 옆자리. 명확하지 못해 항상 뿌연 안개같은 내 마음의 시야.


이토록 답없는 사람이 나라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이렇게나 오래 방황하는 거겠지. 사람들은 야마 있는 이야기를 좋아해. 좋아하는 것을 쓰라는 것은 팔할은 넘는 거짓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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