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에 이런 글을 왜 쓰고 온거니..?ㅎㅎ
2021.03.28
사진을 찍을 날이 점점 가까워오자 나는 앞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려나 하는 생각이 한켠에 자리했다. 그러다 이력서를 낸 꽤나 큰 스타트업과 삼사 중 한 곳의 방송국 서류통과 소식이 들려왔다. 뭔가를 간절히 만들고 싶다던 나는 모든 것을 내팽겨치고 면접을 준비했고, 필기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헛구역질을 참아가며 공부 했다.
사실 면접과 시험에서 떨어지는 것은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거기서 떨어지고나서 진지하게 사진을 찍어서 창작을 이어나가겠다던 나로 돌아갈 수 있을지가 두려웠다. 시험과 면접 준비는 고작해야 2주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나는 2주 전의 나로 돌아가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시험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내가 수능을 본 학교에서 시험을 보게 돼서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1교시 상식 시험을 마치고, 작문 시험을 준비하는 쉬는 시간에 생각했다.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작문의 주제는 ‘ 00이 사라졌다에서 00을 채우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사회를 보여주는 지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었다. 나는 젊은이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 했다. 꽤나 많은 연예인들과 창작가들의 부고가 들려온 한해였다. 그것이 가끔 나에게 이상한 위기감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나와 내 주변에 대한 걱정, 내가 만들겠다는 누군가의 손을 끝까지 잡아 줄 수 있을지, 또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똑같이 해줄 수 있을지.
우리는 누군가의 슬픔과 아픔이 드러나는 행위를 예술이라는 이름 하에 감상할 때가 있다. 자신의 우울과 어려움을 해체해서 다시 하나의 틀 안에 끼워넣어 공유하고자 하는 행위는 지극히 자신에게 집중된 행위임과 동시에 그것을 굳이 나누려한다는 데에서 지극히 이타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런 행위는 궁극적으론 아주 긍적적이면서도 생산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작과 주된 정서가 우울함이라는 데에서는 그 나름의 네거티브가 존재한다.
권정열이 스토커에서 "난 못났고 별 볼일 없지."라는 대목을 부를 때, "아니야!!!!!"라고 아주 큰 소리로 외치는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같이 웃음이 터지면서도, 머리를 얻어맞는 것같은 번쩍함을 느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m6uaQsF73U
자신의 우울을 말하는 사람 앞에서 저렇게 관객과 가수 사이에 그어진 선을 가끔씩 넘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창작은 고통스럽지만 만드는 사람들이 우울하고 고통받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고 사람들도, 스스로도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몇년 전 나는, 정말 죽을 것같이 우울해서 세상이 망하면 좋겠다는 시나리오를 진지하게 써서 영화까지 찍었다. 작품으로 만들었으니 작품으로 봐주는 것이 당연하다. 그 우울하고 무거운 글을 진지하게 읽어준 사람들에게 아직도 큰 감사가 마음에 남아있다. 하지만 "허허 글보니 너 우울하구나. 많이 힘드니?" 하고 누군가 물었다면 "아니야!!!!"를 들은 권정렬만큼이나 벙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저렇게 시험을 마무리해놓고선 '나를 대변할 수 있는 글을 썼다.'하고 나름대로 기뻐하던 나를 생각해보면 너털웃음이 난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잘 알고 있으면서 자꾸 다른 길로 돌아가려고 온갖 힘을 다 쏟고 있는 스스로를 관조해보면 블랙코미디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