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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에 May 26. 2021

에필로그. 나는 여전히 답이 없다

근데 더 이상 안 슬프다

 기록을 마무리하면서 2년간의 이야기라고 했지만, 글을 쓴 연도대로 모아보자니 2021년의 글이 대부분이다. 2019년 하반기에 졸업을 한 나는 잠시 미국으로의 유학을 준비하다가 공채 시즌이 시작할 무렵 유학을 포기하고 서류를 돌렸다.


적성검사를 공부하고 자소서를 쓰면서 19년을 마무리했다. 그 당시 나는 취업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없었다. 학교 취업 상담센터에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영화과 태를 벗기는 데에 시간을 썼던 것 같다. 10월쯤엔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쓰기도 시작했다. 그 당시의 글을 읽어보자니 평소의 나보다 한 톤 띄워서 이것저것 재잘거리고 있는 어색한 내가 읽힌다. 도무지 못 보겠어서 몇 줄 지웠다.


그때는 천진함이 없으면 한없이 가라앉을 것 같은 위태로운 시기였나 싶다. 그래서인지 창작을 이어나가는 방법으로 글을 쓰겠다고 말해두고는 금세 시들해졌다.


 생각보다는 괜찮은 현실에 적성만 조금 더 준비하면 되겠지 하고 2020년을 맞이했는데 코로나도 같이 덮쳐왔다. 위기감에 2020년엔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허무맹랑한 생각들은 접어두자고.

사에는 '생각에게'라는 뜻이다. 생각할 사람 따로, 살아갈 사람 따로. 글을 끄적이는 일조차도 죄책감이 되던 시간, 그 시간에 사에라는 이름을 붙여주면 그나마 견딜만했다.

 플랜을 F까지 세워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보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참 획기적인 보기들까지도 나왔었다. 덕질을 잘 못하는 내가 엔터 시험을 본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다들 놀랍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승무원과 외국계 회사 커뮤니케이션 부서, 스타트업 등등 정말 다양한 직군들을 돌아봤다. 2019에 시작한 글은 2020의 상반기를 건너뛰고 여름 즈음되어서야 다시 시작된다. 그 빈칸의 시간들은 내가 더 이상 창작을 이어나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데에서 비롯한다.


  2021  F까지 모든 플랜이 무마되고 절망적으로 시작했다. 코로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기이한 2020 벗어난 것에 다들 환호했지만 나는 2020 쌓이고 찾아온 2021 더욱더 두려웠다.  절망 속에서도  시리즈를 다시 잡기로 결심한 것은  뭔가를 만들고 싶어 하는 여전한 나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답이 없다. 하지만  이상 슬프지 않다.

 

이 글의 마지막을 은희경의 <새의 선물>에 수록된 해설에 담긴 글과 함께 닫고자 한다.

해설 3. 냉소하는 자도 속는다

악의 없는 무심함을 지닌 채 소설은 일러준다. 우리가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어떤 간계로도 고통과 슬픔을 피해 갈 수가 없다고.

만일 성장이 순수가 오욕이 되어 돌아오는 일들에 익숙해지고 어떤 일에도 상처 받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 누구도 성장을 완료할 수 없다고. 살아 있는 한 어떤 비참함 뒤에도 또다시 찾아오는 희미한 희망으로부터 우리를 방어할 수 있는 전략은 없다고.

 열심히 하는 것이 창피한 나는 모든 것을 냉소함으로써 나의 상처를 숨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만드는 일을 좋아하지만 파생되어 돌아오는 상처가 더 빈번하기에 그 모든 과정을 냉소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책의 해설을 빌려 나와 이 글을 읽을 누군가에 말하고자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냉소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뿐이라고. 그 단순한 일을 잊지 않고 해낼 수 있게 만드는 데에 이 기록들이 한 톨의 용기가 되어주길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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