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분식집3
"실로 훌륭한 김치볶음밥이었소!"
"과연! 김치볶음밥이란 이런 맛이구나~ 싶었소이다. 하하하! 배가 이리 부른데도 또 먹고 싶다니... 정말 대단한 음식이오!"
방에 들어와 앉자마자 선비는 환의 김치볶음밥을 칭찬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하하! 알고 있소! 내게 묻고 싶은 것들이 많은 것이지요?"
"네..."
"자! 그럼 무엇부터 이야기해줘야 하나?"
"김환 도령은 낮에 장시에서 날 보고 본인을 모르냐고 물었지요?"
"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반은 알고 반은 모른다고 할 수 있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환은 선비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반은 알고 반은 모른다니... 대체 무슨 말이지?'
환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선비가 갑자기 화제를 바꾸어 환에게 되물었다.
"그런데 말이오... 혹시 김환 도령은 조선에 온 지 얼마나 되었소?"
"네? 어찌 그걸...?"
"하하하!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유는 명확하오!"
"내 이름은 이승환! 내 아버님의 존함은 이 종자 현자. 바로, 김환 도령이 미래에서 꽃집 아저씨라 불렀던 분이오!"
"네?"
"아... 역시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꽃집 아저씨의 아드님이셨군요?"
"그렇소!"
"그런데... 이상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 분식집 안에 꽃집 아저씨는 안 계셨는데... 어떻게...?"
"그건 내가 설명해주겠소!"
"당시 아버님은 분명히 김환 도령의 분식집에 계셨소! 다만 다른 이들보다 조금 늦게 김환 도령의 분식집에 도착하셨던 것뿐이지..."
"아버님의 말씀으로는, 당시 문을 열고 분식집으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흔들려 입구 부분에서 몸을 피했다고 하셨소!"
환은 그제야 꽃집 아저씨의 아들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꽃집 아저씨도 오셨었구나...! 그럼, 몸을 피하려고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셨나? 그렇다면 내가 못 볼 수밖에 없었겠지. 하긴 워낙 정신없는 상황이었으니...'
"그런 뒤 정신을 잃은 아버님이 깨어난 곳이 바로 이곳 조선이었소. 김환 도령과 마찬가지로..."
"그랬군요..."
"그래서, 내 다시 한번 묻소만... 김환 도령은 여기로 온 지 얼마나 되었소?"
"한 달... 그러니까 삼십일 정도입니다."
"그렇군! 그렇게 차이가 나는 것인가?"
"왜 그러시죠? 꽃집 아저씨... 아니 아버님께서는 언제 이곳으로 오셨는데요?"
"흐음... 아버님은 사십 년 전에 오셨소."
"네? 사... 사십 년 전이요?"
"아니... 난 겨우 한 달인데... 어떻게 그렇게 차이가 날 수 있지?"
"듣고 보니... 거 참 이상하긴 하오! 어째서 그런 것인지..."
환은 승환의 말에 크게 놀랐지만, 애써 진정시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럼 지금 꽃집... 아니 아버님은 어디에 계신가요?"
".........."
환의 질문에 잠시 허공을 응시하더니, 한숨을 크게 내쉬는 승환.
"그게... 아버님은 5년 전에 돌아가셨소..."
"네?"
"아니 어떻게..."
꽃집 아저씨가 돌아가셨다는 승환의 말을 들은 환은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게 무슨 일이야... 아저씨를 한 달 전에 봤었는데, 조선에서 수십 년을 살다가 돌아가셨다니... 믿기지가 않는구나..."
"걱정 마시오! 편안히 돌아가셨으니..."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김환 도령이 미안할 게 뭐가 있겠소."
".........."
"생전에 아버님이 미래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소."
"아버님께서는 여기서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하하하. 잘 지내셨으니 내가 존재하는 것 아니겠소!"
"그렇군요..."
"그런데... 사실 조금 놀랐습니다."
"뭐가 말이오?"
"네... 그게..."
"제가 아는 역사에 의하면, 조선은 지금 고추나, 고추로 만든 음식이 대중화되지 않았어야 합니다. 그리고, 채소도... 원래 조선은 채소가 귀한 곳이었는데, 낮에 장시에 가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여기저기서 질 좋은 채소가 넘쳐나더군요."
"그렇습니까? 과연..."
환의 이야기를 들은 승환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라는 듯 편안한 표정이었다.
"그건 아버님께서 그리 하신 것입니다."
"네?"
"역시..."
"그렇소!"
"하지만..."
"하지만?"
"납득은 가지만, 대체 어떻게?"
"그게 말이오... 흠..."
승환은 지난날의 일이 떠오르는 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건..."
"아버님께서 여기 오실 때 미래로부터 씨앗을 아주 많이 가지고 오셨습니다."
"네? 씨앗...?"
"그렇소!"
"아버님께서는, 신비한 힘에 이끌려 조선으로 오시던 미래의 그날... 본디, 어떤 농장에 많은 종류의 씨앗을 전해주기로 하셨는데... 그... 약조가 깨지는 바람에 별 수 없이 그 씨앗들을 그대로 들고 김환 도령의 분식집으로 가셨다고 하더군요."
"그랬군요?"
환은 승환의 말에 모든 의문점이 풀리는 듯했다.
'그렇다면 역사와 다른 지금 조선의 모습도 설명이 가능하다. 꽃집 아저씨 때문이었어!'
"아버님은 이곳 조선에서 그 씨앗들을 사용해 아버님께서만 아시는 특별한 농법을 이용해 농사를 지으셨소. 아마도 미래의 농법이었겠지요..."
"물론 처음부터 잘 되지는 않으셨소이다.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쳐 하나둘... 고추를 비롯해, 희귀한 품종들의 채소 농사에 성공하시더니..."
"나중에는 그걸 사람들에게 널리 보급하셨소. 심지어 벼농사까지!"
"덕분에 조선 백성들의 생활은 예전보다 훨씬 풍족하게 되었소!"
"훗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왕께서 그 공을 높이 치하하시어 벼슬도 내리시고... 아버님께서는 그렇게 조선에 정착을 하셨습니다."
"그랬군요...."
"다만, 아버님께서는 종종 미래를 그리워하시는 듯 보였고... 우린 그럴 때마다 가슴을 졸이곤 했소이다. 조선에 오셨던 것처럼 그렇게... 아버님이 우리 앞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릴 수도 있을 듯하여..."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드셨나요?"
그러자, 승환은 갑자기 환의 얼굴을 바라보며 '피식'하고 쓴웃음을 보였다.
"아버님께서, 생전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써서 그대들을 찾으셨기 때문이요! 함께 조선으로 왔을 <김환 도령>과 다른 일행분들을..."
"심지어... 말씀은 안 하셨지만, 시간여행과 관련된 소문이나 사람을 수소문하시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러셨군요..."
"결국 찾지 못한 채 운명하셨지만..."
".........."
"하지만, 돌아가실 때에도 유언으로 내게 말씀하셨소! 꼭 미래에서 온 사람들을 찾으라고..."
"그리고, 그 사람들을 찾았을 때 반드시 힘이 되어주라고... 그리 당부하셨습니다."
"그렇게까지 하셨군요..."
'아저씨... 얼마나 돌아가고 싶으셨을까...'
꽃집 아저씨의 지난 사연을 듣고 숙연해진 환.
한편으로는 어쩌면 자신도 그리 되지 않을까 싶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런 환의 불안한 마음이 전해졌는지, 승환이 밝은 톤의 목소리로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어째서 김환 도령의 김치볶음밥은 그리도 맛있는 것이오? 여기는 도령이 온 미래가 아니기에 맛을 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렇습니까?"
"사실 조리법은 미래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가져다주신 김치가 맛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하하하! 우리 집 김치 맛은 한양에서도 유명하니까, 그럴 수 있을 거요! 어쨌거나 젓갈과 고춧가루를 써서 김치를 담그기 시작한 건 우리가 처음이니..."
"그랬군요?"
"다만 아버님께서는 종종 미래의 분식집에서 김환 도령이 만들어준 김치볶음밥을 그리워하셨소. 미래에 계실 때는 거의 매일 드셨다면서..."
'하긴... 꽃집 아저씨는 매일 김치볶음밥만 드셨지. 오죽하면 철물점 아저씨가 김치볶음밥 좀 그만 먹으라고 화를 내실 정도였으니까!'
"아버님께서는 내게도 종종 김치볶음밥을 해주셨는데... 난 참으로 맛있었소만... 그래도 아버님은 이상하게 그 맛이 안 난다고 말씀하셨는데... 내 오늘 김환 도령의 김치볶음밥을 맛보고, 아버님이 왜 그리 말씀하셨는지 알 수 있게 되었소! 참으로 맛있었소이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하하하!"
"그래... 그간 어떻게 지내셨소? 심하게 고생을 한 것은 아니오?"
"아닙니다. 전 운이 좋게도 조선에 오자마자 여기 주막집 분들을 만나게 되어, 덕분에 이리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것 참 다행이오."
"내 어릴 적부터 하도 김환 도령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더니... 오늘, 이리 처음 보는데도 전혀 낯설지가 않구려!"
"감사합니다."
"그래서 내 방금 김환 도령을 반은 알고 반은 모른다고 한 것이오! 직접 본 적이 없으나, 늘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는 존재... 하하하!"
"그러셨군요... 하하..."
"사실, 낮의 장시에서도 내 김환 도령의 존재를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소."
"네? 어떻게요?"
"하하하! 그걸 왜 모르겠소?"
"상투를 틀지 않은 머리며... 신기한 옷이며... 무엇보다 그대가 풍기는 기운 자체가 이곳의 사람들과 달랐소이다."
'이 사람 뭐지? 날카로운데...?'
"그래서... 김환 도령은 미래로 돌아갈 방법이나 실마리는 좀 찾았소?"
승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환.
"아... 아니... 전혀요... 조선에도 아직 적응을 못했는데, 전 그런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흐음... 하긴, 삼십일이면 아직은 무리일 수 있지."
"그럼, 함께 온 다른 사람들의 소식은 뭔가 전해 들은 것이 있소?"
"그 또한 전혀 모릅니다..."
"당시 분식집에는 저와 제 여동생, 그리고 제 친구와, 선비님 아버님의 친구분이신 철물점 박씨 아저씨가 있었는데..."
"방금 들려주신 말씀대로라면... 사실 절망적입니다."
"어째서?"
"모두가 같은 시간대로 온 것도 아닌 것 같고... 과연 다른 사람들의 시간은 지금 일지... 100년 전일지 아니면 100년 후일지..."
"그럴 수 있겠군..."
승환은 어떻게든 환을 위로하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환의 말처럼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선비님을 만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나... 나도 그렇소!"
"그리고..."
"오! 그래? 무슨 일이시오? 어서 말해보시오!"
"선비님보다 제가 어린듯한데 그냥 편하게 저를 <환>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런가?"
"올해 나이가...?"
"전 스문 둘입니다."
"오! 그래? 그럼 내가 더 많군 난 스물여섯이오!"
'헉!'
환은 생각보다 젊은 승환의 나이를 듣고 깜짝 놀랐다.
'삼십은 넘겼을 줄 알았는데... 그것밖에 안됐다고? 이분 노안의 끝판왕이구나...'
"그럼 내 지금부터 편하게 <환>이라고 부르겠네!"
"네! 선비님."
"대신 자네도 내게 형님이라고 부르게!"
"네? 그래도 될까요?"
"아니 이 사람아! 이게 보통 인연인가? 마땅히 그래야 하지!"
"그럼... 네 형님!"
"하하하. 거 정말 듣기 좋군!"
"아우님! 이 좋은 날 술상이 빠질 수 없지!"
기분이 좋아진 승환은 문을 열어 연아를 찾았다.
하지만 연아는 두 사람이 자신만 빼놓고 은밀한 이야기를 하는 듯싶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보시오! 낭자!"
"예? 뭔 일인데 그러십니까?"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연아.
"여기 술상을 좀 봐주시오."
"술상... 말입니까?"
"그렇소!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니, 돈은 걱정하지 말고 상다리가 휘어지게 술과 안주를 준비해주시오!"
"정말...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하하하! 그렇소!"
승환의 커다란 씀씀이에 연아의 마음은 바로 풀려버렸다.
"아이고 예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얘 정훈아~! 정훈아!"
잠시 후 고추상인까지 합류한 주막의 술자리는 늦은 밤까지 끝날 줄을 모르고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