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첫 번째 설계 1편
첫 번째 설계 2018
긴 세월 복이 따르는 배, 장복호
공간에 대한 업을 나의 진로로 결정한 중학생 시절부터, 나는 ‘나의 공간’에 꿈꾸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긴 시간은 아니지만, 회사에 다니며 느낀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공간은 결국 내 돈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의 공간을 시작하려면 용기가 필요했고, 그 용기를 가지려면 확신에 가득 찬 ‘이야기’가 필요했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내가 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까?'
이야기를 기다리던 날들 사이 장복호가 떠올랐다.
나의 어린 시절이자 그 시절에 존재했던 아버지와 할매, 그 모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장복호를 잊은 세월이 내 삶의 절반이 훌쩍 넘어갔을 때, 나는 어린 시절을 잊었고 아버지를 외면했었다.
그런데 잊었던 시절의 이야기와 그렇게 엮이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업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확신과 용기를 가져다주었다.
장복호 둘째 딸내미로 불리던 시절.
불운했던 삶을 견디며 노력했던 아버지는 중년 나이에 접어들며 자신의 첫 배를 장만했다.
그리고 이 배가 앞으로 자신의 인생에 복을 가져다주길 염원하며 ‘장복호’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렇게 강구항에 장복호라는 이름의 배가 정박했다. 작은 어촌마을인 동네, 배나 가게 이름으로 누군가를
부르던 그곳에선 나를 ‘장복호 둘째 딸내미’로 불렀는데 마을 사람들은
내가 지나가면 ‘장복호 둘째 딸내미 어디가 노?’라고 인사를 건넸다.
내가 떠 올릴 수 있는 가장 어린 나이의 기억 속에서도 나는 장복호 둘째 딸내미였다.
그래서인지 장복호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노후화되어 폐선되었고
그 후 대양호, 성춘호 등 여러 이름의 배들이 아버지를 거쳐 갔지만,
그 어떤 이름도 나에게 ‘장복호’가 주는 ‘처음이라는 각인’을 뛰어넘지 못했다.
그렇게 ‘어린 나’의 기억들을 되짚어가며 공간을 구체화시키는 과정에서 나는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긴 시간, 홀로 지내오며 인생은 혼자라는 감정에 잠식된 나에게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존재했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같이 부대끼며 잠을 자고, 삼시 세끼 따뜻한 밥을 차려주던 할매의 존재와
명절엔 한복을 입고 제사를 지내며, 계절이 바뀌고 달의 모양이 달라지는 절기마다 새알을 빚어 팥죽을 끓여 먹고, 부럼을 깨던 가장 전통적인 가정의 일상이, 삶이, 나에게도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아직,
내가 아버지를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던,
원망과 미움 따위가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잊고 있던 그 시절이, 지금의 나를 이루는 모든 것의 밑바탕이 아닐까?
나를 이루는 ‘이것’들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나 스스로 잊었던 것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잊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어줄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하나의 축이 되어줄 나의 본질.
그것을 정리해 보기 위한 실험이자, 숨 고르기이며 첫 시작점이 되어줄 이야기.
내 손에 확신과 용기를 쥐여 준, 장복호의 이야기로 나는 설계를 시작했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