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때 옆집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외동으로 자라온 나는 늘 동생을 낳아달라고 어릴 때 엄마에게 떼를 썼다고 한다. 그 시기 옆집 아이를 돌봐주는 것이 나에겐 즐거움과 기쁨이었다.
어렸을 적 살던 집은 지금 구조와는 다른 다세대 주택이었다. 우리 집은 2층에 있었고 한 층에는 두 세대의 집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대문이 따로 있었고, 옆집, 윗집, 아랫집 의 이웃이 있었다. 지금 세대와는 달리 친근하고 정겨운 이웃이었다. 여름이면 수박 한 통을 잘라 문 앞에 돗자리를 피고 한데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저녁 반찬을 넉넉히 하는 집은 접시에 담아 서로 나누어 먹었다. 정이 넘쳤다.
옆집 아이가 3~4살이 될 무렵은 아이와 대화도 가능해졌다. 문을 열어두면 우리 집을 서성이다 말없이 들어왔다. 나는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아서 주기도 했고 아이가 먹을 만한 음식을 자주 챙겨 주었다. 아이는 귀엽고 똘망똘망했다. 이름은 ‘아라’였다. 아라는 눈만 뜨면 우리 집에 왔다. 방학 때면 친구들 만나는 날 빼곤 거의 아라와 함께 있었다. 그러다 아라가 우리 집에 오지 않으면 나는 아라네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고 함께 놀고, 밥 먹고, 우리 집에서 놀고, 밥 먹고를 반복했다.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티브이 속에 나오는 가수를 따라 함께 춤을 추기도 하고 비행기도 태워주고 신나게 놀아주었다. 식구처럼, 내 동생처럼 지냈다. 가끔씩 아라 어머니가 어디 가시는 날은 아라를 잘 봐달라고 부탁하고 용돈도 챙겨주셨다.
고등학생 때 우리 집은 이사를 갔는데 한동안 아라가 많이 생각이 났다. 아라 에게도 내가 생각이 났으면 좋겠다. 귀엽고 말썽꾸러기였던 아라가 동생을 바라고 있던 나에게 그 시절 진짜 동생 역할을 해주었던 것 같다. 누군가를 돌보고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시절이 생각난다. 옆집, 윗집, 아랫집 모두 함께 했던 아이를 향한 사랑이 그 아이에게도 성장하는데 자양분이, 행복한 기억이 되었으면 좋겠다.